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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에 미친 전설의 탐험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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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도시 Z' /사진=메인타이틀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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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첨단 과학 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아마존 일부는 오지로 남아 있다. 울창한 숲이 빽빽하게 우거진 이곳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동식물의 격전지. 이곳에서 문명의 힘은 무력하다. 인간의 발길을 코웃음 치듯 거부하는 이 땅에서 100여 년 전 고대 도시를 찾겠다고 나선 이가 있었다. 바로 영국 포병장교 출신 퍼시 포셋(1867~?)이다. 그는 아마존 탐험에 한평생을 바쳤고, 큰 아들 잭과 함께 한 마지막 여정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담대하고 용맹한 성품, 놀라운 관찰력과 목표를 향한 광기에 가까운 집착. 그는 여러 예술 작품의 영감을 준 20세기 가장 유명한 전설적 탐험가가 됐다.

20세기 탐험가 퍼시 포셋 일대기 그린 #'잃어버린 도시 Z' 매거진M 커버 스토리

영화 ‘잃어버린 도시 Z’(원제 The Lost City Of Z, 9월 21일 개봉)는 동명 논픽션을 원작 삼아 포셋의 일대기를 그린다. 무엇이 그를 ‘푸른 사막’‘악마의 파라다이스’라 불리던 아마존으로 이끌었을까. 칸국제영화제가 사랑한 미국 감독 제임스 그레이는 그의 지독한 열정을 어떻게 스크린에 담았을까.

아마존에 인생을 바친 남자

퍼시 포셋은 키 180㎝의 단단한 근육을 가진 군인이었다. 아버지는 귀족 출신의 근위대 소속이었지만, 주색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 45세에 세상을 떴다. 포셋은 가난을 피하고 가문의 명예를 되찾으려 왕립 육군 사관학교에 입학했다. 1898년 스물두 살, 영국 식민지인 실론(현재 스리랑카)에서 복무하던 그는 처음 탐험의 꿈을 꿨다. 실론에서 이틀 반나절이 걸리는 바둘라 지역에 옛 보물이 있다는 소문, 그리고 실론 내륙 지방에서 발견된 사찰의 잔해. 고대 도시의 흔적은 그의 호기심을 강렬하게 자극했다.

'잃어버린 도시 Z' /사진=메인타이틀픽쳐스

'잃어버린 도시 Z' /사진=메인타이틀픽쳐스

스물다섯, 그는 실론에서 만난 니나 패터슨과 결혼하지만, 무료한 일상에 갈증에 느끼고 결국 런던의 영국 왕립지리학회를 찾았다. 지리학과 식물학, 측량법 등을 놀라운 속도로 습득한 그는 자신이 오지 탐험에 적합한 인재임을 증명했다. 그의 첫 아마존 탐험은 1906년 7월. 쉽지 않은 여정을 예정보다 1년 빨리 마치며 포셋의 전설은 시작됐다. 이후 그는 출항과 귀항을 반복했다. 아들 잭이 소년이 될 때까지 1년 이상 집에 붙어 있는 적이 없을 정도였다.

1910년 즈음 자료 조사를 하던 그는 아마존에 고대 문명이 존재했을 거라며, 이를 잃어버린 도시 Z라고 명명했다. 이 주장은 영국 과학계의 조롱을 샀지만 포셋은 주저하지 않았다. 아마존엔 인류 역사상 가장 풀기 힘든 수수께끼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다른 탐험가에 뒤쳐질 수 없다는 인정욕구. 이것이 그를 오지로 이끌었다. 그러나 그는 전쟁으로 인해 잠시 발길을 멈춰야 했다.

'잃어버린 도시 Z' /사진=메인타이틀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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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 1916년 포셋은 독일군과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맞붙은 프랑스 솜전투에 참전했다. 1919년 종전 후 부상을 당한 채 가족에게 돌아왔지만, 아마존과 Z를 향한 깊은 열망은 가시지 않았다. 그의 나이 58세가 되던 해, 포셋은 스물한 살이 된 아들 잭과 함께 다시 아마존으로 떠났다. 그가 정글에서 보낸 편지는 전세계 언론에 소개되며 수백만 독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지만 1925년 결국 소식은 끊겼다.

이 정도만 살펴봐도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비범한 인간이었다. 정신력뿐 아니라 탐험에 필요한 모든 능력을 갖춘 인재. 원작에서 작가 데이비드 그랜은 그를 이렇게 설명한다. “불같은 성격과 대쪽 같은 성품, 동물에 가까운 감각이야 말로 그를 가까이하기 두려운 존재로 만들었다.” “놀랍게도 그는 밀림 속에서 거의 아파본 적이 없었다. 흔하디흔한 열병 따위도 앓지 않았다.”

여기에 포셋이 실종됐다는 사실은 그를 더욱 신화적 인물로 만들었다. 후대의 여러 탐험가가 그의 흔적을 찾아 아마존으로 떠났고, 문학과 영화엔 그를 모델로 한 인물이 탄생했다. 대표적인 캐릭터는 소설가 아서 코난 도일이 1912년 발표한 소설 『잃어버린 세계』(행복한책읽기)의 챌린저 교수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1981~)의 주인공 존스(해리슨 포드) 역시 그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추측이 많다. 포셋이 아마존에 매혹된 것처럼, 수많은 탐험가와 작가가 그에게 매료됐다고 할까.

원작 VS 영화, 처절한 밀림 아닌 인간 포셋을 그린 영화

'잃어버린 도시 Z' /사진=메인타이틀픽쳐스

'잃어버린 도시 Z' /사진=메인타이틀픽쳐스

2009년 출간된 원작 『잃어버린 도시 Z:아마존의 치명적인 유혹에 관한 이야기』는 퍼셋을 향한 그랜의 호기심으로 시작한다. 건물 2층을 오를 때도 주저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천생 글쟁이가 어떻게 아마존에 가게 됐을까. 그랜은 ‘뉴요커’ ‘뉴욕타임스 매거진’ 등에 탐사 추적 기사를 기고하던 작가다. 그는 “‘강박 관념을 가진 이들’에 대한 자신의 집착이 결국 포셋 대령과 만나게 했다”고 고백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집요한 취재와 방대한 자료에 입각한 생생하고 객관적인 서술이다. 포셋이 탐험을 위해 준비한 기구부터 학습한 내용들, 함께 했던 동료, 위기의 순간에서 나타난 그의 모질고 냉정한 태도까지 상세하게 드러난다. 압권은 역시 아마존에 관한 묘사. 흡혈 물고기 피라냐와 전기뱀장어, 숲속에서 튀어나오는 멧돼지, 하룻밤 사이에 옷과 가방을 모조리 뜯어놓는 흰개미 등 읽기만 해도 소름끼치는 설명이 이어진다.

'잃어버린 도시 Z' /사진=메인타이틀픽쳐스

'잃어버린 도시 Z' /사진=메인타이틀픽쳐스

“남극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끝없이 펼쳐진 얼음뿐이며 (중략) 감각의 마비야 말로 극지 탐험대를 죽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다. 반대로 아마존 탐험은 뜨거운 가마솥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모든 감각을 계속 고문당하는 느낌이다.” 그랜은 남·북극과 아마존의 탐험을 이렇게 비교했다. 혹독한 환경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감각을 적확하게 포착하는 문장. 이는 이 책이 2009년 인터넷 서점 아마존이 선정한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꼽힐 만큼 큰 사랑을 받은 이유다.

원작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구성이다. 소설에는 작가 개인의 경험담과 포셋에 관한 3인칭 소설이 번갈아 등장한다. 만약 이를 그대로 영화화 했다면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액자식 구성이 들어맞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포셋(찰리 허냄)의 삶에 집중한 시대극으로 풀어낸다. 그것도 아주 우아하게. 사실 영화는 원작이 자세히 그린 긴박하고 처절한 아마존 탐험에 방점을 찍고 있진 않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어드벤처영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잃어버린 도시 Z' /사진=메인타이틀픽쳐스

'잃어버린 도시 Z' /사진=메인타이틀픽쳐스

이 영화에 흐르는 차분하고 유려한 정서는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솜씨 때문이다. ‘이민자’(2013) ‘투 러버스’(2008) 등에서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고집스럽게 붙잡아온 이다. 여기에 ‘옥자’(6월 29일 개봉, 봉준호 감독) ‘아무르’(2012, 미카엘 하네케 감독) ‘세븐’(1995, 데이비드 핀처 감독) 등을 찍은 세계적인 촬영 감독 다리우스 콘지의 심도 있는 영상이 더해졌다.

그레이 감독은 브래드 피트가 이끄는 플랜B 엔터테인먼트로부터 연출 제의를 받았다. “책이 출간되기 전인 2008년에 원고를 받았는데, 피트가 이걸 내게 왜 줬는지 알 길이 없었다. 내 이전 작품과 어떤 공통점도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모든 것을 바쳐 이상을 추구한 인간이라는 주제가 무척 흥미로웠다.” 그레이 감독의 말이다. 그로부터 제작까지 6년이 걸렸다. 주연은 일정 문제로 브래드 피트에서 베네딕트 컴버배치로 바뀌었다가 결국 찰리 허냄에게 돌아갔다.

'잃어버린 도시 Z' /사진=메인타이틀픽쳐스

'잃어버린 도시 Z' /사진=메인타이틀픽쳐스

이 영화의 중심축은 포셋이 겪는 세 번의 탐험과 한 번의 전쟁, 그리고 가족 이야기다. 영화에서 포셋이 탐험을 시작하는 건 아버지가 먹칠한 가문의 명예를 살리기 위해서다. 탐험 자체에 매혹된 인간으로 보이는 원작과는 다르다. 영화에선 보다 보편적이고 현실적인 욕망을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포셋과 대원이 아마존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는 대목 역시 극적인 장치로 박진감을 더하지 않는다. 한 대원이 토혈을 하는 모습, 모기에 물려 다리에 검붉은 상흔을 입는 모습 등 묘사가 사실적이지만 자극적이진 않다. 몇몇 장면에선 밀림의 풍경이 끔찍하기 보단 아름다워 보일 정도다.

'잃어버린 도시 Z'/ 사진=메인타이틀픽쳐스

'잃어버린 도시 Z'/ 사진=메인타이틀픽쳐스

그레이 감독이 극한 설정을 걷어내고, 방점을 찍은 건 따로 있다. 바로 포셋이 사회적 지위, 가족과의 갈등 등 과 충돌하는 모습이다. 극중 아내 니나(시에나 밀러)는 홀로 영국에 남아 자식을 돌보는 설움을 토로한다. 심지어 포셋과 함께 탐험하고 싶은 학자로서의 욕망도 이루지 못한다. 잭(톰 홀랜드)은 늘 집을 비우는 아버지에게 불만을 갖고 있다.

아마존에선 생존의 갈림길에서 뒤처지는 대원과 대립하고, 영국에선 상류 사회로부터 끊임없이 열등감을 느끼는 포셋의 삶. 그레이 감독은 말한다. “이 영화는 정치적인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영국 상류층은 포셋을 업신여겼고, 원주민을 경멸했다. 인간의 무리가 품고 있는 슬픈 진실. 인간은 서로를 계급과 종족, 성별이라는 상자에 집어넣어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잃어버린 도시 Z' /사진=메인타이틀픽쳐스

'잃어버린 도시 Z' /사진=메인타이틀픽쳐스

그레이 감독이 보기에 포셋은 “모순적인 사람”이었다. 가정을 끔찍이 아끼는 가장이었지만 매번 집을 떠났고, 현실적인 판단을 내리는 냉철한 군인이면서 Z가 있다고 끝까지 믿은 몽상가였다. 전쟁터에서 돌아왔을 땐 입만 열면 아마존 얘기만 하는 우울증에 걸린 중년의 사내였다.

이런 그가 부딪친 1900년대 상황은 복잡했다. 계급적 위계질서는 강력했고, 아프리카인은 유럽인보다 열등하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영국인이 생각하는 오지 탐험의 목적은 지도 제작과 고무나무 등 돈벌이와 정복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잃어버린 도시 Z’는 당시 백인이 지녔던 인종차별적 시각을 꼬집는다. “이 이야기는 인종차별 문제를 반성적인 태도로 다룬다고 봤다. 당시 유럽인이 질병을 옮기는 등 남미 원주민 지역을 크게 훼손한 사실을 직접적으로 밝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이를 보여주려 했다.” 그레이 감독의 말이다.

콜롬비아 밀림에서 35mm 필름 카메라를 들고

'잃어버린 도시 Z' /사진=메인타이틀픽쳐스

'잃어버린 도시 Z' /사진=메인타이틀픽쳐스

“열대우림은 풍요로운 정원이 아니라 그 반대다. 나뭇잎이 고요하게 드리워진 숲길은 자연의 성지라기보다는 매일 매순간 각종 동식물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는 지구 최악의 전쟁터인 것이다.” 원작에선 작가 캔디스 밀라드의 『의문의 강』(진한엠앤비)을 인용하며, 아마존의 잔혹한 환경을 설명한다.

인터뷰와 제작기 자료엔 감독과 배우, 스태프의 말도 못할 고생담이 빼곡히 담겨 있다. 2015년 8월 북아일랜드에서 시작된 촬영은 두 달 뒤 콜롬비아 산타마르타의 열대우림으로 이어졌다. 촬영을 위한 세트장이 있었지만, 거칠고 극악한 자연은 진짜 밀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제작진은 6주 동안 이곳에서 안전하게 촬영하는데 만전을 기했다. 온갖 병균을 옮기는 모기, 수시로 제작진을 위협하는 독사, 예상치 못한 홍수까지. 말 그대로 산 넘어 산.

주연 배우 조차 밀림의 위협을 피할 순 없었다. “새벽에 드릴로 바위를 뚫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알고 보니 귓속에 들어간 벌레가 고막을 때리는 소리였다. 귀에 물을 뿌리자 조용해졌지만, 다음 날까지 벌레가 산채로 귓속에서 꼼지락거렸다. 결국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서야 괜찮아졌다.” 찰리 허냄의 말이다.

'잃어버린 도시 Z' /사진=메인타이틀픽쳐스

'잃어버린 도시 Z' /사진=메인타이틀픽쳐스

놀라운 건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35㎜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점이다. “아마존 열대 우림을 극적으로 포착하고, 제1차 세계대전을 제대로 담기” 위한 그레이 감독의 선택이었다. 그는 촬영 기간 매일 찍은 필름을 스튜디오에 보내야 했다. 예산 문제로 하루 촬영분만 잃어도 치명적인 상황.

“그날 찍은 필름을 너덜너덜한 상자에 넣어 살충제를 살포하는 비행기에 실어 보냈다. 필름은 두어 대의 비행기를 갈아타고서야 영국의 스튜디오로 배송됐다. 다음 날 아침 위성 전화벨이 울리면 두려운 마음으로 받았다. ‘필름을 잃어버렸다는 얘긴 아니어야 할 텐데’ 하면서.” 사투에 가까운 노력으로 필름에 담은 밀림의 풍광은 ‘잃어버린 도시 Z’가 이루어낸 중요한 미학적 성취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사진=메인타이틀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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