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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않은 길’ 대북제재는 어떨까, 미 경제제재 효과성 분석해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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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중단시키기 위해 국제사회가 꺼내고 있는 대북제재 카드는 ‘가보지 않은 길’과 같다. 지금까지는 대북제재가 효과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폐쇄적 경제, 비민주적 사회 구조 등 북한의 특수성 때문이다. 그러나 제재의 효과를 강조하는 쪽에서는 이란의 핵 문제를 해결했던 제재 사례를 얘기한다. 제재가 효과를 본 경험에 비춰보면 ‘가본 길’에도 해당한다. 과거 미국이 관여한 경제제재에 대한 효과성을 반추해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17일 본지가 입수한 한국정치학회보 가을호에 실릴 예정인 ‘미국 경제제재 분석(연세대 황태희, 경희대 서정건 교수 등)’ 연구 논문에 따르면 다자 제재일수록, 국제기구가 관여할수록 제재의 성공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948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이 제재에 관여해 실제 이행된 386건을 분석한 결과다

연세대 황태희, 경희대 서정건 교수 한국정치학회보 논문 #국제기구 관여 제재 성공률 64.6%, 국제기구 미관여시 33.7% #"미국이 제3국 설득, 국제기구 참여시켜 제재 신뢰성 높인 결과" #"세컨더리 보이콧 정당성 확보 차원에서도 유엔 역할 중요" #북한 제재에서 의회 목소리 초당파적, "의외 결과 초래 가능성" #"미 대북 정책 수정 국면에서 우리가 원하는 바 국내 합의 있어야"

 분석 결과 이중 유엔·유럽연합(EU)·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 국제기구가 관여한 제재는 48건이었고, 이 중 성공한 경우가 31건(64.6%)이었다. 그에 반해 국제기구가 관여하지 않은 338건 중엔 114건(33.7%)만이 제재가 성과를 냈다. 한편 미국의 독자 제재의 성공률은 34.1%, 미국이 관여한 다자 제재의 성공률은 56.9%였다.

 황태희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 주도의 제재에서 국제기구가 관여한 다자 제재의 경우 성공률이 높고, 국제기구가 관여하지 않을 경우 성공률이 낮은 편”이라며 “미국이 제3국을 설득하고 국제기구를 참여시켜 제재의 신뢰성을 높인 결과”라고 분석했다.

 앞선 해외 연구에서도 ▶제재를 가하는 제재국의 비용이 클수록 ▶국제기구가 관여할수록 ▶피제재국의 정치제도가 민주주의에 가까울수록 ▶제재국과 피제재국의 상호 무역의존도가 높을수록 경제제재의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2015년 이란이 핵 프로그램 중단에 합의한 것은 미국의 주도 하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미국ㆍ영국ㆍ프랑스ㆍ중국ㆍ러시아)과 독일이 중재에 나서면서다. 유엔ㆍEU가 연계한 다자 제재의 성과로 꼽힌다. 미얀마의 민주화도 미국과 EU, 일본이 참여한 다자 제재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반면 1980~81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시작된 군사 행동 저지를 위해 미국이 취한 곡물 수출 제한 등 독자 제재는 실패 사례에 해당한다.

 황 교수는 “유엔 안보리를 통한 제재 결의가 (상임이사국인) 중국·러시아가 반대하면 안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지만 다자와 독자 제재가 같이 가야 효과가 더 커질 수 있다”며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정상적 거래를 하는 제3국 기업·개인에 대한 제재) 카드를 쓰기 위해 정당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도 유엔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논문은 또 미국의 북한 제재 정책을 분석하면서 의회의 역할에 주목했다. 2016년 1월 미국 하원은 북한제재법을 찬성 418명대 반대 2명으로 통과시켰다. 이후 상원에서도 만장일치로 수정법안을 승인했다. 공화당 소속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이 본회의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 정책은 실패”라 발언했지만 민주당 의원들이 자당 소속인 오바마 행정부를 변호하고 나서지 않았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당 양극화로 인해 공화당과 민주당 간 거의 모든 정책 영역에서 당파적 분열이 극심한 상황에서 유독 북한 문제 만큼은 초당파적”이라며 “예측 불허의 트럼프 행정부와 예상 밖의 초당파적 분위기인 의회가 만들어 내는 미국의 북한 경제제재 정책은 의외의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을 움직일 수 있는 효과가 크지만 미국 경제에도 큰 타격이 될 수 있는 세컨더리 보이콧 카드가 의회의 압박 혹은 견제에 따라 실행 여부와 정도가 갈릴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 로이스 위원장은 중국 1위 은행인 공상은행 등 중국 은행 12곳에 대한 제재를 행정부에 요구하기도 했다.

 논문은 “최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이 성공을 거두하면서 향후 미국의 북한 정책은 근본적인 수정과 재검토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된다”며 “미국이 북핵 관련 명확히 정책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있는 이때 우리가 먼저 스스로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국내적 논의와 합의가 있어야 대북 정책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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