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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정석] 나는 딸기 키우는 '청년 농사꾼' 권두현입니다

중앙일보

입력

"당신은 왜 일 하십니까?"
뻔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열에 여덟아홉은 "그야 물론 돈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말 우리는 밥벌이 때문에 일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이웃들을 찾아가 직접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구두닦이·사육사·버스기사…. 평범한 우리 14명 이웃의 입을 통해 우리가 진짜 일하는 이유를 들어봤습니다. '직업의 정석:당신은 왜 일하는가' 열두 번째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번 주인공은 청년 농사꾼 권두현(30) 씨입니다. / 특별취재팀


올해로 딸기농사 3년차인 초보 농사꾼 권두현(사진) 씨는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파밍보이즈(Farming Boys)'에 출연했다. 농사에 뜻을 둔 세 청년이 세계 농장을 찾아다닌 여정을 담았다. [사진 영화사 진진]

올해로 딸기농사 3년차인 초보 농사꾼 권두현(사진) 씨는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파밍보이즈(Farming Boys)'에 출연했다. 농사에 뜻을 둔 세 청년이 세계 농장을 찾아다닌 여정을 담았다. [사진 영화사 진진]

반가운(?) 그의 등판

‘띠리링’. 알람이 운다. ‘저는 조금 일찍 와버렸네요. 시간 맞춰 오시면 될 듯합니다!!’

문자 메시지가 도착한 것은 약속 시각 30여분 전이었다.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있는 커피숍에서 보기로 했는데, 이 청년, 벌써 도착했단다. 걸음을 재촉해 약속 장소로 향했다. 청계천을 끼고 있는 커피숍 문을 열고 들어가는 찰나, 눈에 익은 등판이 시야를 채운다. 반가운 마음에 등을 두드리고 보니, 아뿔싸. 우리는 초면이었다. 청년 농사꾼 권두현 씨와의 만남은 이렇게 이뤄졌다.

그는 영화사 진진이 지난 7월 내놓은 농사를 꿈꾸는 청년들의 세계농장탐방 다큐멘터리 ‘파밍보이즈(farming boys)'의 당당한 주연배우(?)다. 인터뷰 직전 영화를 보다 나왔으니, 영화 내내 호미질하고 삽질하던 그의 뒷모습이 눈에 익었던 것이다. 그의 까무잡잡한 얼굴을 보고 흡사 ‘아는 동생’ 느낌을 받은 것도 같은 이유였다.

“영화에 나왔다고 그런지 알아봐 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참 신기하더라고요.” 멋쩍은 표정으로 그가 웃는다. 부지런한 이 청년, 인터뷰를 위해 경남 산청에서 달려왔다. 애지중지하는 딸기들을 뒤로하고.

대학졸업 후 무일푼으로 떠난 농업여행. 권두현(사진) 씨는 1년반 동안 세계 12개국 35곳의 농장을 찾아갔다. 마른 먼지 풀풀 날리는 밭에서, 양떼가 뛰노는 초원에서 하루 4~6시간을 일하고 숙식을 제공받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곧바로 딸기농사에 도전했다. 여행에서 몸과 가슴으로 배운 농사일을 토양 삼아 '온나 농장'을 꾸려가고 있다. [사진 영화사 진진]

대학졸업 후 무일푼으로 떠난 농업여행. 권두현(사진) 씨는 1년반 동안 세계 12개국 35곳의 농장을 찾아갔다. 마른 먼지 풀풀 날리는 밭에서, 양떼가 뛰노는 초원에서 하루 4~6시간을 일하고 숙식을 제공받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곧바로 딸기농사에 도전했다. 여행에서 몸과 가슴으로 배운 농사일을 토양 삼아 '온나 농장'을 꾸려가고 있다. [사진 영화사 진진]

“농사가 싫다고!” 권노예의 외침

돌고, 돌고, 또 돌아서 만나게 된 농사꾼의 길, 그 출발선은 고향인 경남 산청 강누마을이었다. 부모님은 고향에서 농사를 지었다. 위로 누나가 셋이나 있는데, 부모님은 아들인 권두현만 밭으로 논으로 불러댔다. 친구들은 그런 그를 ‘권노예’라고 불렀다. 놀지도 못하고 노예처럼 하루종일 일만한다고. 학창시절 ‘한 주먹’ 꽤나 썼던 몸인데 별명이 권노예라니. 굴욕이 따로 없었다. 농사가 싫은 것은 당연지사였다.

하루는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가는데 먼발치에서 아버지 모습이 보였다. 자전거 옆구리에 투박하게 꽂은 삽 한 자루 그리고 흙투성이 장화에 작업복. 그날 농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버지가 너무 부끄러워 줄행랑을 쳤다. “그땐 부모님 말 정말 안듣는 청개구리 아들이었어요. 공부보다 노는 게 훨씬 좋았어요. ‘노는 행임(형님)’소리도 들었어요.”

여느 혈기왕성한 청년처럼 권두현씨도 미래를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군 제대를 하고 찾은 고향.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랐다. 문득 '여기에서 농사꾼이 되어 한 번재미있게살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지키고 싶은 경남 산청의 강누마을 전경 [사진 권두현]

여느 혈기왕성한 청년처럼 권두현씨도 미래를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군 제대를 하고 찾은 고향.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랐다. 문득 '여기에서 농사꾼이 되어 한 번재미있게살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지키고 싶은 경남 산청의 강누마을 전경 [사진 권두현]

불운과 행운, 원예학과를 가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춤도 추고 잘 놀던’ 학생 권두현은 정신을 차렸다. “꿈이 뭐냐. 사내자식이 꿈을 한 번 가져봐야지!” 매형의 한 마디가 자극이 됐다. 뭔가 해보고 싶었다. 그가 다니던 공업고등학교에선 공부 잘하는 학생에 한해 대기업 취업길이 열려있었다. 단박에 독서실을 끊고 피터지게 공부를 시작했다. 전교생 300여명 가운데 3등으로 성적이 수직상승했다. 자격증도 닥치는 대로 땄다. 총 8개. 전교에서 두 번째로 많았다.

이제 대기업에 취직만 하면 ‘꽃길’이겠구나 싶었는데, 일이 터졌다. 졸업을 6개월 앞두고 학교 선배들의 ‘위장취업’ 사건이 드러난 것이다. 학교가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현재 회사에 다니지 않는 졸업생까지 취업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거다. 대기업에 학교 평판이 좋을 리가 없었다. 취업길이 막혀버렸다. 울며 겨자먹기로 대학입학을 하기로 했다. 벼락치기로 수능시험 준비를 하고 “조선산업이 앞으로 30년은 유망하다더라”는 주변 조언을 믿고 덜컥 조선공학과를 선택했다.

경남 산청에서 무려 부산에 있는 대학에 진학을 했는데 놀 수가 없었다. 열심히 공부를 해서 학점 4.0을 넘기긴 했는데 재미가 없었다. 친구들처럼 군대에 갔다. 제대하고 집으로 돌아온 날.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올랐다. 구불구불 마을을 크게 휘감아 도는 강줄기를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편안했다. ‘앞으로 이곳에서 재미있게 살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권두현은 ‘말 안 듣는 아들’답게 진주에 있는 경상대 원예학과로 덜컥 편입을 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파밍보이즈'의 한 장면. 왼쪽부터 권두현ㆍ유지황ㆍ김하석 씨. [사진 영화사 진진]

다큐멘터리 영화 '파밍보이즈'의 한 장면. 왼쪽부터 권두현ㆍ유지황ㆍ김하석 씨. [사진 영화사 진진]

어쩌다 파밍보이즈(Farming Boys)

농사의 기본은 생산. 책상에 앉아있는 공부도 남들 부끄럽지 않게 했지만 전국 70개 농장을 돌아다니는 ‘현장공부’를 끈질기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을 들여다보는데 인터뷰 기사 한 개가 눈에 들어왔다. 딸기농사를 짓는 농부의 성공담이었는데 “딸기 농사 잘하려고 네덜란드에 7번이나 다녀왔다”는 것이었다. 승부욕(?)이 발동했다. “그럼 나는 8번이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교수님을 찾아갔다. “외국 나갔다 온나! 사내 자식이 하고 싶은 것 찾아야지.” 공무원 시험을 보라는 답을 예상했던 그는 용기를 얻었다. 그 길로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들고 유학원을 찾아갔다. 졸업을 앞둔 2014년 1월이었다. ‘농업에 관심이 있다’니 유학원 직원이 의아해했다. “저기요, 근데 비슷한 분들이 또 있었어요.” 직원으로부터 전화번호를 건네받았다. 경남과학기술대 선·후배 사이인 유지황(31)씨와 김하석(30)씨였다. 농업여행을 준비하던 두 사람은 권두현씨보다 앞서 호주로 떠났다. 권씨는 3월에서야 짐가방을 꾸려 필리핀으로 갔다.

세 사람이 뭉친 건 6월이었다. 호주에서 만나 전세계 농장을 함께 돌기로 했다. 영화사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도 이때였다. 그렇게 세 사람은 1년 반 동안 네덜란드·프랑스·이탈리아 등 12개국 농장 35곳을 돌았다. 우프(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라는 유기농 농장 네트워크에 속해있는 곳들을 찾아갔다. 농장에서 하루 4~6시간 노동을 하고, 그 대가로 숙식을 제공받았다. 젊음이 무기인 그들에게 딱인 농업여행이었다.

권두현 씨는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세계의 농장을 돌며 웃고 울었다. 마지막 여행지인 네덜란드 양목장에서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다. [사진 영화사 진진]

권두현 씨는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세계의 농장을 돌며 웃고 울었다. 마지막 여행지인 네덜란드 양목장에서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다. [사진 영화사 진진]

즐거운 농사꾼을 꿈꾸다

여행의 마지막, 네덜란드를 갔을 때였다. 양을 키우는 곳이었는데 권두현씨는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농사짓는다고 하면 새벽에 일어나 해질 때까지 일만 하는 걸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네덜란드는 달랐어요. 도착한 다음날 아침 일어났는데 커다란 테이블이 차려져있는 거에요. 일하러 간 우리 셋 말고도, 농장에 찾아온 인턴, 옆집 아줌마 10여명이 둘러앉아 식사를 했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차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오더니 예닐곱명이 내리는 거에요. 몸이 불편하거나 마음이 아픈 분들이었요.”

농장을 찾은 이들은 양치기를 하면서 심리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국가가 이런 농장을 ‘케어팜(care farm)'으로 지정한다는 설명에 권두현씨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꾼이 따로 있고, 1시간 일하고 1시간 쉬면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사꾼과 농장. 꿈에 그리던 곳이 아닌가.

수익구조도 좋았다. 양 우유로 치즈와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농장을 지나가는 여행객과 주민들에게 팔았다. 농장에선 주민들의 생일파티가 열리기도 했다. 말하자면, 이곳 농장은 사람들이 와서 치유하고 웃고 떠들고 즐기는 그런 곳이었던 것이다. '이런 농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기 시작했다. 그런 곳을 만들 수만 있다면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람들과 만나고 즐겁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이 생겼다.

"농업여행의 가장 큰 수확은 농장주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농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운 것이었어요." 권두현(사진) 씨는 '나에게 맞는 농장을 만들고 싶다"며 딸기농장 이름을 '온나농장'으로 지었다. [사진 영화사 진진]

"농업여행의 가장 큰 수확은 농장주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농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운 것이었어요." 권두현(사진) 씨는 '나에게 맞는 농장을 만들고 싶다"며 딸기농장 이름을 '온나농장'으로 지었다. [사진 영화사 진진]

‘온나 농장’으로 고마 온나!

2015년 9월 귀국해 바로 농사일에 뛰어들었다. 부모님은 논농사 외에 딸기농사를 지으셨다. 딸기는 밥대신 먹을 정도로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다. 당연히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최악이었다. 딸기 농사에 뛰어든지 두 달이 되던 때 부모님이 인공관절 수술을 받아 엉겁결에 혼자 농사를 떠맡았는데, 딸기가 죄다 병들고 해충이 갉아먹어 상품으로 낼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절치부심 공부를 시작했다.

청년농사꾼 권두현의 딸기.

청년농사꾼 권두현의 딸기.

딸기는 다년생 줄기식물로 월동을 한다. 11월부터 딸기 농사를 시작하는데 딸기를 '잠재우는 일'부터 한다. 5도에서 영하 5도의 온도에서 500~700시간 잠을 자고 나면 ‘엄마’ 딸기가 새끼줄기를 친다. 이 작은 새끼줄기를 촘촘히 포트에 옮겨심는다. 여기서 자란 딸기 모종을 다시 땅에 옮겨심으면 그때부터 딸기 생산 단계가 시작된다.

“아직 결혼을 안했는데, 자식 키우는 기분이 들어요. 엄마 딸기 하나에서 자식 30개가 나오거든요. 이 아기들을 잘 키우는 게 제 일이에요. '우리 애들'도 세끼 먹고, 추우면 따뜻하게 해주고, 더우면 시원하게 해줘야 잘 커요. 생물이니까 관심을 받는 만큼 크죠. 관심을 안주면 성장 속도도 느리고 잎이 덜 자라더라고요.”

올해 딸기 농사 3년차에 접어든 권두현씨는 최근 농장 이름을 ‘온나’라고 지었다. “친구야 놀러 온나(와라)! 일하러 온나! 술 무러(먹으러) 온나! 내 보러 온나! 좋잖아요. 온나 농장으로 놀러 한 번 오세요!”

특별취재팀=김현예·정선언·정원엽 기자, 사진 우상조 기자, 디자인 김은교, 영상 조수진,개발 전기환·원나연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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