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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쾌재를 부르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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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

북한이 도발을 거듭할 때마다 국제사회의 이목은 중국에 쏠린다. 대북 압박 강도를 더 높이라고 중국을 몰아붙이는 트럼프 미 대통령은 물론이고 한반도 운전대를 잡겠다던 문재인 대통령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중국만 작심하고 나선다면 북핵 문제는 풀릴 것이란 믿음에서다.

여기엔 전제가 있다. “원유만 끊는다면 북한은 3개월을 못 버틸 것”이라거나 “중국이 국경을 봉쇄하면 북한은 결국 손들고 나오게 돼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전제에 동의할 수 없다는 중국 전문가들을 여럿 만나봤다. 그들은 “원유 끊는다고 북한이 손들고 나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처참한 지경의 경제난을 고난의 행군으로 버텨낸 북한의 내성이 바깥세계가 생각하는 만큼 그리 약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도 매에는 장사 없는 법, 끝장 제재를 3년간 계속하면 되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핵을 가진 북한이 이왕 죽을 바에야 다 같이 죽자며 자폭을 선택하면 한국은 어떻게 할 참이냐”는 반문이 돌아왔다. 중국은 오랫동안 북한과 부대껴온 나라라 누구보다도 북한을 잘 안다고 자부한다.

중국이 끝장 제재에 소극적인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전략적 이해관계에서 찾아야 한다. 중국의 대비책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이 초강력 제재로 갑작스레 붕괴하는 걸 중국은 원치 않는다. 한·미 동맹이 유지되는 가운데 한국 주도의 통일이 이뤄지는 상황을 중국은 결코 바라지 않는다. 그러니 중국으로선 골칫덩어리일망정 김정은 체제가 살아남아 완충지대 역할을 해 주는 게 낫다고 볼 수 있다.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며 북한의 숨통을 열어주는 건 결코 북한이 이뻐서도 아니요, 많은 사람이 오해하듯 혈맹관계를 청산하지 못해서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중국의 동참을 끌어낼 수 있을까. 아마도 한반도의 장래에 관한 시나리오를 놓고 미국과 합의를 거친 다음에야 가능할 것이다. 한반도 당사자의 선택에 의한 통일 정부가 출범한 뒤의 미군 주둔이나 군사적 완충지대 설치 문제, 북한 영토 내의 핵무기에 대한 통제 문제 등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그건 김정은과 핵 포기 협상을 벌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당장 그럴 시간이 없다면 미국이든 중국이든 어느 한쪽이 먼저 나서서라도 북한 핵 개발을 동결부터 시켜놓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게 급선무다.

상황이 이럴진대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불사하겠다며 균열상을 보이는 건 상책이 아니다. 이를 보며 쾌재를 부를 사람은 김정은이다. 미·중의 전략적 경쟁관계를 궤뚫어보며 핵·미사일 실험의 완급 조절에 이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도 북한의 핵·미사일에 장착된 시계가 째깍째깍 돌고 있다.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