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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명품강의 연고전·고연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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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강은 인간의 영원한 젖줄이다. 젖줄에 대한 인간의 마음은 간사하다. 물이 넉넉할 땐 이웃사촌이 되지만 가뭄이 들면 원수가 되기도 한다. ‘경쟁자’ ‘맞수’ ‘적수’를 뜻하는 영어 단어 라이벌(rival)의 어원이 강(river)에서 유래한 연유다. 강은 라틴어로 리부스(rivus), 그 강을 같이 이용하는 이웃을 리발리스(rivalis)라고 했다. 그런 의미가 점차 경쟁자나 적수로 바뀐 것이다.

인간 세계에는 어느 분야든 라이벌이 존재한다. 맞수의 경쟁은 건강한 발전의 원동력이지만 좁쌀 같은 다툼만 일삼으면 양쪽 다 망한다. 학문 분야는 특히 더 그렇다. 경쟁은 하되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는 상생의 협력이 필요하다. 7일부터 그런 신선한 변화를 보게 된다. ‘영원한 맞수’ 고려대와 연세대가 공동 개설한 ‘명품 강의 연고전’이다. ‘진리·정의·자유를 향한 인문학적 성찰’이란 3학점짜리 강의인데 심리학·사학·철학 등 주제가 바뀐다. 연세대는 150명, 고려대는 350명이 수강한다. 최장집(고려대)·문정인(연세대) 명예교수 등 양교의 쟁쟁한 교수 28명이 목요일마다 캠퍼스를 오가며 열강한다.

기획자는 김용학 연세대 총장과 염재호 고려대 총장. 뼛속까지 독수리이고 호랑이라는 맞수는 뜻밖에도 38년 절친이다. 1979년 SK그룹의 해외 유학 장학생 프로그램에 각 대학 1등으로 뽑힌 게 우정의 싹이 됐다. 미국 유학 후 모교 교수가 된 둘은 네 번(염)과 두 번(김)의 도전 끝에 2015, 2016년에 총장이 됐다. 그리고 의기투합해 개교 이래 첫 학부 공동 강의라는 ‘자원 공유(resource pooling)’에 나선 것이다. 미 하버드대와 예일대, 스탠퍼드대와 UC버클리대,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옥스퍼드대 같은 원조 맞수들도 못한 일이다. 자존심이 세 선뜻 나서지 못해서다.

그런 점에서 ‘명품 강의 고연전’은 나름 의미가 있다. 벗 같은 두 총장의 ‘감성 쇼’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학생 절벽’에 직면한 대학가에 자극제가 될 수 있다. 관전의 묘미도 있다. 18승10무18패로 용호상박인 스포츠 정기전과는 차원이 다른 ‘최고 지성의 대전’이니 말이다. 학기 말에 종합 품평도 한다니 긴장도가 만만찮다. 라이벌 총장의 협학(協學) 실험이 전공 강의와 연구까지 계속 확대됐으면 좋겠다. 그게 진정한 우정의 라이벌 아닐까.

양영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