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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과 팀장님이 판소리 떼창을 하는 이유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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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7호 18면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회 창신제(2012)에서 크라운해태제과 윤영달 회장과 임직원 100명이 판소리 떼창 ‘사철가’를 부르고 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회 창신제(2012)에서 크라운해태제과 윤영달 회장과 임직원 100명이 판소리 떼창 ‘사철가’를 부르고 있다.

크라운해태제과가 지난달 12일 광화문광장에서 개최한 ‘한여름 밤의 눈조각전’에 참여한 임직원들이 300개의 눈조각을 만들고 있다.

크라운해태제과가 지난달 12일 광화문광장에서 개최한 ‘한여름 밤의 눈조각전’에 참여한 임직원들이 300개의 눈조각을 만들고 있다.

크라운해태제과에 입사하면 모두 시인·조각가·국악인이 된다. 싫어도 할 수 없다. 이 회사의 임직원은 모두 예술가가 되어야 하며, 회사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김상훈의 컬처와 비즈니스: 예술경영과 조직문화

2004년 말 해태제과를 인수하며 조직의 화합을 위해 도입한 크라운해태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은 문학·음악·미술의 세 분야로 이루어져 있다. 문학 프로그램은 정호승·도종환·신달자 등 유명 시인 초청 강연과 시낭송·창작시 발표로 구성된다. 2012년에는 『아침을 여는 사람들』이란 제목의 시집도 발간했다. 해태제과의 ‘신당동 장독대를 뛰쳐나온 떡볶이 총각의 맛있는 프로포즈’라는 창의적인 과자 이름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이 회사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백미는 ‘창신제’다. 2004년 국립국악원에서 제1회 공연을 한 이래 지금까지 매년 이어오고 있는 이 국악공연에는 임직원이 대거 참여한다. 2012년 제8회창신제 때는 윤영달 회장을 포함한 임원·부장·팀장 100인이 판소리 ‘사철가’ 떼창을 했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라는 도창은 윤 회장이 했다(참고로 윤 회장은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고산 윤선도의 후손이다). 이 공연이 학예회 수준일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명창 조상현 선생의 지도를 받아 7개월 동안 연습한 실력을 보여준, 제대로 된 공연이다.

크라운해태의 미술 프로그램 중 하나는 이른바 ‘눈떼조각’이라는 것인데, 임직원 천 명이 아트밸리 입주작가들의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후에 직접 만든 눈조각을 눈꽃 축제에 발표했다. 지난달 12일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한여름 밤의 눈조각전’을 개최했다. 이 과자회사는 도대체 왜 업무와 아무 상관없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에 이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사내 예술교육 통해 창의력 높아지고 만족도 상승  

이른바 ‘예술기반 교육훈련(Art-Based Training)’의 역사는 짧지 않다. ‘토이 스토리’부터 ‘도리를 찾아서’에 이르기까지 컴퓨터 애니메이션 무비의 명가가 된 픽사 스튜디오는 1996년 픽사 대학(Pixar University)을 만들었다. 에드 캣멀 사장이 데생 클래스를 만들면서 시작한 이 ‘대학’은 회화·조각·연기·발레 등 100여 개의 교육과정이 있다. 교육 참여는 업무의 연장이며 전 직원이 매주 최소 4시간 이상 이수해야 한다. 영화 제작에 참여하지 않는 행정·재무부서 직원·소프트웨어 엔지니어뿐 아니라 사내 식당 요리사도 예외없다. 자체 조사결과 직원의 창의력 증대와 조직 내 장벽 제거 효과가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사내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이 노리는 첫 번째 효과는 직원의 창의성 증진이다. 크라운해태제과도 감자칩은 짭짤해야 한다는 발상을 깬 ‘허니버터칩’의 성공과 S라인으로 생동감을 살린 쿠크다스의 매출 신장을 직원들의 예술지능(AQ)이 높아진 자연스런 결과로 보고 있다.

폴라로이드(Polaroid)는 창의력 연구소를 설립해 직원들의 업무와 예술활동을 연계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고, 제약회사 바이엘(Bayer)은 ‘잠재 직원’의 창의성 제고를 위해 피츠버그 지역 과학분야 전공 대학생을 대상으로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미국 보험회사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의 사장인 피터 루이스가 어느 날 회사에 걸어 놓은 그림 한 점이 사내 토론문화를 촉발시킨 후 획기적인 신상품 개발이 이루어져 2004년 비즈니스위크 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랭킹 1위에 등극했다는 믿기 어려운 신화도 있다.

또 다른 효과는 직원 즉 ‘내부고객’ 만족도의 상승이다. 명품 브랜드 기업 몽블랑은 직원들에게 문화예술카드를 지급하는데, 직원들은 1년에 10유로만 내고 오페라·콘서트·전시회 관람료의 80%를 회사로부터 지원받는다. 몽블랑은 창의적 인재양성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런 혜택은 직원들의 애사심과 자긍심, 그리고 충성심을 높일 수밖에 없다.

국내 중소기업 중에서 문화경영의 모범사례로 잘 알려진 성도GL의 경우도 파주 헤이리에 ‘공간퍼플’이라는 미술관을 만들고 오케스트라를 창단, 운영하는 것에서 나아가 문화회식, 문화접대를 제도화한 결과 임직원의 만족도가 상승하고 이직률이 대폭 하락했다.

창조적 행위에 다함께 몰입해야 효과

직원의 창의성 증대와 만족도 상승도 솔깃한 기대효과임에 틀림없지만, 조직 구성원의 ‘화합’이야 말로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살짝 가려진, 그러나 가장 강력한 효과라고 할 수 있다. 크라운해태의 예술경영도 ‘동문수학’을 통한 직원들의 화합을 의도한 것이었고, 픽사 대학도 조직 내 장벽 제거가 중요한 목적 중 하나였다. 유니레버(Unilever)라는 회사는 두 계열사의 합병에 따른 조직의 이질감을 해소하기 위해 ‘카탈리스트’라는 예술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연극배우·극작가·화가·시인 등을 영입해 촉매(catalyst) 역할을 하도록 함으로써 활력 넘치는 조직문화를 만들었다.

펜윅앤웨스트(Fenwick & West)라는 로펌은 소속 변호사 300명의 의사소통 개선을 위해 뜬금없는 사내 리듬밴드 경연대회를 개최했는데, 두 달 뒤 조사결과 조직 내 소통과 서비스 역량이 놀랍게 향상되었다고 한다. 같은 이유로 ITV라는 영국의 민영 방송사는 연극 워크숍, BNP파리바 은행은 청동조형물 만들기, 인터컨티넨탈 호텔은 직원들이 영국 애비로드 스튜디오와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도움을 받아 브랜드 타이틀 송 작곡을 했다.

연극이나 합창대회에 참여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들도 필자를 포함해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습과 인내를 통해 창조적 행위에 다 함께 몰입하는 과정 자체가 조직문화의 갱생(renewal) 프로세스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크라운해태의 경우도 회사의 문화예술 프로그램 참여 연수가 오래될수록 만족도와 참여의지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내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성공을 위한 세 가지 키워드가 있다. 흥이 나야 하고, 뿌듯해야 하고, 친해져야 한다. 다시 말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흥미로운 커리큘럼이 마련되어야 하고,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예술이 본업이 아닌 회사가 음악, 회화, 조각, 문학, 연극 등의 예술 프로그램을 하는 목적이 ‘화합과 소통’에 있음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시간낭비, 예산낭비로 인식하는 마인드와 구내식당 뒷담화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효과에 대한 측정과 끊임없는 개선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4차 산업혁명과 소프트파워의 시대에,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전직원 총동원 등산대회’나 체육대회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 ●

김상훈 :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미술경영협동과정 겸무교수. 아트 마케팅, 엔터테인먼트 마케팅 등 문화산업 전반에 걸쳐 마케팅 트렌드와 기법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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