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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희망’ 이산가족들, “죽기 전 생사 확인 만이라도…”

중앙일보

입력

30일 서울AW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7 이산가족 초청행사'에서 한 참석자가 머리를 감싸고 있다. [연합뉴스]

30일 서울AW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7 이산가족 초청행사'에서 한 참석자가 머리를 감싸고 있다. [연합뉴스]

# 평안남도 남포시 어호리에서 태어난 이명걸(86) 할아버지는 19세가 되던 1950년 어선을 타고 남으로 내려왔다. 맏아들이던 그는 인민군 징집을 피하기 위해 홀로 남한행 배에 올랐다. “떠날 때 부모님께 잠깐 다녀오겠다고 인사하고 왔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 그는 당시 몸이 아파 함께 오지 못한 남동생 이운걸(당시 15세)씨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이 할아버지는 “데리고 나올 형편이 안 돼서 떼어 놓고 온 게 지금껏 가장 후회된다. 죽기 전에 생사만이라도 알면 좋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통일부·대한적십자사, 이산가족 초청행사 열어 #가족·친척 찾아 탈북한 북한이탈주민들도 참석 #6만여 이산가족 중 62.4%가 80세 이상 고령 #“해결이 쉽지 않지만 포기 말고 교류협력해야”

# 지난해 8월 목선을 타고 서해 NLL을 넘은 북한이탈주민 최모(51)씨는 “나 대신 남한에 가서 할아버지·할머니 산소를 찾아 술을 부어달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따르기 위해 탈북했다. 전남 영암이 고향인 최씨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함평에 살다가 북한 의용군으로 끌려갔다. 이후 미군 포로가 된 뒤 미군방첩대(CIC)에 차출돼 북으로 파견됐다가 미군과 연락이 끊겨 북에 정착했다. 최씨는 “아버지의 유언 따라 조부모님 묘소 위치와 삼촌 최영식(당시 17세)씨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지만, 아직 소득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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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서울AW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7 이산가족 초청행사'에서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30일 서울AW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7 이산가족 초청행사'에서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한적)는 30일 오전 서울 부암동 AW컨벤션센터에서 이산가족 초청행사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서울 지역에 사는 이산가족 320여 명이 참석해 정부 당국자로부터 이산가족 관련 정책과 최근 남북관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지난달 기준 이산가족으로 등록돼있는 13만여 명 가운데 절반에 못 미치는 6만여 명만 생존해있다. 이들 중 62.4%는 80세 이상의 고령층이다. 이날 참석자들 대부분도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이었다. 북한이탈주민 10여 명도 자리를 함께 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다. 문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이산가족 문제와 같은 인도적 협력을 하루 빨리 재개해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과 고향 방문, 성묘에 대한 (북한의) 조속한 호응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앞서 한적은 지난달 17일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위한 적십자회담을 북측에 제의했다. 29일 발표한 내년도 정부 예산안 중 이산가족교류 지원액은 현행 61억원에서 120억원으로 증액돼있다. 이날 행사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이산가족 문제는 새 정부 대북정책의 최우선 과제다”고 설명했다.

30일 서울 AW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7 이산가족 초청행사'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30일 서울 AW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7 이산가족 초청행사'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북한은 우리 정부의 회담 제안에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지난 2015년 10월에 열린 제20차 행사가 마지막이다. 정권이 바뀌면 남북관계가 개선돼 상봉 행사도 재개될 것으로 기대했던 이산가족들은 하루하루를 ‘답답한 희망’ 속에 살고 있다. 실제 이날 일부 이산가족은 “정책이 너무 미비해보인다. 지금까지 어떤 노력을 해온 것이냐”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박경서 한적 회장은 “이산가족 문제는 인도적인 사안이지만 정치군사적인 문제와 연계돼 해결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교류와 협력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가 춤추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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