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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이란式 해법에 소극적인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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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볼 때까지 이 길을 변함없이 더 빨리 가야 하겠다는 의지를 더욱 굳게 가다듬게 하는 계기로 되었다.”

유엔 추가 대북 제재 결의 2375호에 대해 13일 북한이 외무성 보도 형식으로 내놓은 입장이다. 결국은 핵 실험과 미사일 시험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원유 금수조치가 빠지는 등 당초 기대했던 초강경 제재가 현실화되지 못한 만큼 다음 단계에 대한 고민도 곧바로 시작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12일(현지시간) “또 다른 매우 작은 걸음”이라며 “그런 제재들은 궁극적으로 일어나야하는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11일(현지시간) 유엔 대북 제재안 표결을 전후해 ‘이란식 해법’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통화에서 “이란 핵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EU(유럽연합)의 중재 경험과 노력이 북핵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프랑스와 EU의 역할에 기대감을 표명했다. 북핵 국면에서 문 대통령이 이란을 언급하기는 처음이었다. 조태열 유엔 주재 대사도 추가 대북 제재 통과 이후 특파원 간담회에서 “이란은 개방경제이고 북한은 국제경제에 편입되지 않아 많은 차이가 있지만, 이란도 제재 효과가 있으니까 핵 합의에 이른 것”이라는 말을 꺼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10일(현지시간)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란식 핵 협상 방법을 재차 제안하며, 독일이 중재역할에 나설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왼쪽)이 2015년 이란과의 핵 협상 과정에서 백악관으로 국가안보팀을 소집해 스위스에서 미국 협상팀을 이끌고 있는 존 케리 국무장관 등과 화상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백악관 플리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왼쪽)이 2015년 이란과의 핵 협상 과정에서 백악관으로 국가안보팀을 소집해 스위스에서 미국 협상팀을 이끌고 있는 존 케리 국무장관 등과 화상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백악관 플리커]

‘이란식 해법’은 국제사회가 제재와 대화를 병행해 핵개발을 중단시킨 성공 모델이다. 앞서 유엔 안보리는 2002년 이후 핵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차례 이란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무용지물이었고, 미국이 2010년 6월 이란 원유를 수입하는 제3국에 대해 미국 기업과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는 세컨더리 보이콧 조항을 담은 ‘이란 제재법’을 통과시켰다. 이후 안보리 상임 이사국 5개국(미국ㆍ영국ㆍ프랑스ㆍ중국ㆍ러시아)과 독일이 중재에 나섰고, ‘이란의 핵시설을 사찰하고, 핵 개발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대신 이란에 가해졌던 각종 제재를 해제한다’는 내용의 합의가 이뤄졌다.

‘이란식 해법’은 제재와 대화를 병행했다는 점에서 ‘대화의 장’을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과도 궤를 같이 한다. 지금은 제재 국면이지만 궁극에는 대화(협상)를 위한 테이블이 열려야만 한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 내부에선 이란식 해법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다. 북한은 이란과 달리 ▶핵개발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고, ▶경제적으로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폐쇄성을 띄고 있다. 결국 중국을 움직여야 원유 금수 조치와 같은 봉쇄가 1차적으로 가능한데, 미국은 중국을 겨냥한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정상적 거래를 하는 제3국 개인·기업에 대한 제재)’은 커녕 불법행위에 대한 제재에도 눈치를 보는 상황이다. 미·중관계를 해칠 수 없고, 미국 경제에도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중재’라는 측면에서 보면 북핵 문제는 이미 6자회담(한국·북한·미국·중국·러시아·일본)이라는 기본적인 협상 테이블을 갖고 있으나 중단된 상태다. 또 미국 본토 타격을 목표로 도발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북한과의 대화 테이블을 EU 등 다른 국가가 중재를 통해 차려주는 걸 트럼프 행정부가 원할 가능성도 작다는게 청와대 내부의 시각이다.

정부 관계자는 “국제사회가 개입해서 핵 개발을 못하게 했다는 점에서 성공사례이기는 하지만 북한이 미국하고만 상대하겠다는 상황에서 가능하겠냐”고 말했다. 그는 “다만 북한이 현재는 중국도 미국도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의를 가진 제3국가의 얘기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일 수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북한에 영향력을 미칠 국가가 중국을 제외하고 없는 것도 한계”라고 말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남은 수단은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는 것인데 미·중관계를 고려하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결국 북한이 장거리 핵 미사일 개발을 완료하게 되면 본격적으로 북·미 대화에 나서려할 것이고, 우리는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ㆍ미 양국이 북한과의 대화 조건이 핵ㆍ미사일 실험 동결인지, 프로그램 동결인지, 검증을 동반한 동결인지 등을 조율하고, 북한이 대화에 응할 경우 무엇을 보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유미ㆍ허진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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