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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허리케인의 복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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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나현철
나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나현철 논설위원

나현철 논설위원

허리케인의 고향은 의외로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이다. 미국 본토 면적만 한 이 땅에 여름 땡볕이 내려쬐면 5㎞ 상공까지 거대한 건조 기단이 치솟는다. 이 공기가 아프리카 제트기류를 타고 대서양으로 흘러들면 수면의 습기를 빠르게 흡수하면서 열대성 폭풍우가 된다. 이 과정에서 생긴 상승기류는 지구 자전에 따른 ‘코리올리 효과’로 시계 반대방향으로 회전한다. 작으면 반경 100㎞, 큰 것은 2000㎞에 이르는 허리케인의 탄생이다.

허리케인은 카리브해와 미국 남동부에 악몽 같은 존재다. 해마다 두세 개가 카리브해 섬나라들을 덮쳐 막대한 피해를 낸다. 몇 년에 한 번씩은 미국을 강타하기도 한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며칠 새 1000억 달러가 넘는 피해를 입혔다. 허리케인은 바람 세기에 따라 1등급부터 5등급까지로 나뉜다. 숫자가 높아질수록 위력이 강하다. 얼마 전 미국 텍사스 북부를 물바다로 만든 하비는 4등급 허리케인이었다. 초속 59m, 시속 215㎞에 이르는 풍속과 함께 엄청난 폭우를 뿌려 수만 명의 이재민을 냈다.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허리케인 어마가 플로리다에 상륙했다. 이미 500만 명이 대피했지만 인명·재산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바로 뒤에 또 다른 허리케인 호세도 다가오고 있다. 허리케인 세 개가 잇따르는 이례적 상황이다.

허리케인의 자세한 발생 과정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열대성 폭풍처럼 수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바닷물 온도가 섭씨 26.5도 이상일 때만 발생하고 그 온도가 높을수록 규모가 커진다. 바닷물 온도가 섭씨 1도 올라가면 수증기가 7%씩 증가하기 때문이다. 미국 MIT대학의 캐리 이매뉴얼 교수는 지난 50년 동안 있었던 태풍과 허리케인을 분석해 지구 온도가 0.5도 상승하면 태풍이나 허리케인의 위력이 약 두 배 증가한다고 주장한다.

지구를 하나의 큰 기계로 본다면 허리케인은 자동 온도조절장치다. 열대의 뜨거운 대기를 온대쪽으로 보내 기온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지구가 뜨거워지면 허리케인도 자주 더 크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 취임 뒤 파리기후협약부터 탈퇴했던 트럼프에게 자연이 복수하는 것 같다.

나현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