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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왕 아우구스투스가 아시아 도자기에 심취한 까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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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호 08면

[ISSUE]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왕이 사랑한 보물’

아우구스투스 오벨리스크의 가운데 부분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아우구스투스 오벨리스크의 가운데 부분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아우구스투스 2세)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아우구스투스 2세)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숙종과 영조가 왕위에 있던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 한양(서울)에서 직선거리로 약 8200km 떨어진 오늘날의 독일 동부 작센주 드레스덴에는 인기 많고 야심 만만한 왕이 있었다. 신성로마제국 하 작센의 선제후(選帝侯·황제 선거 자격을 가진 제후)이자 폴란드 왕이었던 ‘강건왕 아우구스투스(Augustus the Strong·1670~1733)’다. 그는 프랑스의 루이 14세(1643~1715)를 동경하며 절대 왕권을 꿈꿨고, 아름다운 것들을 소유함으로써 권위를 드러내려 했다. 웅장한 궁전을 짓고 독일 전역은 물론 유럽·아시아에서 수집한 보석·도자기·수공예품으로 그 안을 채웠다. 집요한 수집광이자 예술 애호가였던 이 왕으로 인해 드레스덴은 유럽 전체에서 손꼽히는 문화예술의 도시로 성장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왕이 사랑한 보물-독일 드레스덴박물관연합 명품전’(11월 26일까지)은 그동안 한국에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18세기 독일의 화려한 바로크(Baroque) 문화 속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드레스덴 지역의 그린볼트·무기·도자기 박물관 등의 소장품 130점이 한국 나들이를 했다. 정밀함을 자랑하는 독일 기술력의 근원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용을 무찌르는 성 게오르기우스. 태엽장치로 움직이는 장식품이다.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용을 무찌르는 성 게오르기우스. 태엽장치로 움직이는 장식품이다.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유럽 최초 박물관, 그린볼트의 보물에 눈 호강

911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검과 칼집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911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검과 칼집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의 생김새를 본 뜬 태양 가면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의 생김새를 본 뜬 태양 가면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아우구스투스의 군복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아우구스투스의 군복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여성 형상의 술잔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여성 형상의 술잔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당시 독일 지역은 신성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제국의 영역 내에서는 아무리 힘이 있는 이라도 황제 아래의 제후로만 존재할 수 있었다. 1694년 형의 뒤를 이어 작센의 제후가 된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는 왕의 자리를 열망했다. 막대한 자금을 무기로 선출직이었던 인접 국가 폴란드의 왕위에 도전, 1697년 꿈을 이룬다. 하지만 프로테스탄트였던 신성로마제국의 제후가 개종까지 하면서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의 왕이 된 데 대한 반발은 컸다. 아우구스투스는 비판을 누그러뜨리고 왕권을 강화할 방법을 고심했다.

전시는 이런 아우구스투스의 권력 의지을 보여주는 유물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옷감 전체에 황금 자수를 놓은 군복, 금와 은으로 장식한 칼 등이다. 전시를 기획한 이원진 학예연구사는 “아우구스투스는 군주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상징하는 모노그램 ‘AR(Augustus Rex)’을 옷과 소지품은 물론 궁전 곳곳에 새겨 넣었다”고 설명했다. 전시품 중 번쩍이는 태양 가면은 ‘태양왕’으로 불린 루이 14세의 가면을 본뜬 것으로, 그는 폴란드 왕 즉위를 축하하는 축제에서 이 가면을 착용했다고 전해진다.

아우구스투스는 제후가 되기 전부터 보석과 공예품을 사랑했다. 드레스덴에 있는 그린볼트(Green Vault) 박물관은 그가 당대 최고의 예술품들을 모아 전시한 레지덴트 궁전의 서쪽 공간 ‘그린볼트(Green Vault)’에 있던 유물들로 꾸며졌다. 재질에 따라 상아·청동·은·도금은·금은보화·코너캐비닛·보석의 방의 7개 공간으로 나눠 장식한 후 이를 당시 일반인들에게 공개했다. 그린볼트가 ‘유럽 최초의 박물관’으로 불리는 이유다.

전시품 하나하나가 감탄이 터져나올 만큼 정교하고 아름답다. 종 모양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바다방석고동으로 만든 항아리를 들고 있다. 은에 도금을 해 만든 이 술잔은 왕실의 결혼식 술자리에서 사용됐다.

부싯돌식 소총과 바퀴식 소총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부싯돌식 소총과 바퀴식 소총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상아로 만든 타원형 뚜껑이 있는 잔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상아로 만든 타원형 뚜껑이 있는 잔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세계 곳곳에서 들여온 재료를 독일 지역 장인들이 가공해 만든 작품이 많은데, 일례로 뉘른베르크의 금세공사 니콜라스 슈미트가 인도산 자개로 만든 보석함은 매우 우아하다. 아프리카에서 잡은 코뿔소의 뿔에 아메리카 원주민을 조각한 술잔은 왕이 200탈러(Taler)라는 높은 금액에 사들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방한한 마리온 아커만 드레스덴박물관연합 총관장은 “당시 드레스덴은 유럽 전역의 상인들이 오가는 국제 도시이기도 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당시 이 지역의 문화 다양성과 국제 교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벽면이 거울로 꾸며진 ‘보석의 방’은 발걸음을 쉽게 떼기 힘든 공간이다. 무려 49.84 캐럿짜리 다이아몬드 ‘작센 화이트(Saxon White)’로 만든 단추, 193개의 다이아몬드로 세공한 모자 장식의 화려함에 눈이 휘둥그레해진다. 왕이 행사에 사용했던 의장용 검의 손잡이엔 다이아몬드 911개가 붙어 있다.

두 점의 중국 관음상과 마이센 복제품(맨 오른쪽)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두 점의 중국 관음상과 마이센 복제품(맨 오른쪽)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사냥꾼 악타이온 형상의 음료 용기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사냥꾼 악타이온 형상의 음료 용기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진주로 만든 성 세바스티아누스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진주로 만든 성 세바스티아누스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마이센 도자기의 탄생은 중국 황제에 대한 컴플렉스 때문

붉은 용 식기 세트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붉은 용 식기 세트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중국 청화백자 세트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중국 청화백자 세트 ⓒ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는 못 말리는 도자기 마니아이기도 했다. 아시아를 오가는 상인들에게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를 사들여, 죽기 전까지 3만 5000점이 넘게 모았다. 자기는 당시 유럽에서 ‘하얀 금’으로 불릴 만큼 귀하고 인기 있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제작 방법은 전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아우구스투스는 아시아의 도자기를 수집,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모방해 도자기를 직접 생산하려 했다. 1708년 연금술사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를 시켜 유럽 최초로 자기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후 드레스덴 근교 마이센(Meissen) 지역에 도자기 요(窯)를 세워 본격적인 생산에 착수했다. 도자기 제작은 작센에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안겨줬고, 마이센은 오늘날 독일을 대표하는 명품 도자기 브랜드로 성장했다.

율리아 베버 드레스덴 도자기박물관장은 아우구스투스의 도자기에 대한 집착이 “당시 유럽 사절단을 홀대해 유럽 지도자들에게 치욕을 안겼던 중국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려는 시도였다”고 해석한다. 실제로 그는 중국 황태자가 쓰던 도자기 등롱(燈籠)을 접한 후 이를 그대로 재현하라고 마이센의 도공들에게 지시했는데, 도공들은 3년 간 40번 이상의 도전에도 결국 실패하고 만다. 이후 마이센의 기술은 빠르게 성장해 왕의 말년에는 중국 도자기와 대등한 수준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다. 아우구스투스는 그동안의 수집품과 마이센 자기로 장식한 ‘도자기 궁전’을 지을 계획을 세웠지만,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직접 궁전의 설계도를 그리고, 이곳에서 있을 중국 황제와의 알현식을 상상하기도 했던 그였다.

전시장에는 그가 수집한 중국·일본의 도자기와 마이센에서 제조한 복제품이 나란히 놓여 있다. 어설프게 흉내 낸 듯한 모습에서 차츰 완성도를 높인 복제품이 등장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18세기 초 마이센에서 제작된 붉은 용 식기 세트는 일본 아리타 도자기를 모방한 것이었는데, 프랑스 상인 로돌프 르메르가 이를 일본산 진품으로 속여 프랑스에 팔아 큰 수익을 거뒀다. 아우구스투스는 1731년 르메르의 판매를 금지하고 당시 작센에 남아 있던 마이센 재고품을 모두 왕의 소장품으로 몰수한다.

진짜 박물관에 들어온 듯, 초정밀 대형 사진

그린볼트 박물관을 비롯해 총 15개 박물관으로 구성된 드레스덴박물관연합은 올해로 설립 457년을 맞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 연합체다.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박물관연합은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전쟁의 포화를 피해 소장품 대부분을 교외 지역의 곳곳으로 숨겼다. 그 덕분에 박물관 건물들은 드레스덴 구시가지와 함께 폭격으로 완전히 사라졌지만 소장품은 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종전 후 소련의 전리품 위원회에 몰수돼 유물들은 소비에트 연방으로 보내진다. 독일민주공화국(구 동독)이 건국되면서 1955~1958년 사이 대부분의 작품이 드레스덴으로 돌아왔다.

그 후에도 수장고에서 잠을 자던 이 보물들은 독일 통일 후 시작된 그린볼트 박물관의 복원 작업이 끝난 2006년에야 다시 대중에게 공개될 수 있었다. 그 후 박물관연합은 복원된 전시실을 다음 세대에도 온전히 물려줄 수 있도록 전시장 전체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사진작가 외르크 쇠너가 박물관의 공간 장식과 유물을 모두 고해상도 사진으로 찍어 360도 파노라마 사진 형태로 재현하는 작업을 2008년부터 계속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장 곳곳에는 그가 찍은 초정밀 확대사진 구조물이 설치됐다. 초대형 사진 속에서 생생히 숨 쉬는 유물의 모습에 진짜 드레스덴의 궁전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그린볼트 박물관의 대표 공예품인 ‘무굴제국 아우랑제브 황제의 왕좌’다. 진품을 가져 오진 못했지만 초점을 달리해 찍은 1200장의 사진을 합성해 실물의 5배 크기로 출력한 사진을 한쪽 벽면 가득 장식했다. 디르크 베버 그린볼트 박물관 큐레이터는 “관람객들은 이 사진 작품에서 실물을 직접 눈으로 봤을 때보다 더 미세한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12월 9일부터 내년 4월 8일까지 국립광주박물관에서 같은 전시가 이어진다. 관람료 성인 9000원. 문의 02-2077-9000.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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