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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인증 남양주 산란계 농가에서 무허가 진드기 구제약품 사용하다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 나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5일 오후 살충제 성분이 발견된 경기도 남양주의 '마리' 양계농가'창고에 출하가 보류된 계란들이 쌓여있다. 최승식 기자

15일 오후 살충제 성분이 발견된 경기도 남양주의 '마리' 양계농가'창고에 출하가 보류된 계란들이 쌓여있다. 최승식 기자

15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진관리 ‘마리’ 산란계(알 낳는 닭) 양계농가. ‘살충제 계란’이 발견된 곳이다. 이 농가에서 생산된 계란에서 피프로닐 성분이 검출됐다. 정문 옆 계란 보관창고에는 유통이 중단된 계란 수천개가 판에 담긴 채 쌓여 있다. 계란 창고 앞마당엔 AI(조류인플루엔자) 등 가축 전염병과 질병 예방을 위한 약품이 가득 든 플라스틱 박스 2개가 놓여 있다. 인접한 계사는 방역을 위해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된 상태다.

남양주시 닭 진드기 구제제 최근 지급했지만 해당 농가 어겨 #농장주, “약효 좋다” 무허가 약품 판매상 얘기 듣고 사용 #‘살충제 계란’ 경기 남양주 산란계 농가 주변 주민 충격 #살충제 계란 이미 다량 유통됐다는 소식에 불안감 고조 #살충제 성분 이전에도 사용된 것 아닌지 걱정 휩싸여 #경기 지역에만 3000마리 이상 산란계 농가 237곳 #산란계 농장주들, 사태 장기화와 소비자 불안 우려 #“사흘 이상 출하 못하면 보관 공간 없어 폐기 걱정” #

오후 3시쯤 계란을 사기 위해 농가로 들어선 60대 주부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싱싱한 계란을 사기 위해 5년 전부터 수시로 이 농가에 들러 계란 한판씩을 사 갔는데 당황스럽다”며 황급히 발걸음을 돌렸다.

15일 오후 살충제 성분이 발견된 경기도 남양주의 한 양계농가 창고에 출하가 보류된 계란들이 쌓여있다.최승식 기자

15일 오후 살충제 성분이 발견된 경기도 남양주의 한 양계농가 창고에 출하가 보류된 계란들이 쌓여있다.최승식 기자

50대 농장주는 이날 오전 자신의 농가에서 팔려나간 계란을 긴급 회수하기 위해 도매상격인 중간유통처 7곳을 찾아다니느라 농가를 비운 상태였다. 7만 마리의 닭을 키우는 이 농가에서는 하루 계란 생산량이 2만4000개 정도였고 2∼3일마다 계란을 출하했다.

이석우 남양주시장이 15일 오후 남양주시청에서 관내 한 산란계 농가에서 '살충제 계란'이 확인된 것과 관련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있다. [사진 남양주시]

이석우 남양주시장이 15일 오후 남양주시청에서 관내 한 산란계 농가에서 '살충제 계란'이 확인된 것과 관련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있다. [사진 남양주시]

현장 조사와 통제에 나선 남양주시 관계자는 “농장주는 ‘인근 농가에서 진드기 박멸에 효과가 좋다는 얘길 듣고 사용했다. 피프로닐인 줄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의 조사결과 농장주는 기존에 사용하는 진드기 구제 약품(동물용 의약외품)이효과가 좋지 않아, 가축약품회사에서 별도로 병충해 제제를 사 지난 6일 한 차례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구두로약품의 계란 잔류 가능성을 업체에 문의했으나 “문제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경기도·남양주시 등은 ‘살충제 계란’이 발견되면서 즉각 이 농가에서 출하한 계란의 유통경로 추적 및 회수 후 폐기 작업에 착수했다.

'살충제 계란'이 확인된 경기도 남양주시 '마리' 산란계 농가. 왼쪽은 계란 보관창고 오른쪽은 계사. 전익진 기자

'살충제 계란'이 확인된 경기도 남양주시 '마리' 산란계 농가. 왼쪽은 계란 보관창고 오른쪽은 계사. 전익진 기자

한편 남양주시 측은 “최근 유럽에서 피프로닐 성분이 든 ‘살충제 계란’이 문제화되자, 지난달 31일 해당 농가 등 3000마리 이상을 기르는 5개 산란계 농가에 처음으로 닭 진드기 전용 구제제를 지급했다”며 “그러나 해당 농가는 시에서 지급받은 42병의 전용 구제제를 사용하지 않고 포천의 한 동물약품업체에서 무허가 약품을 구입해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시의 조사 결과 농장주는 최근 농장을 방문한 동물약품업체 관계자로부터 “닭 진드기에 약효가 좋다”는 말을 듣고 상표와 약품명, 효과 등에 대한 아무런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무허가 약품을 사 사용했다. 시는 이에 따라 포천시에 해당 업체에 대한 행정처분을 의뢰했다.

남양주 시민 황모(59)씨는 “친환경 인증을 받은 산란계농가에서 살충제 계란이 확인된 것은 충격”이라며 “게다가 살충제에 성분이 든 많은 양의 계란이 유통됐다고 하니 불안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남양주 시민 이모(49)씨는 “만약 피프로닐 사용이 이번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농가에서 빈번하게 사용됐을 가능성도 있는 만큼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와 경기도·남양주시 등은 ‘살충제 계란’이 발견되면서 즉각 이 농가에서 출하한 계란의 유통경로 추적 및 회수 후 폐기 작업에 착수했다.

국내산 계란에서도 ‘피프로닐’이 검출되면서 ‘살충제 달걀’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15일 오후 서울 명륜동 CU성대점에서 직원들이 진열된 계란을 회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국내산 계란에서도 ‘피프로닐’이 검출되면서 ‘살충제 달걀’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15일 오후 서울 명륜동 CU성대점에서 직원들이 진열된 계란을 회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유럽에 이어 국산 일부 달걀에서도 살충제 성분인 피프로닐 등이 검출되면서 정부가 3000마리 이상 대규모 산란계 농장의 달걀 출하 중단 및 전수 검사에 들어가자 농가들은 긴장 속에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의 ‘마리’ 산란계 농가와 경기도 광주시의 ‘우리’ 산란계 농가에서 각각 피프로닐과 비펜트린이 나오자 주변 농가는 특히 긴장하고 있다. 경기 지역에는 3000마리 이상 산란계 농장이 모두 237곳이다.

포천시 신북면에서 닭 12만 마리를 키우는 산란계 농가 주인 하병훈(70)씨는 "출하 금지 조치로 당장 이날부터 생산되는 달걀을 모두 좁은 창고에 보관해야 하는 상황"이라며“검사 결과 이상이 없는 농가에 대해선 정부가 다시 출하를 허락할 것으로 보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하씨는 “이번에 검출된 피프로닐과 비펜트린 성분은 모두 닭에 기생하는 이나 진드기 등 해충을 없애기 위해 주로 축사 바깥에 뿌리는 살충제에 든 것”이라며 “해충을 잡지 않으면 닭이 죽는다. 정부가 살충제 사용만 억제할 것이 아니라 안전한 해충 퇴치 방법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남 지역 농가들도 검사 결과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경기 지역 농가들과 비교해 크게 우려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다만 소비 심리 위축을 걱정하고 있다. 전남 지역에는 3000마리 이상 산란계 농가가 89곳이 있다.

강진군 도암면에서 닭 9만여 마리를 키우며 하루 평균 3만여 개의 달걀을 출하하는 안영식(60)씨는 ”검사 결과 이상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돼도 소비자들이 한동안 달걀을 찾지 않을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했다. 안씨는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달걀은 저온창고에 보관하면 되니 당장의 피해는 없겠지만,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막연한 두려움이 생겨 정부의 출하 중단 조치가 해제되고 대형마트에서 판매를 재개하더라도 당분간 달걀 자체를 구매하지 않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대한양계협회 김재홍 경영정책국장은 “파리나 진드기 등을 박멸하는 과정에서 뿌린 살충제가 청소 단계에서 제대로 제거되지 않아서 검출된 것으로 추측된다”며 “정부의 전수 검사가 신속하게 진행돼 소비자들의 우려도 사라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남양주·무안·포천·춘천=전익진·김호·최모란·박진호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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