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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트럼프 “대북 교역 모든 국가와 거래 중단”, 세컨더리 보이콧 실현 가능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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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미국과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가 ‘레드라인(한계선)’을 밟기 시작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도발로 미국은 전면적인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제3국의 정상적인 거래도 제재)’ 카드를 꺼내 들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역시 초강수 압박 카드인 ‘대북 원유 공급 중단’ 도입을 놓고 본격적인 논의에 돌입했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미국 측이 경제적 타격을 감수해야 하는 ‘육참골단(肉斬骨斷ㆍ살을 내어주고 뼈를 취하다)’의 결단이 있어야 하고, 원유 중단은 중국·러시아의 반대로 사실상 실행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카드다. 하지만 국제 사회의 제재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 본토를 겨냥한 핵무기 개발의 완성 단계에 접어든 북한의 숨통을 조이는 데 효과적인 수단들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연합뉴스]

①세컨더리 보이콧 가능할까=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미국은 다른 옵션에 더해 북한과 거래하는 나라라면 어디든지 모든 교역을 중단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정상적인 거래를 하는 제3국 기업과 은행, 개인까지의 제재를 의미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직접 예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제 사회는 이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엄포에 그칠지 아니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3일 트위터에 "북한과 거래하는 나라라면 어디든지 모든 교역을 중단하는 방안을 고려 중” 이라고 썼다. [트럼프 트위터 캡쳐]

트럼프 미 대통령은 3일 트위터에 "북한과 거래하는 나라라면 어디든지 모든 교역을 중단하는 방안을 고려 중” 이라고 썼다. [트럼프 트위터 캡쳐]

세컨더리 보이콧은 북한의 대외 교역에서 9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을 정조준한다.

지난해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북한의 주요 통계 지표에 따르면 북한의 수출 주요국은 중국(24억8394만4000 달러)이 가장 많고, 인도(2269만7000달러), 태국(698만3000달러), 러시아(604만3000달러), 싱가포르(133만6000달러)가 뒤를 이은다. 주요 수입국은 중국(32억2646만4000달러)에 이어, 러시아(7832만8000달러), 인도(5383만1000달러), 태국(4304만2000달러), 싱가포르(2843만7000달러) 순이다.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을 실행하면 중국ㆍ러시아뿐 아니라 세계 인구 2위로 시장 규모가 큰 인도와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무역 중단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의미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무역 전문가 매튜 굿맨은 로이터 인터뷰에서 “이는 미국이 중국 뿐 아니라 (북한과 거래하는) 프랑스와 인도, 멕시코 등과도 무역을 중단하겠다는 것”이라며 “트럼프의 제안은 실행 가능하지 않다. 북한과 거래하는 모든 사람과 모든 무역을 중단한다는 개념은 어리석다”고 지적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중국산 수입 규모는 4794억 달러, 대중 수출 규모는 1702억 달러에 달한다. 수출의 7.7%, 수입의 17.7%가 중국일 정도로 미국 교역에서도 중국이 차지하는 규모가 크다. 미 컨설팅회사인 로디엄 그룹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기업의 미국 투자 규모는 총 456억 달러다. 중국 기업은 2000년부터 누적 109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해 미국에서 1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기도 했다. 미국은 그동안 단둥은행 등 미국 국내법 위반이 명확히 드러난 경우에 대해서만 제재했다. 그러나 정상적인 거래를 하는 중국 국영기업 등을 제재할 경우 미·중 통상 전쟁이 벌어진다. 그간 전문가들이 실현 가능성을 낮게 봤던 이유다.

②세컨더리 보이콧, 한국은 동참할까=트럼프 대통령의 ‘전면 거래 중단’ 발언은 북한과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레토릭(수사)일 수는 있지만 중국 기업 등에 대한 독자 제재를 확대하는 수순은 거의 필연적이다. 따라서 한국이 어느 정도 동참할 지 결정해야 하는 선택의 순간도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 한ㆍ미ㆍ일은 대북 독자 제재에 철저히 손발을 맞춰왔다. 사실상 중국을 타깃으로 한 세컨더리 보이콧 성격이 포함된다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배치 문제로 갈등이 깊어진 한·중 관계에 또 다른 대형 악재가 될 수 있다. 미국의 동참 요구에 소극적 태도를 보일 경우 가뜩이나 ‘코리아 패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한ㆍ미 관계가 흔들릴 수 있다. 외교가에선 노무현 정부 때 미국이 한국에게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를 요구했던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시 한국 정부는 정식 회원국이 아닌 옵서버 자격의 참여를 비공개적으로 결정했다가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미국의 압박에 ‘단계적’ 참여를 결정하는 등 한·미 공조에 파열음이 노출됐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의 압박이 있기는 하겠지만 대화 국면이 오면 남북 관계를 회복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현 정부에서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 정책을 펴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③원유 공급 중단, 효과 있을까=유엔 안보리의 추가 제재로는 원유·석유제품 수입 중단, 외화벌이 수단인 해외 노동자 송출 전면 금지 등이 꼽힌다. 가장 강력한 수단은 북한의 ‘생명줄’인 원유 공급 중단이다. 지난해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 2270호는 로켓 연료를 포함한 항공유를 북한에 판매하거나 공급하는 것만 금지했다. 항공유는 전체 유류 수입의 10% 정도로 북한 압박엔 한계가 있다. 반면 원유 차단은 파장이 크다. 지난 4월 중국의 대북 원유공급 차단설이 돌았을 때 북한내 기름값이 폭등하고 평양의 주유소들이 유류 공급을 제한하는 등 비상이 걸렸다.

중국은 2014년부터 무역 통계에서 대북 원유 수출 규모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중국 해관에 따르면 중국은 북한에 매년(2009~2012년) 약 52만 톤의 원유를 수출했다. 일각에서는 100만t을 공급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이 중 절반이 무상 원조로 추정된다고 한다. 외교부 관계자는 “무상 원조는 결의안에서 통상 예외로 두는 ‘인도적 목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어 중국으로선 공급 차단을 회피할 여지가 생긴다”고 말했다. 황태희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처음 석탄을 제재에 포함시켰을 때(2321호)처럼 상한제를 두거나 일시적으로 공급을 줄이는 식으로 중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선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북한에 큰 타격을 줄 만큼은 아닐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일본 도쿄신문은 이날 북한이 국제 사회의 제재 조치에 대비해 석유를 비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4월 석유 100만t 비축 목표를 세웠으며 이는 북한의 원유·석유제품 연간 수입량의 3분의 2 수준이라고 전했다.

북한은 최근 국제사회가 설정한 대북 거래 금지 품목을 연이어 공개하면서 대북제재에 효과가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지난달 23일 김정은이 화학재료연구소 방문했을 당시 공개된 사진에는 미국과 일본, 중국 등에서 생산하는 에스펙(espec)사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장비가 포함돼있다. 에스펙사의 장비는 미사일 무기의 내구성을 실험하는 데 필요한 장비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북한은 최근 국제사회가 설정한 대북 거래 금지 품목을 연이어 공개하면서 대북제재에 효과가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지난달 23일 김정은이 화학재료연구소 방문했을 당시 공개된 사진에는 미국과 일본, 중국 등에서 생산하는 에스펙(espec)사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장비가 포함돼있다. 에스펙사의 장비는 미사일 무기의 내구성을 실험하는 데 필요한 장비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이때문에 제재 수위는 충분히 높여온 만큼 선언을 늘리는 것보다는 실행력을 높이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립외교원 이상숙 연구교수는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해 북한의 전체 대외무역 규모는 65억5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4.7% 증가했고, 중국과의 무역 규모도 58억2600만 달러로 7.3% 늘었다”며 “북한의 대외무역을 겨냥한 대북 제재 효과는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대북 제재가 확대되는 시기에는 단기적으로 북ㆍ중 경제협력이 축소되는 경향이 있으나 몇 개월 이후 다시 확대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데 이는 중국 지방정부가 지속적으로 협조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북한과의 경제 협력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보고있는 중국 동북 3성 지방 정부와의 협력이 긴요하다”고 지적했다.
신종호 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장은 “미국은 세컨더리 보이콧 등으로 중국을 압박하며 원유 공급 중단과 같은 유엔 안보리 제재 강화와 그 이행을 요구할 것”이라며 “우리로선 미국과의 소통 채널을 통해 우리의 요구를 솔직하게 전달하고, 중국에도 대북 제재에 동참하도록 설득하는 외교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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