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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대북제재 비웃듯 연이어 거래 금지 품목 과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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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가 이행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거래 금지 품목에 해당하는 장비들을 '과시'하는 듯한 선전전을 펼치고 있다. 북한은 30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전날 실시한 화성-12형 미사일 발사 소식을 전하면서 “새로 장비(갖춘, 개바한)한 중장거리전략탄도로케트”라는 표현을 세 차례나 사용했다.

대북 제재속 신형 미사일 개발 #실험용 챔버, 모터보트 엔진 등 거래 금지 품목 대놓고 노출 #"대북 제재 실효성 없다는 점 강조하려는 듯"

최근 신형 미사일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인데, 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최근 북한의 선전 행태를 보면 대북 제재 속에서도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는 일종의 ‘과시’가 아니냐는 분석이다. 정부 당국자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의 목적은 북한 지도부의 돈 줄을 죄고, 무기로 전용할 수 있는 물자들의 거래를 막아 북한의 군사적 증강을 막자는데 있다”며 “미사일 등 무기를 개발하려면 첨단 계측 장비와 소재가 필요한데 제재의 틈새가 있다는 점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북한은 지난 23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화학재료연구소를 시찰하는 장면의 사진에서 일본과 미국, 중국 등에서 실험용 기자재를 생산하는 타바이 에스펙(TABAI ESPEC) 사에서 제작한 것과 유사한 항온ㆍ항습 실험 기기(챔버ㆍELS-4CA 기종)를 보여줬다. 극도의 보안시설인 무기 개발 연구소인 화학재료연구소를 소개하며 “미사일을 개발하는 곳”이라고 공개한 데 이어 금수 품목에 해당하는 실험용 장비를 드러낸 것이다. 장영근 항국항공대(항공우주기계공학부) 교수는 “미사일을 개발하는 단계에서는 자연상태로 만들지 못하는 고온이나 저온 등 상공의 환경을 만들어 지상에서 실험이 필요하다”라며 “일반 연구소나 대학에서도 필요한 장비이긴 하지만 무기제조에 필수적인 장비”라고 말했다.

북한이 최근 국제사회의 대북 거래 금지 품목을 연이어 공개하면서 대북제재의 효용성이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지난 23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화학재료연구소를 방문해 실험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김정은 왼쪽 장비가 고온이나 저온의 환경을 만들어 장비의 내구성 등을 실험하는 항온항습 챔버로, 미국과 일본, 중국 등에서 생산하는 에스펙(espec) 사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북한이 최근 국제사회의 대북 거래 금지 품목을 연이어 공개하면서 대북제재의 효용성이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지난 23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화학재료연구소를 방문해 실험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김정은 왼쪽 장비가 고온이나 저온의 환경을 만들어 장비의 내구성 등을 실험하는 항온항습 챔버로, 미국과 일본, 중국 등에서 생산하는 에스펙(espec) 사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에스펙 사에서 제작한 항온항습 챔버. 북한이 보유한 기종은 ESL-4CA로 현재는 단종된 기종이다. [사진 에스팩 챔버 소개 사이트(http://www.zycon.com/literature/224515/62777/e_catalog_platinous.pdf)]

에스펙 사에서 제작한 항온항습 챔버. 북한이 보유한 기종은 ESL-4CA로 현재는 단종된 기종이다. [사진 에스팩 챔버 소개 사이트(http://www.zycon.com/literature/224515/62777/e_catalog_platinous.pdf)]

또 26일에는 북한군 특수부대들이 백령도와 대연평도 등 서북도서 지역을 점령하는 훈련인 ‘대상물 타격 경기 대회’를 보도하는 과정에선 특수부대가 사용한 고무보트 엔진을 클로즈업 한 사진을 내보냈다. 본지 취재결과 이 엔진은 미국의 머큐리사에서 제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50마력 짜리 엔진인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최근 북한군 특수부대가 백령도와 대연평도를 점령하는 훈련을 실시한 소식을 전하면서 이들이 이용한 고무보트 사진을 공개했다. 엔진 옆에 '강성'이라고 써 있지만 미국의 모터보트 엔진 전문 제조사인 머큐리사의 제품을 들여간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최근 북한군 특수부대가 백령도와 대연평도를 점령하는 훈련을 실시한 소식을 전하면서 이들이 이용한 고무보트 사진을 공개했다. 엔진 옆에 '강성'이라고 써 있지만 미국의 모터보트 엔진 전문 제조사인 머큐리사의 제품을 들여간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미국 머큐리사에서 제작한 모터보트 엔진.[사진 머큐리사 홈페이지]

미국 머큐리사에서 제작한 모터보트 엔진.[사진 머큐리사 홈페이지]

이인선 전략물자관리원 선임연구원은 “유엔안보리가 대북제재 물품에 실험용 챔버나 모터보트 엔진을 리스트에 넣지는 않았다”면서도 “특정 성능(영하 50~영상125도) 이상의 챔버는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의 금수물품에 해당되는 데다 지난해 3월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안보리 결의가 (북한의)군사작전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품목의 거래를 금지토록 하고 있어(2270호 8항) 금수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ELS-4CA 챔버는 현재는 단종된 제품으로, 영상 180도까지 온도를 높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북한이 오래전에 수입했거나 중고품(현재 1만 4500달러 선에서 거래중)을 구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무기개발에 필요한 장비 거래 금지를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 결의안 2270호 채택 이전에 들여 갔더라도 이들 제품들이 북한의 핵과 대량살상무기(WMD), 탄도미사일 개발을 금지토록 하는 대북제재 1718호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들 제품들을 북한이 모방해서 제작했을 수도 있지만 중국 등지에서 수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철회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전환을 요구하며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북한이 대북제재 속에서도 관련 장비들을 구해서 미사일 개발에 사용하고 있다며 제재의 효용성이 없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선전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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