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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용 영장청구 날, 김인식 KAI 부사장 유서 남기고 숨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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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김인식(65) 부사장이 21일 오전 8시42분쯤 거주하던 경남 사천시 사남면 W아파트(사택) 베란다에서 목매 숨진 채 발견됐다.

“열심히 하려 했는데 … 누 끼쳐 죄송” #하 전 대표와는 경북고 동기동창 #공군 준장 전역 뒤 KAI서 일해와 #초음속 훈련기 T-50 등 수출 담당 #직원들 “사업에 책임감 느낀 듯”

KAI 한 직원은 김 부사장이 평소(오전 7시)보다 한 시간이 더 지난 8시 넘어서까지 출근하지 않고, 연락도 닿지 않자 아파트를 찾아갔다. 비상키로 문을 열고 들어가 숨진 김 부사장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김 부사장은 이라크 등에 수출 대금 회수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3일간 출장을 갔다가 하루 전 돌아온 뒤 이날 새벽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거실 테이블 위에서 김 부사장이 쓴 유서를 발견했다. 유서는 KAI 사장과 직원, 가족에게 남긴 A4용지 3장 분량이다. 하성용 전 사장과 직원에게는 “이런저런 사업을 추진했는데 결과적으로 누를 끼치게 돼 죄송하다.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안타깝다”고 썼다. 아내와 아들·동생 등 가족에게는 “먼저 가서 미안하다” 같은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거실에는 김 부사장이 마시다 남은 맥주 2병과 소주병 1병도 있었다. 검찰 수사와 관련한 내용은 없었다고 경찰 관계자가 전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던 중 21일 김인식 부사장의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경남 사천 KAI 본사 에서 직원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한국항공우주산업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던 중 21일 김인식 부사장의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경남 사천 KAI 본사 에서 직원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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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고·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김 부사장은 제8전투비행단 통제기조종사, 합참의장 보좌관, 항공사업단장 등을 지냈다. 준장으로 전역한 뒤 2006년부터 KAI에서 아랍에미리트(UAE) 주재 사무소장, 수출사업본부장 등을 거쳤다. 최근까지 수출을 총괄하는 해외사업본부 부사장을 맡아 왔다. 또 김 부사장은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과 FA-50 등의 수출을 담당했다.

앞서 검찰은 KAI가 하성용 전 대표 재직 시절인 2013~2016년 이라크 공군기지 재건사업과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 등에서 수천억원 규모의 분식회계가 이뤄진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벌여 왔다. 검찰은 해외사업본부 등을 압수수색했으며 직원 등을 조사했다. 김 부사장은 검찰 수사를 받는 하 전 대표와 경북고 51회 동기동창이다.

특히 김 부사장은 하 전 대표가 KAI 사장으로 취임한 후 2015년께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하 전 대표의 핵심 측근으로 불리기도 했다.

김 부사장의 자살 소식이 알려진 뒤 검찰 수사에 압박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온 배경이다. 그러나 검찰은 21일 김 부사장은 수사 대상이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직원들은 검찰 수사에 대한 압박감보다는 해외 수출을 총괄하고 있는 임원으로서 느낀 책임감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곽상훈 KAI 경영지원본부 미디어담당은 “김 부사장님은 평소 (검찰 수사를 받는 것이) ‘내가 못해서 그런 것 같다’며 자책했다. 책임감이 강한 분이어서 자신이 총괄했던 부문이 검찰 수사를 받으니 그렇게 말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 부사장이 특별한 타살 흔적이 없는 것으로 미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사천=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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