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압색 화이트리스트 단체, ‘한몸’ 운영 의혹

중앙일보

입력

검찰은 지난 26일 ‘화이트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서울 신수동의 '시대정신' 사무실 등 10여곳을 압수수색했다. [연합뉴스]

검찰은 지난 26일 ‘화이트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서울 신수동의 '시대정신' 사무실 등 10여곳을 압수수색했다. [연합뉴스]

“청와대 행정관 지원 받으며 '통합' 운영 의혹” #번갈아 운영진 맡으면서 ‘겹치기 활동’ 정황도

일명 ‘화이트리스트’로 불리는 보수 성향 단체들이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행정관의 관리를 받으며 활동한 정황을 검찰이 포착했다. 지난 26일 이들 단체를 압수수색한 검찰 수사팀의 관계자는 “5개 이상의 단체가 허현준(49) 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의 자금 지원과 관리를 받으면서 운영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의 또다른 다른 관계자는 “이들 단체는 다른 보수단체 회원들 사이에서 ‘허 전 행정관 계열’ 단체로 불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들 단체가 이름은 다르지면 사실상 ‘이명동체(異名同體)’로 활동했던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일부 회원들은 검찰에서 ”허 전 행정관이 자금 지원과 활동 등에 있어서 대표와 같은 역할을 했다”, “단체가 허 전 행정관의 관리를 받았고, 시위에도 참석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앞서 ‘시대정신’, ‘청년이여는미래’, ‘청년이만드는세상’ 등 9개 보수 성향의 단체와 허 전 행정관, 최홍재(49) 전 대통령 정무수석실 선임행정관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허 전 행정관은 청와대 입성 전 시대정신 사무국장으로, 최 전 선임행정관은 같은 단체 이사로 활동했다. 이들 단체는 박근혜 정부 때 여당 정책을 지지하는 집회를 열거나, 야당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는 등 친(親)정부적인 활동을 해왔다.

검찰은 허 전 행정관이 2013년 이후 새로 생긴 보수 단체(청년리더양성센터, 청년이만드는세상, 청소년통일문화)의 설립 단계부터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설립 초기 운영이나 사무실 공간 임대 등에 있어서 청와대가 지원한 혐의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 단체를 포함해 시대정신 등 6개 단체는 서울 마포구의 한 건물에 입주해 있다.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 [중앙포토]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 [중앙포토]

검찰은 또 압수수색 대상이 된 단체의 전ㆍ현직 운영진들이 ‘겹치기 활동’을 한 경위도 파악 중이다. 검찰에 따르면 청년이만드는세상 공동대표인 J씨는 청소년통일문화의 대표,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으로 활동했다. 청년리더양성센터 대표 K씨는 시대정신의 청년위원회 대표, 청년이만드는세상 운영위원을 지냈다.

지난 3월 6일 국정농단 사건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박영수 특별검사 [뉴시스]

지난 3월 6일 국정농단 사건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박영수 특별검사 [뉴시스]

앞서 지난 3월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전국경제인연합이 대기업에서 걷은 돈 68억원 등을 청와대의 지시로 친정부 보수단체에 지원했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4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허 전 행정관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이후 해당 사건은 화이트리스트 의혹을 수사하는 특수3부(부장 양석조)로 넘어왔다. 검찰은 허 전 행정관을 추석 이후 피의자 신분으로 다시 부를 계획이다.

전북대 88학번으로 총학생회장을 지낸 허 전 행정관은 1995년 한총련 집행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시대정신 사무국장 당시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혁명가는 미제의 산물을 사용해선 안 된다. 우리부터 커피와 콜라를 마시지 말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나도 한동안 마시지 않았다”고 발언했다. 보수 활동가로 변신한 그는 박근혜 정부 출범 뒤 청와대 행정관으로 재직했다.

중앙일보는 허 전 행정관의 해명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검찰에 휴대전화 등을 압수당해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는 그동안 언론에 “민간단체들에 정부 정책을 알리고 협조를 요청하는 민관 협력 차원의 연락이 있었을 뿐이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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