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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이 받을 충격 생각했지만···, '브이아이피' 이종석

중앙일보

입력

[매거진M] 최후의 순간까지 처참하게 유린당하며 죽어간 여성들. 그 잔혹한 살인 사건 용의자로 한 청년이 지목된다. 그는 국정원과 CIA가 한국으로 빼돌린, 북한 고위 간부의 아들 김광일(이종석)이다. 이른바 국정원이 감시하는 V.I.P.다. 이 기획 귀순을 주도한 국정원 요원 박재혁(장동건)의 입장에선 절대 범인이 돼선 안 되는 자다. 반대편엔 광일을 잡아 ‘큰 건’을 올려야 하는 경찰 채이도(김명민)가 있다. 여기에, 집요하게 광일을 쫓는 북한 요원 리대범(박희순)이 가세한다.

국가 기관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 속에 어쩔 수 없이 휩쓸린 개인들의 피로. 박훈정 감독이 각본·연출한 범죄영화 ‘브이아이피(V.I.P.)’(8월 24일 개봉, 이하 ‘브이아이피’)는 바로 그런 직업적·도덕적 딜레마 사이에서 고뇌하는 남자들의 초췌한 얼굴에서 출발했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답게, 드라이하고 차가운 어른들의 영화”라는 게 박 감독의 말. ‘신세계’(2013)의 이정재와 황정민, ‘대호’(2015)의 최민식에 이어, ‘브이아이피’의 얼굴이 된 네 배우가 magazine M을 찾아왔다.

이종석 / 사진=전소윤(STUDIO 706)

이종석 / 사진=전소윤(STUDIO 706)

말간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서리자 금세 주변 공기가 달라진다. 이종석(28)이 완벽하게 완성한 괴물의 얼굴. ‘브이아이피’ 김광일에게서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이종석의 얼굴을 발견했다.

―3년 만에 하는 인터뷰라고. 
“드라마 ‘피노키오’(2014 ~2015, SBS) 이후에 인터뷰가 처음이다. 그동안 화보 촬영은 몇 번 했는데 작품으로 인터뷰하는 건 오랜만이라서 정말 긴장된다.”

―‘피끓는 청춘’(2014, 이연우 감독) 이후 3년 만에 영화 출연인데 기대가 되나, 긴장이 되나. 
“기대된다. 예전에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과 ‘관상’(2013, 한재림 감독)을 찍을 때 굉장히 주눅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선배님들이 정말 잘해주셨는데 기에 눌려서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쟁쟁한 선배님들과 함께했는데 그때보단 조금은 내 것을 해낸 듯한 기분이 든다.”

―그동안 드라마에선 주로 로맨스 장르를, 영화는 청춘물을 소화하지 않았나. 이번엔 극악무도한 악역을 맡았다. 
“아마 남자 배우라면 누구나 살인마 혹은 사이코패스 역할을 해보고 싶을 거다. 나도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광일 역할에 굉장히 욕심이 생겼다. 광일은 인상을 쓰고 힘을 주는 캐릭터가 아니라 귀하게 자라서 그 누구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무소불위한 존재다. 기존 악역과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내가 하겠다고 박훈정 감독님께 적극적으로 말씀드렸다.”

'브이아이피' 스틸컷

'브이아이피' 스틸컷

―광일은 그 어떠한 동기도 없이 재미로 살인을 저지르는 인물이다. 광일이 되기 위해선 그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솔직히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라 감독님께 여쭤봤다. 그랬더니 감독님께서 광일을 사이코패스가 아닌 귀족이라고 생각하라더라. 모든 사람을 자기 아래에 놓고, 하인 부리듯 하는 인물이라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니 광일이 자신의 패거리뿐만 아니라 경찰 채이도와 국정원 요원 박재혁까지 아랫사람으로 대하는 태도가 이해됐다.”

―광일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파악한 후엔 연기하기가 수월했나. 
“계속 어려웠다. 감정선 자체가 없고, 왜 이 인물이 이렇게까지 됐는지를 상황들로 미루어 짐작을 해야 했으니까. 다만 광일을 연기하면서 내가 느낀 건 정말 머리가 좋은 아이라는 거다. 사람을 죽이면서 재미와 희열을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이 모든 게 발각돼도 자신은 쏙 빠져나갈 수 있게 미리 시나리오를 다 짜놓은 인물인 거지. 그렇게 한 장면씩 촬영하면서 광일에 대해 유추해 나간 것 같다.”

―대부분 대사보다 표정으로 감정을 드러내더라. 시나리오를 보니 ‘가볍게 웃는다’‘비죽 웃는다’‘무심한 시선’ 식의 지문이 정말 많던데. 
“나는 미소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 감독님이 광일에 대해서 원하는 게 워낙 뚜렷해서 웃음의 정도와 입꼬리를 얼마나 올려야 하는지 세세하게 디렉션을 해주셨다. 감독님이 가장 하지 말라고 한 게 치아 보이면서 웃는 거였다. 그래서 한 장면만 세 살짜리 아이처럼 활짝 웃고, 나머지는 거의 나른하고 무기력한 표정이거나 비웃는 모습이다.”

이종석 / 사진=전소윤(STUDIO 706)

이종석 / 사진=전소윤(STUDIO 706)

―현장에서 선배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정말 잘 챙겨주셨다. 김명민 선배님 같은 경우는 연기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 장면의 지문이 잘 이해되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자주 물었거든. 그럴 때마다 선배님은 감정의 폭을 크게 키워줄 수 있는 표정이나 눈썹을 사용하는 방법처럼 구체적으로 족집게 과외를 해 주셨다. 박희순 선배님은 동네 주민이다. 함께 촬영하는 장면이 별로 없어서 만날 때마다 셀카를 많이 찍었던 기억이 난다. 장동건 선배님은 정말 멋지더라. 그리고 우리 엄마가 장동건 선배님의 팬인 줄 정말 몰랐다(웃음). 촬영이 끝나고 쑥스럽지만 장동건 선배님께 ‘존경하고 감사했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랬더니 ‘앞으로 형이라 불러. 실망시키지 않는 선배가 될게. 고생했어’라고 문자를 보내주셨다. 그게 그렇게 멋있더라.”

―이종석에게 촬영 현장은 어떤 공간인가. 
“긴장되는 무대다. 촬영이 끝난 촬영장은 참 재미있는 곳인데, 촬영 전엔 왜 이렇게 긴장을 하는지 모르겠다.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더 긴장이 된다. ‘여기서 이런 표정을 지어야 하나, 이 근육을 쓸까’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욕심이 많기도 하고, 점점 칭찬해주는 분들이 늘어나다 보니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많이 느끼는 거 같다.”

'브이아이피' 스틸컷

'브이아이피' 스틸컷

―(세는 나이로) 29살이다. 20대를 되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이상하게 29살이 되니까 김광석 ‘서른즈음에’를 자주 듣게 되더라(웃음). 예전엔 정말 공감하지 못했거든. 얼마 전에 이 노래를 들으면서 생각을 해봤는데 이거 하나는 정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20대를 재미있게 살지는 못했어도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래서 지난 온 시간에 대해선 후회도 미련도 별로 없다. 지금은 앞으로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지 고민 중이다.”

―‘브이아이피’가 터닝포인트가 될 거 같다. 
“광일이 되기로 결심했을 때 팬들이 받을 충격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영화 출연이고, 나에게 중요한 시기라서 기존에 해왔던 캐릭터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시고 ‘이종석에게 이런 모습이 있구나. 연기 욕심이 있는 아이구나’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왼쪽부터)장동건, 이종석, 김명민, 박희순 / 사진=전소윤(STUDIO 706)

(왼쪽부터)장동건, 이종석, 김명민, 박희순 / 사진=전소윤(STUDIO 706)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사진=전소윤(STUDIO 706) 장소 협찬=콴시(KUAN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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