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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가 해결사” 목소리 커진 팬 … “명분·실리 없다” 버티는 축구협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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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017년 한국 축구에 ‘2002년발 먹구름’이 드리웠다. 신태용(47) 감독을 중심으로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준비에 나서려던 한국 축구대표팀이 ‘거스 히딩크(71·네덜란드)’라는 초대형 이슈에 갇혔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기억하는 대다수 축구 팬은 “당장 히딩크 감독에게 대표팀 지휘봉을 맡겨 한국 축구의 환골탈태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대한축구협회와 축구계 인사 다수는 “명분과 실리, 그 무엇을 따져도 히딩크 감독 재발탁은 말이 안 된다”며 맞서고 있다.

6월 연락받은 적 없다던 축구협회 #“문자 받았다” 말 바꿔 거짓말 논란 #“71세 고령, 리더십 약화” 우려도 #일각선 “기술고문 위촉” 대안 제시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국이 천신만고 끝에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지난 6일 ‘거스히딩크재단’ 관계자가 논란에 불을 붙였다. 그는 “히딩크 감독이 한국 축구대표팀을 돕고 싶어한다. 한국 국민이 원한다면 한국 축구를 위해 기여할 용의가 있다. 감독이든 기술고문이든 역할은 개의치 않는다. 연봉 등 대우도 상관없다”고 주장한 게 발단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14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런 입장을 재확인했다.

축구 팬들 반응은 폭발적이다. 히딩크 관련 보도가 나오자 “당장 모셔오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청와대 홈페이지에 히딩크 감독 재발탁을 촉구하는 청원까지 등장했다. “히딩크 감독과 관련 논의를 진행할 계획이 없다”고 밝힌 축구협회는 공교롭게도 협회 고위층 비리 의혹까지 겹치면서 팬들의 집중 성토에 휩싸였다.

히딩크 감독 지지층은 “맥 빠진 축구대표팀 분위기를 확 바꿀 해결사는 오직 히딩크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히딩크재단의 한 관계자는 “히딩크호로 간판을 바꿔 단 축구대표팀이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서 부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준비 과정은 신태용호와 확연히 다를 것”이라며 “학연·지연을 배제한 객관적 선수 선발을 통해 대표팀 내부 갈등도 해소할 수 있다. 2002년을 기억하는 축구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응원이 함께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히딩크 감독은 경험과 리더십을 겸비한 세계 수준의 지도자”라며 “울리 슈틸리케(62·독일) 전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은 직후인 지난 6월 히딩크 감독 측에서 ‘대표팀을 이끌고 싶다’고 의사를 알려왔을 때 축구협회의 대응이 부적절했다. 그 부작용이 지금 나타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호곤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앞서 “6월 히딩크 감독 측으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은 적이 없다. (히딩크가 언급되는 게) 불쾌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14일 히딩크 감독이 입장을 밝힌 뒤에는 “히딩크재단으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은 건 맞다”고 말을 바꿔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다. 신 교수는 “신태용 감독은 당장은 한발 양보해 대표팀 수석코치를 맡다가 (월드컵 후) 히딩크 감독이 물러나면 지휘봉을 물려받는 게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축구협회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정몽규 축구협회장은 본선 진출 확정 직후 히딩크 관련 질문을 받자 “지난 7월 신태용 감독을 임명하면서 본선까지 계약했다. 히딩크 감독이 훌륭한 지도자인 건 맞지만 9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을 이끈 지도자를 원칙 없이 바꿀 순 없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히딩크 감독이 2002년 때 보여줬던 지도력을 다시 보여줄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일흔이 넘은 고령의 지도자에게서 15년 전과 같은 리더십을 기대하는 건 무리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K리그 팀 감독은 “세계 축구의 전술 흐름은 최근 2~3년 주기로 빠르게 바뀐다. 그런 맥락에서 히딩크 감독의 지도 방식도 현재의 시각에서 보면 구식”이라며 “2010년 이후 여러 팀을 맡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건 그런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팬들 요구로 복귀했던 프로야구 한화의 김성근 전 감독이 달라진 구단 운영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낙마한 게 타산지석”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히딩크 감독을 대표팀 기술고문에 위촉하는 방법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신태용 감독의 지위를 인정하면서도 히딩크 감독의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절충안이다. 히딩크 감독 측에선 “기술고문 역할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유연한 입장이지만 축구협회가 “(감독이든 기술고문이든) 논의할 계획이 없다”며 단호한 입장이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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