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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박대기? "대피하라면서 기자는 왜 태풍 속에서 보도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CNN의 베테랑 기자인 빌 위어는 10일(현지시간) 초강력 허리케인 ‘어마’가 들이닥친 플로리다주 키 라르고에서 생중계를 했다. 거센 비바람 속에서 그는 정면의 카메라를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 똑바로 서 있지도 못했다. 그는 줄곧 넘어질 듯 휘청거렸다.

미 허리케인 '어마' 취재 기자 총출동 # 거센 비바람 속 몸 휘청거리며 생중계 #"대체 왜 저런 곳에 기자 보내나" 비판 #"허리케인 위협 전하려면 필수" 주장도

생중계 장면이 SNS를 통해 공유되면서 뜻하지 않은 비난 여론이 조성됐다. “대체 왜 방송사가 기자를 저런 곳에 내보내야 했느냐”는 것이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안전하지 않다는 걸 솔선해 보여주고 있다”고 비꼬았다. 또 다른 사람은 “거주자들은 대피해야 한다고 보도하면서, 자신은 그 위험한 현장에 있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CNN뿐 아니라 각 방송사의 수많은 기자들이 ‘어마’ 취재를 위해 플로리다에 총출동했다. MSNBC의 아리아나 안텐시오는 마이애미의 대로에서 나무가 바람에 꺾여 넘어지는 현장을 보도했다. 대로변의 다른 나무들은 좌우로 마구 흔들렸고, 안텐시오 기자 역시 몸을 가누기 어려워했다.
마이애미 해변에서 허리케인을 취재한 CNN의 경 라 기자는 “강철 철책이 없었다면 날아가 버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방송사들이 태풍이 몰아치는 현장으로 기자들을 보낸 건 수십 년도 더 된 ‘전통’이다.
NYT는 CBS 앵커를 지낸 댄 래더가 그 효시라고 지목했다. 1961년 허리케인 카를라가 미 텍사스주를 강타했을 때다. 휴스턴 지역방송 KHOU 기자였던 그는 허리케인 현장을 생중계했다. 마이크를 들고 허리까지 차오른 물살을 가르며 보도하는 래더의 모습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허리케인의 위협이 처음으로 미 전역에 생생하게 전달됐고, 래더는 전국 방송기자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NYT는 “방송사들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극적으로 담아낸 장면을 갈구한다”며 이같은 보도 방식이 널리 퍼지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보도가 흔해지고 시대가 변하면서 시청자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특히 소셜미디어가 급부상하면서 강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정보를 전달하는 기자가 허리케인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보도하는 것은 불필요하며, 선정적인 구경거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반론도 있다. 시청자들이 허리케인의 위협을 실감하도록 하려면 현장에 나가는 것이 필수라는 견해다. 또 방송사가 철저히 위험에 대비한다고 주장한다. CNN의 존 버만 기자는 마이애미의 허리케인 현장을 취재하면서도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허리케인 '어마'가 덮친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시의 침수된 도로에서 취재 중인 방송사 기자들. [AP=연합뉴스]

지난 10일 허리케인 '어마'가 덮친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시의 침수된 도로에서 취재 중인 방송사 기자들. [AP=연합뉴스]

지난 10일 거센 비바람을 피해 엎드린 채 리포팅하는 MSNBC의 케리 샌더스 기자. [AP=연합뉴스]

지난 10일 거센 비바람을 피해 엎드린 채 리포팅하는 MSNBC의 케리 샌더스 기자. [AP=연합뉴스]

지난 10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해변에서 허리케인을 취재 중인 CNN의 경 라 기자. [AP=연합뉴스]

지난 10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해변에서 허리케인을 취재 중인 CNN의 경 라 기자. [AP=연합뉴스]

NYT는 “지금 시대에 이런 취재는 일상이 됐다”며  “기자들은 이런 식의 접근 방식에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전했다.
허리케인 취재를 25년 간 담당한 CBS의 마크 스트라스만은 “기자들이 왜 위험한 환경에서 시청자들에게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하느냐고 묻는 건 일리있다”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TV는 시각적인 것이 전부”라며 “보이는 것이 진짜이며 중요하다고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열악한 지역 방송의 경우 몸으로 부딪힐 수 밖에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텍사스주 보몬트의 채널 ‘12뉴스’ 기자인 자크 마스는 지난달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홀로 ‘M.M.J.’로써 허리케인 하비를 취재했다”고 밝혔다. ‘M.M.J.’는 ‘멀티미디어 저널리스트(multimedia journalist)’의 약자로 한 사람이 카메라맨·프로듀서· 에디터까지 1인 다역을 맡아 취재하는 것을 말한다.

국내에서도 방송 기자들이 천재지변 상황에서 폭설과 비바람을 맞아가며 취재하는 건 일반적이다. 특히 지난 2010년 ‘눈사람’ 같은 모습으로 폭설 소식을 전했던 KBS 박대기 기자가 화제가 되면서, 홍수로 차오른 물 속에 들어거나 눈밭에 파묻혀 생중계하는 일들이 빈번해졌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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