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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종로구 등 156개 시군구 손자보다 조부모가 많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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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보다 애들이 많이 줄었어요. 재개발되면서 아파트가 들어선 데는 애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데는 혼자 사는 할머니·할아버지가 많아요. 복덕방에서 할머니 혼자 산다고 하면 안 받아 줘요."
 3일 오후 서울 중구 신당동의 어린이공원 벤치에서 80대 할머니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옆 벤치에는 할아버지들이 장기를 두고 있다. 한 할머니는 신당동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넋두리를 했다. 공원 옆 문구점 주인은 "어린이공원인데도 평일에는 노인밖에 없다. 경로당이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15세 미만 인구 대비 노인 비율 분석 #노인이 추월한 데가 6년 새 46곳 늘어 #서울 중·종로 두 곳서 18개 구로 급증 #서초·양천·강남·송파 등은 애가 더 많아 #부산 강서·기장 외 구 모두 노인 추월 #젊은층 빠져나가고 출산율 줄어든 탓 #"동네소멸 막으려면 도심재생 서둘러야"

 시청 근처 롯데캐슬 아파트 놀이터에 주민 3명이 아이 한둘을 데리고 나와 놀고 있다. 주민 김 모(41) 씨는 "젊은 부모가 비교적 많은 단지인데도 애들이 별로 없어서 학습지 교사가 잘 안 오려 한다"며 "애들이 어린이집 외에 바깥에서 친구를 만나서 놀 기회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는 서울에서 유소년(15세 미만) 대비 65세 노인 비율이 가장 낮다. 노인 1명에 유소년이 1.6명에 불과하다. 노인이 유소년의 1.7배다. 손자·손녀보다 할아버지·할머니가 훨씬 많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한국의 노인 인구가 유소년 인구를 추월하는 '인구 지진(Age-quake)'이 발생했다. 전국 시·군·구 별로 따져보면 6년 전 2010년 인구센서스에서 '노인 추월' 현상은 110곳에서 발생했다. 지난해 인구센서스에서 229곳의 시·군·구 중 156곳으로 크게 늘었다.
 6년 새 노인 추월에 합류한 데가 서울·부산 등의 대도시라는 점이 문제다. 지난해 서울과 6대 광역시의 44개 구가 노인이 더 많다. 6년 전에는 14곳에 불과했다. 특히 서울의 경우 2010년에는 종로구·중구만 노인이 추월했으나 지난해에는 18개 구로 증가했다. 반면 서울 서초구가 노인 1명당 아이의 비율이 1.25명꼴이어서 25개 구 중에서 가장 젊다. 양천·송파·강남 등의 부유한 구가 뒤를 잇는다.
 부산은 더 심각하다. 신도시가 들어선 강서구·기장군을 외 14개 구에서 노인 추월 현상이 나타난다. 6년 전에는 6개 구만 그랬는데, 6년 새 금정·부산진구 등 8곳이 늘었다. 해운대구도 노인 1명당 아이가 0.95명에 불과하다.
 대도시 노인 추월 현상의 원인은 최근 수년 간 서울의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아이 수)이 1명에 미달하는데다 교육 여건이 나은 곳이나 집값이 싼 데로 젊은 층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서울 중구의 경우 핵심가임여성(20~39세)은 2010년 이후 6년 새 6% 줄었고 노인은 24% 늘었다. 지난 2000년 이후 9년 간 출산율이 1명을 밑돌았다. 8살짜리 딸을 둔 중구 주민 서모(35)씨는 "주변에 학교가 하나밖에 없는데다 학원이 별로 없다. 애가 중고생이 되면 막연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의 노인 추월과 관련, 초의수 신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신발·합판 등의 소비재 대체산업이 쇠락하면서 그 때 팽창했던 인구가 노인이 되고 있다"며 "경남 등은 중화학공업으로 변모했으나 부산은 산업 재구조화에 실패해 인구 유입이 안 된다"고 말했다.

15세 미만 유소년이 점점 줄면서 노인이 더 많은 대도시가 크게 늘었다.노인의 상당수는 독거노인이어서 빈곤으로 이어진다.[중앙포토]

15세 미만 유소년이 점점 줄면서 노인이 더 많은 대도시가 크게 늘었다.노인의 상당수는 독거노인이어서 빈곤으로 이어진다.[중앙포토]

 전국 229개 시·군·구 중에는 경북 군위군이 가장 낮다. 15세 미만 1304명인 반면 노인은 8055명이나 된다. 노인 10명 당 유소년이 1.6명에 불과하다. 6년 새 유소년은 212명이 준 반면 노인은 250명 늘었다. 경북 의성군, 전남 고흥군, 경북 청도군, 경남 합천군 등 고령화 비율이 높은 군(郡) 지역들이 노인 추월 현상이 심하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직원들이 오후 명촌정문을 통해 퇴근하는 모습. 현대자동차가 있는 울산 북구는 15세 미만 아이들이 노인보다 많은 가장 젊은 지역이다.[중앙포토]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직원들이 오후 명촌정문을 통해 퇴근하는 모습. 현대자동차가 있는 울산 북구는 15세 미만 아이들이 노인보다 많은 가장 젊은 지역이다.[중앙포토]

 반면 현대자동차 공장을 끼고 있는 울산 북구 같은 데는 유소년 비율이 가장 높았다. 유소년이 3만4598명으로 노인(1만2603명)의 2.75배에 달했다. 아이를 둔 젊은 근로자들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신도시가 들어선 경기도 화성·오산시, 대덕연구단지를 끼고 있고 세종시 배후도시 역할을 하는 대전 유성구, 금호타이어·삼성전자 공장이 있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등도 울산 북구처럼 비슷한 배경 덕분에 유소년 비율이 높았다. 하지만 이런 지역들도 6년 전에 비해 유소년 대비 노인의 비율이 떨어지는 추세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고령화 비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젊은층이 많이 빠져나가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출산율까지 줄면서 악순환이 생긴다"며 "도심 재개발이 아니라 재생을 서둘러야 하는데, 구청의 여력이 안 되니 광역자치단체나 중앙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초의수 교수는 "지방에 갑자기 산업을 육성하는 것도 쉽지 않다"며 "일본에서 지방 재생 대신 지방 창생 정책을 펴듯 한국도 젊은 여성이 출산·육아를 잘 할 수 있게 유연한 일자리 제공 등의 젊은 여성 친화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박정렬·백수진 기자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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