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이상한 땅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평범한 종교나, 문화, 이념이 이 땅에만 들어오면 극단의 성질이 강조되고 원리주의화 되는 경향이 있다.
조선의 카톨릭은 선교사없이 스스로 알아서 도입한 종교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교세를 확장하고 있다. 카톨릭 선교 역사상 전세계 어디를 봐도 이런 사례는 없다. 기독교는 서구에서 교인의 수가 줄어들어 고민이지만 한국에서 만큼은 대로변은 물론이고 주택가, 상가 지역을 가리지 않고 교회 수를 늘려가고 있다.
소련과 동구 유럽 등 많은 국가들이 채택했던 마르크스 공산주의는 소련과 동구의 해체와 더불어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했지만 이 땅의 절반인 북한 지역에서 공산주의는 김일성주의와 결합해 아직도 북한 주민을 옥죄고 있다. 사실 지금의 북한 사회를 순수한 공산주의 사회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어찌됐든 북한 집권자들을 탈레반 급 공산주의자로 봐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들은 공산주의자이면서 김일성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중국 사회에서 공자의 의미는 다중적이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행사 등을 보면 중국이 공자의 나라처럼 보이지만 사실 중국은 외피만 유교적일 뿐, 내면은 법가의 사상이 지배하는 외유내법(外儒內法)의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들은 ‘공자가 죽어야 중국이 산다’며 공자 격하운동을 벌이면서 공자의 사상을 공격하고 공자묘 유적을 파괴하기도 했다. 중국 산둥성 취푸(곡부)의 공자묘 옆에 세워진 대규모의 공묘는 사시사철 관광객으로 북적이지만 동양사상의 시조라고 볼 수 있는 성인에 대한 경외감이나 경건함 등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은 공자의 대한 제사조차 지내지 않는다. 공자의 제사는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둥성 취푸 공묘의 대성전이 아니라 한국의 서울 성균관 대성전에서 열린다-중국인들은 왜 이런 상황을 벌어지는 이상하게 여기며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훔치고 있다고 본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공자의 사상적 후예 중 가장 원리주의적인 유교적 세계관을 가진 주자의 유교를 받아들였다. 주자의 유교 해석과 다른 언동을 보이는 자는 사문난적이라 하여 가차없이 징계를 가했다. 주자 외에 다른 해석은 용납하지 않았다. 이른바 양심의 자유를 억압한 것이다. 오늘날까지 우리의 제사문화, 관혼상제에 관한 여러 가지 예법 등에는 아직도 주자 유교의 흔적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내내 정권과 결합된 강력한 통치이념으로 작동했던 공자의 유교, 주자의 유교는 자유민주주의가 만개한 21세기에도 살아 남아 한국인 정신의 한 원류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한국에서 공자는 과거가 아니라 현실이다.
가을 석전 및 공자 탄강(생일의 극존칭. 탄생보다 더 존경의 의미를 담았다) 2568주년 기념식이 28일 성균관 대성전에서 열렸다. 석전은 전통적으로 나라에서 주관하는 의식으로 성인과 뛰어난 선비들께 올리는 제사의식이다. 우리나라 석전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조선시대에는 국립대학이었던 성균관에 문묘를 모시고 국가적인 행사로 석전을 봉행했다.석전은 본래 봄과 가을에 성균관과 전국 234개 향교에서 지내며 올해 가을 석전은 공자탄강일인 9월28일에 맞춰 성균관 대성전에서 열렸다.
현재 성균관에는 총 39위의 성인과 선현의 위패가 있다. 공자와 그의 제자인 안자, 공자의 손자인 자사, 맹자 등 5분의 성인과 설총, 최치원, 정몽주, 정여창, 김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등 우리나라의 현인 18위, 그리고 중국의 현인 16위가 모셔져 있다. 한국의 유학자들에게 죽어 성균관 대성전에 위패가 모셔진다는 것은 당사자는 물론 그가 속한 가문의 영광이 되는 위업이었다. 드물게 부자가 성균관에 모셔진 사례가 있기도 하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지만 뛰어난 유학자는 죽어 성균관에 위패를 남기는 것이다.
지금까지 모셔진 39위의 위패 중 가장 마지막으로 봉헌된 선현은 1882년 고종 당시에 모셔진 조헌과 김집이다. 이 두 분의 위패 봉헌 이후 무려 135년간 셩균관의 위패는 39위로 변하지 않고 있다. 40번째 현인의 등장 가능성에 대해 석전보존회 방동민 사무국장은 “예전엔 이 문제로 목숨이 왔다갔다 했다”며 “가능성은 있지만 쉽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스스로 현명한 인간이 되는 것은 어떨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이 입을 모아 ‘현명한 인간’으로 공인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 본성상 쉽지 않은 일로 보인다.
김춘식 중앙일보 포토데스크 부국장 kim.choonsi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