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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왕실의 수세식 화장실은 어떤 모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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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신라의 별궁이었던 경북 경주 동궁(東宮)에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세식 화장실 유적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오전 신라의 별궁이었던 경북 경주 동궁(東宮)에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세식 화장실 유적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주 안압지 북동쪽 지역에서 새로 발견된 통일신라 수세식 화장실 변기 유물. 화강암을 깎아 만들었다. [사진 문화재청]

경주 안압지 북동쪽 지역에서 새로 발견된 통일신라 수세식 화장실 변기 유물. 화강암을 깎아 만들었다. [사진 문화재청]

1200여 년 전 통일신라의 왕실, 혹은 귀족들은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했다. 화장실 옆에 둔 항아리에서 물을 떠서 변기 구멍에 쏟아 부었다. 오물을 실은 물은 경사진 도수로(導水路)를 따라 흘러 내려갔고, 지금의 정화조 비슷한 시설에 모인 것으로 보인다.

경주 안압지 인근 발굴 현장서 첫 확인 #화강암으로 만든 변기에 도수로 연결 #항아리에서 물을 떠서 오물 처리한 듯

안압지에서 발견한 수세식 화장실 변기 시설과 배수 시설이 연결된 모습. [사진 문화재청]

안압지에서 발견한 수세식 화장실 변기 시설과 배수 시설이 연결된 모습. [사진 문화재청]

 8세기 무렵 만든 국내 첫 수세식 화장실 유구(遺構·건물의 자취)가 경주 안압지 인근에서 발견됐다. 변기·배수 시설을 고루 갖춘 수세식 화장실이 한국에서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종훈)는 경주 동궁과 월지(사적 제18호·옛 이름 안압지) 북동쪽 인접 지역에서 발굴한 화장실 유물을 26일 공개했다.

 경주 동궁과 월지(月池)는 신라 왕궁의 별궁터로 추정된다. 삼국통일 직후 문무왕 14년(674)년에 세워진 동궁과 주요 관청이 있었던 곳이다. 이종훈 소장은 “이번 유구는 현재까지 조사된 고대 화장실 중 가장 고급형"이라며 "통일신라 왕실의 화장실 문화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새로 발견된 화장실 유물은 복합 변기형 석조물이다. 화강암을 깎아 만들었다. 양 다리를 딛고 쪼그려 앉을 수 있는 판석(板石)과 그 밑으로 타원형 구멍이 뚫린 또 다른 돌이 조합된 형태다. 구조상 오물이 석조물 아래 암거(暗渠·지하에 고랑을 파서 물을 빼는 시설)로 배출된 것으로 판단된다. 변기를 물에 흘려 오물을 제거하는 수세식인 셈이다.

 박윤정 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관은 “요즘처럼 물을 유입하는 설비가 따로 없는 것으로 보아 미리 준비한 항아리 등에서 물을 떠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에 나온 판석은 길이 175㎝, 너비 60㎝ 크기다. 변기 구멍이 있는 타원형 석조물은 길이 90㎝, 너비 56㎝, 그리고 가운데 구멍은 길이 13㎝, 너비 12㎝다. 두 개의 판석과 타원형 석조물을 합한 전체 너비는 118㎝다. 변기에 남북 방향으로 연결된 암거(도수로) 시설은 너비 23㎝로, 땅 밑 13~56㎝ 깊이에 묻혀 있었다.

2005년 보고된 백제 왕궁리 유적의 화장실 흔적. 사각형 구덩이를 파서 만들었다. [중앙포토]

2005년 보고된 백제 왕궁리 유적의 화장실 흔적. 사각형 구덩이를 파서 만들었다. [중앙포토]

 현재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화장실 유적은 전북 익산지 왕궁리 유적(사적 제 408호)에서 출토됐다. 왕궁리는 백제 30대 무왕(600~641) 때 조성된 궁성 유적이다. 2005년 직사각형 형태의 구덩이 3기와 종이 대신 뒷일을 볼 때 사용한 반원형 나무막대가 발견됐다. 구덩이 토양을 분석한 결과 회충·편충 등 기생충 알이 확인돼 화장실 유적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물을 사용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주 불국사에서도 8세기 석제 변기 시설만 발견된 적이 있다.

안압지 북동쪽 발굴 지역에서 나온 토기, 벽돌 등 통일신라 유물들. [사진 문화재청]

안압지 북동쪽 발굴 지역에서 나온 토기, 벽돌 등 통일신라 유물들. [사진 문화재청]

 장은혜 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사는 “이번 유구에서도 기생충 알 잔존 여부를 검사했지만 물에 다 씻겨 내려간 간 까닭인지 따로 발견되지는 않았다”며 “도수로 마지막 부분이 철길(동해남부선) 밑으로 연결돼 있어 유적 전체 모습은 파악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동궁과 월지 북동 인접 지역은 2007년부터 발굴 조사가 진행됐다. 지금까지 대형건물지·담장·배수로·우물·기와·벽돌·토기류가 다수 출토됐다. 박윤정 학예관은 “기존에 나온 기와·벽돌 등의 유물이 8세기 것이라 이번 화장실 유적도 8세기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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