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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뱅의 성공 비결? ‘어떻게‘ 아니라 ‘왜’부터 물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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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출범이 코앞인데도 ‘우리는 왜 인터넷은행을 하려고 하는 건가요?’ 라고 묻는 겁니다. 다른 안건 다 제치고 2시간여를 토론했습니다.”

카뱅 컨설팅한 김영석 EY 파트너 인터뷰 #“성공 비결은 가격파괴ㆍ편리함ㆍ조직문화” #“예대마진 장사는 사악한 것 아니야… #담보 잡아야만 대출해주는 행태가 나빠 #카뱅은 신용도에 맞는 적정 금리로 대출” # #“지점 없는 카뱅과 가격 경쟁 어려워 #3~5년 내 바뀌지 않으면 생존 힘들어 #지점 활용한 고유 서비스 제공해야”

출범 2주 만에 200만 가입자를 돌파한 카카오뱅크(이하 카뱅) 설립 준비 과정에서 컨설턴트로 참여한 김영석(45·사진) 언스트앤영 파트너가 꼽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다. 카뱅 경영진은 어떻게 돈을 벌 지보다는 업의 본질을 물었단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under-served) 고객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지금까지 은행이 해왔던 ‘관행’이라는 이름의 불편, 혹은 불합리가 눈에 들어왔단다. 예를 들어, 비대면 실명인증의 방법이 그렇다. 인터넷으로 계좌를 만들려고 하면 은행들은 지금껏 다른 기존의 실명 인증 계좌에서 지금 만들려고 하는 계좌로 1원을 송금하는 방식을 썼다. 고객들은 익숙치 않은 계좌번호와 보안카드 번호 및 공인인증서 암호까지 입력해 1원을 이체해야 실명인증을 받을 수 있었다.

카뱅은 고객의 실명인증 계좌에 1원을 쏘면서 송금자 란에 문자 암호를 보낸다. 하얀오후·노란은행 등의 단어다. 주거래 은행 계좌 번호 하나쯤은 외우는 금융 습관을 감안하면 고객은 귀찮게 보안카드를 꺼낼 필요 암호 문자만 입력하면 실명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은행권만 빼고 카카오페이 같은 곳에서 다 하고 있는 실명인증 방식입니다. 금융위원회에 이렇게 해도 되는지를 물었습니다. 된다는 답변이 왔죠. 그런데 은행은 안 했던 거죠. 지금까지 안 했으니까.”

지점이 없기 때문에 인건비·임대료 등도 적게 든다. 카뱅이 시중은행보다 금리는 높은 예금을, 이자는 싼 대출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 비결이다.

기존 은행엔 이런 인터넷은행이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김 파트너는 “기존 은행이 지금처럼 금융상품만 팔고 보는 행태를 지속하다가는 분기에 1조원을 벌어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아직 변화를 위한 3~5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며 “기존 은행이 살 길은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고유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뱅크 체크카드. [사진 카카오뱅크]

카카오뱅크 체크카드. [사진 카카오뱅크]

인터뷰 전문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바로 묻겠다. 카뱅의 성공 비결이 뭐냐.

“세 가지다. 그 중 결정적인 성공 비결은 가격 파괴다. 시중은행의 영업이익경비율(CIRㆍcost income ratio, 금융회사가 영업이익 대비 어느 정도를 인건비ㆍ전산비 등의 판매관리비로 지출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은 60%에 육박한다. 이 60% 중 60% 이상을 지점 유지에 들어간다. 곧, 전체 비용의 36% 이상을 지점 때문에 쓴다는 거다. 인터넷은행은 (지점을 유지하지 않고) 이렇게 아낀 비용을 고객과 나누겠다는 것이니 파격적인 금리의 상품을 내놓을 수 있다. (고금리 예금과 저금리 대출 상품을) 일시적인 홍보용 상품이라고 보는 것은 인터넷은행의 비즈니스 모델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실제 미국ㆍ유럽 등의 인터넷은행 CIR은 40% 이하다.”

0.1%포인트 금리 때문에 사람들이 움직였다고? 카뱅 이용자의 대부분은 소액 고객이다. 평잔(평균 잔액) 500만원이라고 쳐도 1년이면 5000원 차이다. 커피 한 잔 값에 사람들이 움직였겠나.

“2011년 KDB다이렉트 예금을 보자. 다른 은행 예금보다 약 0.5%포인트 더 줬다. 금방 11조원 가까이 모았다. 생각보다 고객들이 금리에 대한 민감도가 높다. 특히 카뱅이 타겟 고객으로 삼은 30~50대 ‘어반 임플로이어(도시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특히 그렇다. 다른 은행과 가격차를 벌리는 데 이걸 컨시스턴트하게(지속적으로) 유지하는게 중요하다.”

금리 더 주는 거야 저축은행도 마찬가지 아니냐. 1인당 5000만원까지 예금자 보호도 되고.

“저축은행 사태 겪어보지 않았나. 돈이 보호되는 것하고 일이 해결될 때까지 오랫동안 묶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카뱅은 1금융권이다. 시중은행과 똑같은 라이센스를 받았다. 규제도 은행 수준이다. 소비자의 신뢰 수준을 저축은행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나.”

결국 카뱅도 예금 많이 받고 대출 많이 해주는 예대마진 장사 하겠다는 거 아닌가. 국내 은행이 이자부문 수익에 치중하면서 ‘날로 먹는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카뱅은 그런 영업 행태를 모바일로 옮긴 것밖에 안 되는 거 아닌가.

“최근 5년간 은행 수익에 절대적으로 기여한 게 예대마진이다. 그런데 예대마진으로 돈 버는 게 그렇게 ‘사악’한 건가. 물론, 담보 중심의 대출 운영을 하면 그건 사악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카뱅은 냉정한 신용평가와 빅데이터 기반의 분석을 통해 고객의 리스크에 맞는 금리로 대출을 해 주겠다는 거다. 예를 들어 보험설계사, 택배기사 등은 꾸준한 수익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신용등급이 낮다. 그래서 다른 직장인들보다 더 비싸게 돈을 빌린다. 그렇다면 이들이 불성실하냐. 아니다. 성실함을 증명할 수 있는 다른 사회기반 체계가 있다면 그걸 기준으로 평가해 그 사람의 신용도에 맞는 금리의 대출을 해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카뱅은 현재 카카오택시 데이터를 이용해 택시기사 개별의 성실도를 증명, 그에 맞는 금리의 대출을 해 줄 계획이다. 그렇게 대출해 주고 돈 버는 게 나쁜 건가.”

두 번째 성공 요인은?

“극강의 편리함이다. 앱을 써 본 사람은 알 거다. 은행 앱이 이렇게 편할 수 있구나, 하고. 극강의 편리함을 위해 유관 기관을 설득해 가이드라인을 바꾸기까지 한 사람들이 카뱅 사람들이다.”

가이드라인을 바꿨다?

“예를 들면, 비대면 실명인증 방식이다. 카뱅은 공인인증서를 안 쓴다. 그러면 실명인증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이체방식이다. 기존의 다른 은행은 가상 계좌번호로 1원을 보내라고 한다. 그럼 가상 계좌번호를 일단 메모한 후, 자신의 주거래 실명인증 계좌에 들어가 메모한 번호를 송금 계좌번호란에 입력하고, 보안카드 번호 및 공인인증서 암호까지 입력해야 실명인증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카카오페이 같은 다른 페이에서는 계좌로 1원을 쏘면서 암호 문자를 보낸다. 하얀오후ㆍ노란은행 등과 같은. 보통 사람들이 주거래 은행 계좌번호 한 개쯤은 외우고 있지 않나. 그럼 메모를 보고 뭘 찾아보고 할 필요 없이 주거래 은행 계좌에 찍힌 암호 구호만 알면 된다. 이게 기존 은행권 실명인증 방식에는 없던 거다. 훨씬 편리한데도. 금융위원회ㆍ금융감독원 등에 이렇게 해도 되는지를 물었다. 안 될 게 없었다. 그런데도 은행은 안 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안 해 왔기 때문이다.”

세 번째 성공 비결은?

“위의 답과 연결된다. 바꿀 수 있는데 기존 은행은 왜 안 하고 카뱅은 했을까. 그게 카뱅의 조직 문화의 힘이다. 만약 시중은행이 연봉을 두 배로 주고 카뱅 사람 100명을 뽑아 인터넷은행을 만들면 카뱅에 위협이 될까. 전혀 아니다. 카뱅은 카카오라는 플랫폼이 있고, 카뱅만의 수평적인 조직 문화가 있다. 은행 서비스와 상품의 불편함을 소비자 입장에서 구성원 누구나가 얘기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하며, 최종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지기까지 치열한 토론과 해법을 찾는다.”

결국 카카오라는 플랫폼 위에 얹혀졌기 때문에 카뱅이 성공한 거 아닌가. 다른 인터넷은행이 생겨도 카뱅을 넘어설 수 없을 것 아니냐.

“(가입자가 4200만명에 이르는) 카카오톡이라는 플랫폼 기반이기 때문에 카뱅이 절대적인 경쟁 우위에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일부 얼리 어답터만의 선택으로 여겨질 수 있는 인터넷은행이 시장이 확대되면 일반 소비자가 여러 은행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될 수 있다. 제3, 제4의 인터넷은행이 나오고 이들이 금리 경쟁을 하면, 포털에서 금리를 검색해 보고 예금이 가입하는 식의 소비 행태로 바뀔 수 있다. 인터넷은행에는 여전히 기회가 열려 있다.”

모바일 기반이다. 처음부터 의도한 거냐?

“몇 주에 걸쳐 인터넷뱅킹(PC 기반) 없는 은행을 반대했다. 금융 컨설턴트로서 아직 한국 금융 소비자 특성상 인터넷뱅킹 없이 모바일로만 금융 서비스를 만족스럽게 제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1호 인터넷은행인 K뱅크는 인터넷뱅킹이 있다). 이를 증명하는 설문조사, 고객 인터뷰 내용 등 근거를 냈다. 그렇지만 카뱅 경영진의 답은 달랐다. ‘포털사이트 접속자 비율만 봐도 모바일이 압도적이다. PC 기반이던 포털 서비스가 모바일로 이동, 불편함 없이 쓰는데 왜 금융 서비스는 안 된다고만 생각하냐’고 나를 설득했다. 모바일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변하는 상황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내가 한 수 배웠다.”

컨설팅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냐.  

“출범을 앞두고 비즈니스 모델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시장 환경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임원 중 한 분이 ‘그런데 우리가 인터넷은행을 왜 하려는 거죠?’라고 물었다. 진지하게. 당황스러웠다. (인터넷은행 인가까지 받은 마당에) ‘왜 하느냐’고 업의 본질을 묻는 거다. 당장 회의를 중단하고 그 문제에 대해 토론했다. 토론의 결과는 언더서브된(under-served,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고객들에게 제대로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이 되자는 거였다. 앞서 말한 비대면 실명인증도 그렇고. 또 예를 들어, 한 은행에 계좌가 두 개 있는 경우 A계좌에서 B계좌로 이체하는데 왜 보안카드 번호와 공인인증서 암호까지 입력해야 하나. 어차피 내 계좌인데. 이런 게 다 불편, 혹은 불합리를 포장하는 ‘관행’ 탓이다.”

카뱅은 했는데 인프라가 더 좋은 은행들은 왜 모바일 뱅킹 구현을 잘 못했나.

“시중은행이 모바일 뱅킹 구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건 그럴 필요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고객을 응대하는 업무 대부분을 지점에서 해결할 수 있었던 시중은행에 가장 중요한 투자는 고객이 찾기 좋은 위치에 지점을 내는 것이었다. 반면 지점이 없는 카뱅은 지점이 갖고 있는 편리함을 스마트폰에 다 구현해야 했다. 그만큼 절박함이 컸을 것이다. 반면 앞서 말했든 비용이 많이 드는 지점이 없으니 가격 파괴를 할 수 있는 강점도 컸다.”

제공: 언스트앤영

제공: 언스트앤영

카뱅의 시대, 시중은행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희소식이라면 아직까지 3~5년 정도의 변화를 위한 시간은 남았다는 점이다. 그 안에 체질을 바꿔야 한다. 같은 서비스라면 같은 가격이어야 하고, 가격이 비쌀 거면 더 가치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시중은행은 지점이 없는 카뱅과 같은 가격 경쟁력을 갖기엔 무리다. 대신 지점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서비스를 내놔야 한다. 이를 테면 자산관리 같은. 그런데 지금 은행의 자산관리 서비스라는 게 고객의 만족을 줄 수 있나. 아니다. 최근 은행 소비자 대상 조사를 봤더니 자산관리 자문을 누구에게 받고 싶느냐는 질문에 1위가 콜센터였다. 지점은 온라인에도 밀린 3위 채널이었다. 콜센터를 왜 편하게 여기느냐면 사람에게 바로 물을 수 있어서다. 그럼 지점은 왜 온라인에도 밀렸냐고. 지점에 가서 상담하면 자꾸 상품 가입하라고 해서다. 그런데 콜센터에 전화하면 여차하면 전화를 끊어버리면 되니 편하게 생각한다는 거다. 은행이 상품 팔고보는 식의 자산관리 영업 행태를 유지하다간 경쟁력이 없다. 인터넷은행에서 금리 싼 마이너스통장 만드시고 저희 은행에서는 비용은 좀 비싸지만 은퇴를 대비할 수 있는 자산관리 서비스를 받으세요, 라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바뀌지 않으면 분기 1조원을 벌어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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