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오래] 배인구의 이상가족(15) 야동에 빠진 전 남편이 아이를 만나려고 해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저는 이혼하고 4세 된 딸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 아빠는 번듯한 직장에 다녔고,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다정다감한 편이었고, 큰소리를 낸 적도 없습니다. 시부모님 두 분 모두 제게 살갑게 대해주셨죠. 저는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다가 직장을 그만두게 됐어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다시 일하려고 계획 중이었죠. 아이 키우는 데 전념하고 있던 제 결혼생활은 1년 전에 남편 컴퓨터를 보면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포르노 동영상 빠져 이혼한 남편 #시댁 핑계 대며 아이 만나려고 해 #친부에겐 면접교섭 인정이 원칙 #정신건강 이유라면 막을 수 있어

[중앙포토]

[중앙포토]

왜 갑자기 남편의 외장 하드를 보고 싶었는지 저도 모릅니다. 어쩌면 저는 남편이 조금 이상하다고 이미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뜻한 봄날 남편이 해외 출장을 간 후 대청소를 하다가 책상 서랍이 평소와 달리 잠겨있지 않아 열어보았습니다. 특별한 것이 없었어요. 그때 외장 하드가 눈에 들어왔고, 무심코 열었던 그것은 말 그대로 판도라의 상자였습니다.

포르노 동영상만 모여 있었어요. 제가 열어 본 것만 그랬던 것인지 모르지만 아주 수위가 높았고 구역질이 났습니다. 모르는 척해야 하나, 외장 하드를 갖고 있다가 보여주면서 이유와 경위를 물어야 하나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잔혹한 장면의 잔상이 남았는지 무서웠습니다. 출장을 다녀온 남편에게 인사를 하는데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남편은 이내 알아차렸습니다.

[사진제공=그린비]

[사진제공=그린비]

그리고 겨울에 우리는 협의이혼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와 남편 모두 외장 하드를 언급하지 않았어요. 부모님과 친지들에게는 성격 차이로 헤어지게 됐다고 했습니다. 이혼과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제가 키우겠다는 말에 남편은 동의했고, 저는 남편이 주겠다는 위자료나 재산분할에 토를 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남편이 시부모님 핑계를 대며 아이를 만나겠다는 겁니다. 이혼을 하면서 법원에서 부모교육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면접교섭을 잘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저도 아이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는 것에 반대하지 않아요. 그런데 아빠가 아이를 만난다는 것은 참을 수 없습니다. 별별 생각이 다 들고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아이 아빠가 아이를 만나지 못하게 할 수는 없을까요?

[제작 조민아]

[제작 조민아]

배인구 변호사가 답합니다

부부가 이혼을 해도 자녀에게는 여전히 부모입니다. 특히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아빠와 엄마는 이혼 과정에서 자녀가 상처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이혼 후에도 자녀가 버려졌다는 소외감을 갖거나 다시 버려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지 않도록 면밀히 보살펴야 해요.

그래서 비양육부모는 자녀에게 양육비를 지급하고 상황에 맞게 자녀와 면접교섭해야 한다고 배우셨을 겁니다. 양육부모 역시 자신의 감정을 자녀에게 투사하지 않고 비양육부모가 자녀와 원만하게 면접교섭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계실 거에요.

하지만 이것은 원칙입니다. 예외적으로 비양육부모가 자녀를 만나는 것이 오히려 자녀에게 해가 될 수 있다면 자녀의 이익을 위해 비양육부모가 면접교섭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겠죠.

[일러스트 김회룡]

[일러스트 김회룡]

다만 사례자가 말씀하시는 정황만으로 면접교섭을 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지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아빠의 정신건강은 아이의 이익을 살피는 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긴 합니다. 아이 아빠도 사례자가 불안해하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불안감이 막연한 것인지 아니면 아이에게 실제로 위험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아빠가 병원에서 심리검사를 받아보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합니다. 아이를 걱정하면서 불안해 하지만 마시고 아이를 보고 싶다면 병원에 다녀오라고 용기를 내어 말씀을 해보세요.

두 분이 협의이혼을 할 때 아빠와 자녀가 어떤 방식으로 만나기로 했는지도 중요합니다. 단순히 엄마와 아빠의 협의로 정하기로 했다면, 협의를 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니 아이 아빠가 가정법원에 면접교섭을 하게 해달라는 신청을 할 수 있어요. 만약 그렇다면 사례자는 법원에서 왜 아빠가 아이를 만나는 것이 불안한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셔야 합니다. 과연 아이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해답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