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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르겠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48호 34면

시인 쉼보르스카의 노벨상 수상연설 중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나는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가운데 새로운 영감이 솟아난다는 사실입니다…살인자들, 독재자들, 광신자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정치가들의 문제는 그들이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네,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유일한 것으로 만족하고 그 밖의 다른 것들은 관심밖에 있습니다. 다른 쪽을 향해 눈을 돌리는 순간 자신들이 주장하는 논쟁의 힘이 약해질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지 않는 모든 지식은 결국엔 생존에 필요한 열정을 잃게 되고 머지않아 소멸되고 맙니다. 과거와 현재의 역사가 너무도 잘 말해주듯, 극단적인 경우에는 사회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져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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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사전여자의 오래된 선택 장애, 혹은 비겁함 혹은 무지함 때문에 자꾸 남들에게 해야 하는 말이지만, 어쩌면 그것 때문에 그 여자가 세상의 확신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해주는 주문과도 같은 말.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부럽다. 예를 들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만 나오면 “그런 멜랑콜리 취향의 맹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확신말이다. 나는 속으로 열심히 그어 놓았던 그의 책 속 밑줄들을 떠올리며 머뭇거린다. “도로 한가운데 뻥 뚫린 깊은 구덩이를 양끝에서 둘이 들여다 보고 있는 듯한 침묵”. 서너 페이지마다 한 번씩 튀어나오는 이런 절묘한 비유를 읽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존경심을 품었던 나는 슬그머니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그런가요. 잘 모르겠어요”하고 얼버무린다.

여기서 나는 하루키를 말하려는 게 아니고 나의 확신 결핍을 말하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어릴 적부터 ‘선택 장애’가 있었던 것 같다. 학창시절의 찬반 토론에 이쪽 말을 듣다 보면 이 말이 옳고 저쪽 말을 듣다 보면 그 말도 옳은 것 같아서 어느 쪽에 서야할지 몰랐다.

아마도 그건 내 비겁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분명한 정치적인 입장이 있고 흥분하면 다른 사람에게 그걸 소리높여 말할 때도 있지만, 겉으로는 드러내고 싶지 않고 속으로는 늘 불안해한다. 내가 지지하는 쪽과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들이 백 퍼센트 옳지 않을 것이고 그럴 경우를 대비해 미리 한발 짝 빼두고 싶은 것이다.

또 아마도 그건 내 지식의 부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가끔씩 “누구누구가 인기를 얻고 어떤 어떤 신드롬이 생겨나는 건 사회의 어떤 측면을 반영한 것인가요?” 이런 질문에 대한 코멘트를 요청받을 때마다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라며 썰렁한 분위기를 연출한 뒤 부지런히 공부하지 않는 나를 탓했다. 하루키만 해도 그렇다. “그래도 그의 비유만큼은…”이라고 맞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걸 읽느니 차라니 OO을 보는 게 낫다”는 확신 어린 상대방의 말에 또 마음이 뒷걸음질친다. OO을 읽지 않아 그것보다 하루키가 나은지 정말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치나 평론 혹은 사회 운동에 이르기까지 확신을 가져야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존경스럽고 부러우면서도 ‘나는 잘 모르겠어’만 남발하는 나와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는 확신만큼은 가지게 된다.

또 아마도 확신 그 자체를 내가 점점 더 믿지 않게 되었기 때문인 듯도 하다. 확신이 혐오와 맞물렸을 때 넘쳐나는 그 확신에 찬 혐오의 말들, 여자를 배제하고 외국인을 배제하고 성소수자와 장애인을 배제하고 자신의 편이 아닌 사람들을 배제할 때마다 확신은 위험하고 두려운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잘 모릅니다.” 부끄럽고 비겁하긴 하지만 이 말을 더 하면서 살고 싶어졌다. 물론 확신을 혐오하지는 않을 것이다. 확신이 덜 필요한 일을 찾겠지만 그래도 확신을 가지지 않고 살 수는 없을테니.

그래도 ‘나는 잘 모른다’는 말을 방패막이 삼아야 그 뒤에서 조금씩 나의 확신을 향해 조금씩 더 용감해지고 더 지식을 쌓고 그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지혜를 배울 여유를 스스로에게 줄 수 있을 것 같다. 하루키보다는 내가 더 확신을 가지고 존경하는 시인 쉼보르스카의 말이 큰 도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모르겠어’라는 두 마디의 말을 나는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 말에는 작지만 견고한 날개가 달려 있습니다. 그 날개는 우리의 삶 자체를, 이 불안정한 지구가 매달려 있는 광활한 공간으로부터 우리 자신들이 간직하고 있는 깊은 내면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만들어 줍니다”.

이윤정 : 칼럼니스트. 사소하고 소심한 잡념에 시달리며 중년의 나이에도 영원히 철들지 않을 것 같아 고민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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