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41)씨는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전에 투명한 스티커를 자기 자동차 번호판 숫자 위에 붙인다. 스티커는 인터넷에서 샀다. 이 스티커를 붙이면 단속 카메라가 김씨 차를 찍어도 번호를 알아볼 수 없게 된다. 카메라 플래시에서 나온 빛을 스티커가 반사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통행료가 만만치 않은 먼 구간을 갈 때 스티커를 붙인다”고 말했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누구나 내야 하는 통행료를 안 낸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납 1429만건 사상 최다…348억원 떼먹어 #전년보다 315만 건, 86억원 껑충 #번호판에 반사스티커 붙여 카메라에 안 찍혀 #번호 안 보이게 꺽거나 아예 떼고 다니기도 #차주 따로, 사용자 따로인 '대포차'도 많아 #민자고속도로는 징수권 약해 속수무책 #도로공사가 차 압류해도 후순위로 밀려
김씨 같은 ‘고속도로 통행료 먹튀족’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고속도로 통행료를 미납한 차량이 1429만대. 2015년(1114만대)에 비해 315만대(28%)나 늘었다. 미납 액수로 보면 지난해 348억원으로 2015년의 262억원보다 86억원(33%) 증가했다. 하이패스 도입 이후 미납 건수와 금액에서 모두 사상 최대 규모다.
연간 20회 이상 통행료를 안 낸 차도 지난해 8만4696대이나 됐다. 2015년의 6만4612대에 비해 2만 여대(31%) 늘었다. 2012(3만9397만대)와 비교하면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들의 미납통행료는 지난해 74억원으로 2015년 48억원에 비해 54%나 급증했다.
이렇게 먹튀가 급증한 데는 고속도료 통행료 징수가 현금에서 하이패스로 넘어가는 측면이 크다. 2000년 도입된 이후 현재 고속도로를 다니는 자동차 중 하이패스를 이용하는 비율은 80%에 이른다. 2020년엔 모든 톨게이트가 무인징수 방식으로 바뀐다. 이 가운데 하이패스 차로를 통과하면서 통행료를 안 내는 차량이 늘고 수법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가장 흔한 수법은 김씨처럼 카메라에 찍혀도 자동차 번호를 식별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번호판에 특수 스프레이를 뿌리거나 반사 스티커를 붙이는 수법은 익히 알려져 있다. 검은색 천이 내려와 번호를 가리게 하거나, 번호판이 180도 뒤집어져 번호가 사라지거나, 번호판이 바람에 꺾이게 해 고속 주행 시 번호가 안 보이게 하는 수법도 등장했다.
자동차 소유주와 실제 사용자가 다른 이른바 '대포차'도 상습 먹튀 주범이다. 경찰청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대포차 거래 2만2849건이 적발해 2만3805명을 검거했다. 이들이 거래 또는 이용한 대포차는 총 2만4601대에 달했다. 2015년 같은 기간에 적발된 대포차 9870대에 비해 149%나 증가했다.
민자고속도로에선 먹튀가 더욱 심각하다. 한국도로공사가 운영하는 고속도로에 비교하면 먹튀를 해도 추후에 통행료를 받아낼 수 있는 권한이 약해서다. 도로공사가 관리하는 고속도로에선 미납한 통행료는 차량 압류 등을 통해 강제 징수할 수 있다. 하지만 민자고속도로의 민간사업자는 소송을 제외하고는 통행료를 징수할 방법이 없다. 최근에는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민자고속도로에서 통행료 먹튀족이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역시 미납 통행료를 못받는 경우가 전체 미납금액의 6% 가량된다. 상습 미납 차량은 이동 경로와 이용시간 패턴을 파악해 이들 차가 고속도를 빠져나가는 나들목에서 차량을 강제로 인수하기도 한다. 더러는 차적 주소지를 방문해 차량을 인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해당 차에 이미 압류가 걸려있는 경우가 많다. 도로공사가 돈을 받아낼 권리는 뒤로 밀리는 게 대부분이다.
한국도로공사 이덕성 영업처 차장은 “상습 체납을 줄이기 위해선 한국도로공사에 문제 차량의 고속도로 진입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렇게 되면 번호판 훼손 차량이나 상습 미납 차량 등을 톨게이트 진입 전에 걸러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함종선 기자 jsha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