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공포의 균형'…진보진영도 전술핵 재배치 필요성 제기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545호 04면

수면 위로 떠오른 전술핵 재배치 논란

북한 핵·미사일 위기가 고조되면서 국내 정치권에서도 자체 핵무장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핵 개발과 핵탄두 미사일 탑재에 성공한 나라가 핵과 미사일을 스스로 포기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북한의 핵 보유를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며, 이에 맞서 “핵에는 핵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게 핵무장 불가피론의 요체다. 더욱이 그동안엔 보수층을 중심으로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제기됐던 데 비해 최근 들어서는 진보진영 일각에서도 핵에 의한 ‘공포의 균형’ 외엔 뾰족한 대응책이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박선원 전 靑 비서관 재반입 주장에 #“북핵 억제효과” 학계도 갑론을박 #여권 “자기모순식 정치 공세” 일축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이 “핵 균형과 전천후 대북 억지력 유지를 위해 전술핵을 재반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게 대표적이다. 특히 박 전 비서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 비핵화 전략을 주도했고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도 외교안보 전략 마련에 깊이 관여했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은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청와대는 일단 “개인 의견”이라며 선을 그었다. 정부도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유지하는 게 공식 입장이라고 거듭 밝혔다. 하지만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에 대한 논의가 이미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장은 “전략 핵무기는 사용하는 쪽의 정치적 부담이 크고 핵보유국 간 전면적인 핵전쟁으로 확전될 가능성도 큰 반면 제한된 범위에 사용하는 전술핵은 북한이 핵을 쓰지 못하도록 막는 억제력이 크다는 점에서 유용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도 “미국과 (전술핵 재배치) 논의를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북한과 중국의 계산을 복잡하게 만드는 변수가 될 수 있다”며 “북한이 노리는 한·미 동맹 균열을 막을 수 있고 동아시아 유일의 핵보유국이라는 중국의 지위도 흔들리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을 향한 이중적 태도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춰 보수정당들도 일제히 자체 핵무장론을 꺼내들었다. 당장 자유한국당은 ‘전술핵 재배치’를, 바른정당은 ‘핵 공유’를 각각 전면에 내세웠다. 더욱이 이들 정당은 북핵 위기를 계기로 안보정국의 주도권을 거머쥐고, 이를 통해 그동안의 침체된 당 분위기에서도 탈피하겠다는 전략을 세워 둔 상태다. 그런 만큼 보수 지지층을 겨냥한 선명성 경쟁도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국당은 지난 16일 의원총회를 열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주한미군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를 당론으로 정식 의결했다. 91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 이후 주한미군 전술핵이 한반도에서 모두 철수한 지 26년 만에 한국당이 전술핵 재배치 논의에 다시 불을 지핀 셈이다.

이에 바른정당은 전술핵 대신 핵 공유를 내걸고 차별화를 시도하고 나섰다. 핵 공유란 전술핵과 같이 북한의 핵 위협에는 핵으로 대응하되 핵무기를 우리 영토 안에 들여와 주변국과 마찰을 빚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핵잠수함 등 미국 전략자산에 포함돼 있는 핵무기를 함께 관리·운용하자는 주장이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도 평소 이 같은 주장을 펴 왔다. 하태경 최고위원도 “자체 핵무장은 악수고, 전술핵 배치는 하수며, 핵 공유가 진짜 보수”라며 “굳이 국내에 핵을 배치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핵 방어 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자체 핵 보유 주장은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정치 공세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전술핵 재배치 주장은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자기모순에 빠지는 것”이라며 “야당이 단지 정부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제기한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상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정용환 기자 narrative@joongang.co.kr

관련기사
● 北 “美 군사 행동에 가담 않는 나라엔 핵무기 사용 안 해”

● 북, 미국의 ‘사실상 영해’ 태평양으로 미사일 쏠 가능성 낮아
● 김정은과의 ‘말싸움’선 일단 판정승…인종 갈등선 갈팡질팡, 비난 증폭
● “고강도 제재 받는 나라? 시장경제화 90년대 중국 수준”
북한, 한걸음 물러섰지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