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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는 스튜핏(Stupid)!"…'욜로' 넘어 각광 받는 '짠돌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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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 할인? 안 쓰면 100% 할인!" 

'김생민의 영수증'을 진행하는 방송인 김생민씨는 시청자가 보낸 영수증을 검토하다 충동적인 지출을 발견하면 '스튜핏!'이라 외치며 따끔하게 질책한다. [사진 유튜브 캡처]

'김생민의 영수증'을 진행하는 방송인 김생민씨는 시청자가 보낸 영수증을 검토하다 충동적인 지출을 발견하면 '스튜핏!'이라 외치며 따끔하게 질책한다. [사진 유튜브 캡처]

팟캐스트로 시작해 지상파 방송까지 진출한 '김생민의 영수증'이 청년들 사이에서 화제다. 시청자들이 한 달 치 영수증을 모아 보내면 짠돌이로 유명한 방송인 김생민이 영수증을 검토하며 지출을 줄여야 할 부분을 지적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커피 사마시지 말고 면수(국수 삶은 물)를 우려 마셔라" "한턱낼 일이 생기면 소문내지 말고 조용히 넘어가라" 등 짠 내나는 조언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충동적인 소비를 발견하면 "스튜핏!(Stupid·어리석다)"이라고 외치는 게 트레이드 마크다. 팬들은 그를 '통장요정'이라 부르며 "안 사면 100% 할인"이라는 그의 명언을 가슴에 새긴다.

직장인 한모(30·여)씨는 지난달부터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다. 카드값과 '쥐꼬리만 한 적금'이 자동이체로 빠져나가니 한 달 월급이 몽땅 사라지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한씨는 "김생민씨처럼 살고 싶지는 않지만 그를 보며 큰 자극을 받았다. 방송에 엄마와 함께 영수증을 보내 볼 생각이다"고 말했다. 8년째 엑셀로 가계부를 써왔다는 유재연(31)씨는 "소비 위주의 문화로 빚을 양산하는 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 근검절약의 대명사 김생민씨가 아주 적절할 때 빛을 본 것 같다"고 평한다.

삽화=김회룡기자

삽화=김회룡기자

티끌모아 꼭 하고 싶은 것 하는 '2030 짠돌이'

저성장 시대, 수입이 늘지 않는다면 허리띠를 더 졸라매 '티끌 모아 부자'가 되겠다는 '짠돌이'가 주목받고 있다.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면 모으기를 포기하고 즐기며 살겠다는 '욜로'족과는 대조적인 소비패턴이다. 미국에서 유학 생활 중인 송모(29)씨의 하루는 '짠 내'가 진동한다. 그는 커피는커녕 음료수도 사 마신 적이 없다. 학교에 카페테리아가 있지만 매일 집에서 도시락과 물을 싸서 등교한다. 피자가 먹고 싶을 때는 캠퍼스 곳곳에서 학생회나 수업에서 나눠주는 피자를 찾아다닌다. 가족들이 여자친구와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식사를 하라고 몇십만원을 보내줘도 한 번에 쓰지 않고 저렴한 식당에서 몇 번에 나누어 쓴다. 송씨가 이렇게 짠 내 나게 사는 이유는 내년에 출시되는 3만5000달러짜리 테슬라 전기차를 사기 위해서다. 연구 조교로 일하고 받는 월급은 200만원 남짓인데 3년 동안 집세 내고, 생활비를 쓰고 2000만원을 모았다. 송씨는 "요즘 한국에서 인기가 있다는 방송인 김생민씨의 철학에 크게 공감한다"며 "적은 돈을 아껴 큰 꿈을 이루는 것이 더 좋다"고 말했다.

삽화=김회룡기자

삽화=김회룡기자

회원 10만명의 인터넷 카페 '짠돌이 부자되기'에는 가계부 작성법, 냉장고 정리로 식비 아끼기(이른바 '냉장고 파먹기') 등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한 팁이 넘쳐난다. '나의 절약일기' 게시판에는 "한강공원에 조깅을 하러 갔다 공병을 발견해 주워왔다" "하루 1000원씩 적금했다" 등 소소한 절약담이 수시로 올라온다. '짠태기(절약 권태기) 극복하기' 게시판에는 "고기를 듬뿍 넣은 김치찌개"처럼 '작은 사치'를 고백하는 글과 다른 회원들의 위로 댓글이 올라온다.

삽화=김회룡기자

삽화=김회룡기자

금융권에서도 '짠테크' 트렌드에 발맞춰 맞춤형 상품을 내놓고 있다. 우리은행의 '위비 짠테크 적금'은 한 달동안 매일 1000원씩 입금액을 늘려 자동이체하거나 생활비를 일단위로 쪼개 매일 입금하는 방식이다. KEB 하나은행은 매일 문자 메시지로 얼마를 저축할지 묻고 답한 금액만큼 이체되는 '오늘은 얼마니? 적금'을 내놨다. 소비에 익숙한 반면 노후 준비에 취약한 젊은 세대를 겨냥한 모바일 연금상품도 있다. KB국민은행이 지난달 내놓은 'KB라떼 연금저축펀드'는 매일 카페라떼 한 잔 값(5000원)을 연금으로 저축하는 상품이다.

삽화=김회룡기자aseokim@joongang.co.kr

삽화=김회룡기자aseokim@joongang.co.kr

세계적인 '저성장' 추세…프랑스에서는 짠돌이 영화 인기

지난달 30일 개봉한 프랑스 영화 '페니 핀처'에도 지독한 구두쇠가 나온다. 바이올리니스트 프랑수아는 해가 진 후에도 불을 켜지 않는다. 창문으로 들어온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고독히 저녁 식사를 한다. 전기료를 아끼기 위해서다. 식탁에 올라온 케첩은 아껴먹느라 유통기한도 넘겼지만 개의치 않는다. 좋아하는 여성을 따라 고급 레스토랑에서 한 접시에 110유로(약 15만원)짜리 메뉴를 보고 놀라지만, 식사를 마치고 남은 음식을 봉지에 담아 오는 것으로 위안을 삼기도 한다. 본의 아니게 참석한 기부 행사에서는 5만원가량의 돈을 내놓으며 눈물까지 글썽인다. 이 영화는 지난해 프랑스에서 개봉 한 주만에 관객 100만 명을 모아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영화 '페니핀처'의 주인공 프랑수아는 '썸녀' 발레리를 따라 고급 레스토랑을 방문했다 한 접시에 100유로가 넘는 메뉴판을 보고 경악한다. 프랑수아는 남은 음식을 미리 준비한 비닐봉투에 담아 집으로 가져가는 구두쇠다. [중앙포토]

영화 '페니핀처'의 주인공 프랑수아는 '썸녀' 발레리를 따라 고급 레스토랑을 방문했다 한 접시에 100유로가 넘는 메뉴판을 보고 경악한다. 프랑수아는 남은 음식을 미리 준비한 비닐봉투에 담아 집으로 가져가는 구두쇠다. [중앙포토]

이현 기자 lee.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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