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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의보 가입 40만 명, 9년간 보험료 100억 더 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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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금융감독원의 감리 결과 실손의료보험 가입자 3300여만 명 가운데 약 40만 명이 9년 동안 100억원의 보험료를 부당하게 더 냈던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 24개 보험사 특별감리 #총 계약 중 1.2% 보험료 책정 불합리 #고령자 상품 요금, 보장률 비해 과다 #최종 결과 나오면 환급해 주기로

금융감독원은 2008년 5월 이후 실손보험 상품을 판매한 24개 보험사(4월 현재 실손보험을 판매 중인 곳)를 대상으로 특별 감리를 실시한 결과를 27일 발표했다.

실손보험은 3300만명 이상이 가입, ‘제2의 국민건강보험’이라고 불릴 정도로 국민 실생활에 파급력이 큰 보험이다. 그런데 최근 보험료가 2015년 3%, 2016년 18.4%에 이어, 올해는 12.4%나 올라 소비자 불만이 커졌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금감원은 이에 따라 지난 4월 실손보험 보험료에 대한 감리를 시작했다. 전반적으론 보험료가 적정하게 책정됐지만, 전체(3300만건) 계약 중 약 1.2%(40만 건)에서 보험료가 불합리하게 정해졌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먼저 생명보험사 9곳은 2008년 5월부터 2009년 9월 사이 실손보험 상품에 가입한 고연령층(60대 포함)에 대해 보장률에 비해 보험료를 과도하게 책정했다. 앞서 생보사는 실손보험의 자기부담률을 20%로 적용했지만, 2009년 10월 상품 표준화 작업이 이뤄지면서 자기부담률을 10%로 낮췄다. 곧, 보장률이 과거 80%에서 90%로 높아졌다는 의미다.

이후 매년 실손보험료를 갱신할 때 표준화 전 상품에 대해서는 통계량이 적다는 이유로 보험료를 조정하지 않고(낮추지 않고) 동결했다.

다음으로, 2014년 8월부터 노후실손보험을 판매한 보험사 10곳은 노후실손보험에서 손해가 나지 않는데도(손해율 100% 이하) 보험료를 계속해서 올렸다.

노후 실손보험의 자기부담률은 30%로, 일반 실손보험(10~20%)에 비해 훨씬 높다. 곧 보험사가 손해볼 확률이 훨씬 적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마땅한 통계치가 없다며 일반실손 통계에 연계해 보험료를 산출했다. 이로 인해 같은 보험사 안에서도 손해율이 낮은 노후실손 가입자와 손해율이 더 높은 일반실손 가입자에 대해 같은 보험료 인상률을 적용하는 일이 벌어졌다.

또 어떤 회사는 보험료 책정의 기준이 되는 위험률을 산출하는 과정에서 보험료 인상률이 높게 나오는 지수 모형을 선택해 보험료를 과도하게 올렸다. 또 다른 2개사는 총보험료의 40% 이상을 사업비 재원에 해당하는 부가보험료로 떼어 갔다. 평균은 총보험료의 30% 내외다.

권순찬 금감원 부원장보는 “보험료 산출 원칙을 준수하지 않은 보험사에 대해 원칙을 제대로 지키도록 권고, 내년 보험료 조정 때 반영될 수 있도록 지도하겠다”며 “주로 고령층을 중심으로 일부 가입자의 경우에는 최고 15%까지 보험료가 낮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그러나 어떤 회사의 어떤 상품에 가입한 사람의 보험료가 얼마나 과다 책정됐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아직까지 해당 회사 소명을 듣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최종 발표는 2~3주 뒤에 나온다. 금감원은 최종 결과가 나오면 문제가 있는 보험사가 더 걷은 보험료를 소비자들에게 돌려주도록 조치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부에서는 금융당국이 그간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된다는 논리로 보험료에 대한 통제를 완화해오다, 새 정부의 정책에 맞춰 보험료 인하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 아니냐고 풀이한다. 권 부원장보는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발표와는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보험업계에선 가장 대중적인 보험인 실손보험을 시작으로 정부가 보험료 인하 압박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을 하고 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실손보험이 최근 2년간 두 자릿수 인상되는데도 손 놓고 있다가 정부의 관심이 커지니까 ‘금감원은 뭐했나’는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이런 발표를 성급하게 내놓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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