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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직업 리포트] 발리에서 서울 업무 ‘노마드 노동자’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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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대학 교수인 이탈리아인 마르코 클레멘테는 봄학기를 마친 6월부터 인도네시아 발리 우붓의 공유 오피스 ‘후붓’에 머물고 있다. 이곳에서 경영학 저서를 집필 중인 그는 “방학 때마다 새로운 곳에서 낯선 문화를 경험한다”고 말한다.

발리 공유오피스 ‘후붓’ 체험기 #소속된 직장 없고 출퇴근도 자유 #“쉬다가 마음 내킬 때만 일 가능” #‘벌써 1만 명’ 노마드족 성지로 #역량 사고파는 온라인 플랫폼 늘어 #미국은 단기 임시직 ‘긱’이 대세

역시 현지에서 만난 프랑스인 번역가 아라벨 브로카르. 4개 국어를 구사하는 그는 10년째 세계 곳곳을 떠돌아다닌다. 마음 내킬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땐 쉰다. 그는 “연말까지는 발리에 머물다 이후 도쿄나 서울로 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후붓’에서 만난 디지털 노마드(유목민)의 삶은 낭만과 흥분이 뒤섞여 있었다. 후붓은 2012년 설립 후 1만 명이 넘는 이가 방문하면서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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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노마드’.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디지털기기를 통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일하는 이들을 뜻한다. 보통 정보기술(IT)에 능한, 스타트업 창업자나 프리랜서가 많다.

이들은 급변하는 미래 직업 지형의 상징이다. 온라인 플랫폼이 발달하는 미래엔 경제주체가 대기업에서 개인 중심으로 바뀔 거라고 전망하는 전문가가 많다. 이른바 ‘공유경제’의 부상이다. 기존엔 대기업에서 맡았던 상품 기획과 디자인·제조까지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인들이 담당하게 된다는 얘기다.

공유경제 전문가인 아룬 순다라라잔 뉴욕대 석좌교수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맞춤형 상품과 서비스를 사고파는 모델이 확산될 것”이라며 “20년 뒤 미국 전체 노동인구의 절반은 직장에 다니지 않고 플랫폼을 기반으로 자신의 역량을 사고팔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연히 일의 풍경도 바뀐다. 직장에 소속되지 않고 사무실 없이 자유롭게 일하는 이들이 급증한다. 이런 일자리 지형의 변화는 개인이 활용하기에 따라 기회가 될 수도, 함정이 될 수도 있다. 미래학자인 정지훈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전문성·창의성이 확실한 개인은 네트워크에서 브랜드를 키워 큰 부를 쥘 기회를 얻을 것”이라며 "역량이 두드러지지 않는 상당수 개인은 사회안전망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불안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세계 일자리 지형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는 국내 사정이다. 경직된 고용 시장구조, 안정성을 직업 선택의 제1순위로 삼는 풍조로 미래에 대비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는 “미국에서 최근 10년 사이 늘어난 직업의 80% 이상이 특정 소속 없이 단기간으로 일자리 계약을 맺는 긱(Gig·단기 임시 계약직)”이라며 “한국 젊은이들이 정규직이나 공무원 같은 평생직장 개념에 매달리다 변화에 뒤처질 수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발리=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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