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이 위안부·강제동원 증거 갖다주고 아베 정권을 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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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림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장이14일 부산 남구 관장실에서 일본 병사·서민전쟁자료관의 다케도미 지카이 부관장으로부터 기증받은 부산출신 위안부 김씨 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송봉근 기자

김우림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장이14일 부산 남구 관장실에서 일본 병사·서민전쟁자료관의 다케도미 지카이 부관장으로부터 기증받은 부산출신 위안부 김씨 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송봉근 기자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지난 8일 일본인으로부터 일본군 위안부 사진 1점과 당시 상황을 기록한 30여 페이지의 기록물 등 26점의 유물을 기증받았다. 기증자는 일본 후쿠오카 현에 위치한 ‘병사·서민 전쟁자료관’ 부관장을 맡은 다케도미 지카이(武富慈海·63) 씨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의 얼굴이 또렷이 찍힌 사진을 기증하며 “피해 여성을 찾아 정중하게 사죄드리고 싶다”고 했다. 또 “한국에 저지른 만행을 사죄하지 않는 일본 정부는 잘못됐다”고 아베 정권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김우림 일제강제동원역사관장, 위안부 존재 증명 26점 유물 기증받아 #피해 여성 찾아내고 기록물 진위 가려내 새로운 사실 알려나갈 것 #“강제동원 참상 많이 알려내야 아베 정권 사죄 이끌어 낼 수 있어”

부친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유물을 기증한 다케도미 씨는 “부친의 전우가 태평양전쟁 발발 무렵 버마(현 미얀마) 야전사령부로 끌려온 사진 속 여성에게 아주 모질게 대했다고 한다”며 “이 여성을 찾아 사죄하고 싶다는 전우의 유언을 부친이 유언으로 남겼고 그 뜻을 제가 대신 전한다”고 했다.

그의 부친은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할 무렵부터 12년 동안 일본 군인으로 근무하면서 겪은 전쟁의 참혹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1979년 ‘병사·서민 전쟁자료관’을 개관했다. 2002년 부친이 사망하자 모친이 관장을 맡고 다케도미 씨는 부관장을 맡고 있다.

일본 병사·서민전쟁자료관의 다케도미 지카이 부관장이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기증한 미얀마 야전위안소에 대해 적은 소책자 .송봉근 기자

일본 병사·서민전쟁자료관의 다케도미 지카이 부관장이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기증한 미얀마 야전위안소에 대해 적은 소책자 .송봉근 기자

일본군 위안부 존재를 증명해주는 유물 26점을 넘겨받은 김우림(56) 일제강제동원역사관장은 최근 더 바빠졌다. 기증 받은 유물은 일본군 위안부를 찍은 사진 1점과 일본군 훈련장면을 찍은 사진 19점, 조선인 초등학생들이 일본군에게 쓴 위문편지 3점, 미얀마로 간 12명의 위안부 이야기를 기록한 ‘야전 위안소 버마 종군 슬픈 이야기’ 1점과 ‘이입 반도 인조선인의 노무자 조사표’ 1점, ‘종군위안부관계철’ 1점 등이다.

김 관장은 사진 속 피해 여성을 찾아야 하고, 위안부 기록물과 사진의 진위를 가려내야 한다. 30여 페이지로 구성된 ‘야전 위안소 버마 종군 슬픈 이야기’에 적힌 기록물을 분석해 새로운 사실이 있다면 알려내는 일도 해야 한다. 그는 “기증한 유물 중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내용들이 다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기록물을 차근히 분석해가며 위안부 문제와 징용노동자의 실상을 세상에 알려나갈 것”이라고 했다.

일본 병사·서민전쟁자료관의 다케도미 지카이 부관장으로부터 기증받은 일제시대때 조선에 주둔한 일본인병사들 사진.송봉근 기자

일본 병사·서민전쟁자료관의 다케도미 지카이 부관장으로부터 기증받은 일제시대때 조선에 주둔한 일본인병사들 사진.송봉근 기자

김 관장은 2016년 6월 취임 이후 처음으로 일본인에게 유물을 기증받았다고 했다. 그는 “일본으로 강제동원된 노동자와 일본군 위안부의 참상을 알려내고자 연구하는 일본인들이 굉장히 많다”며 “이를 바탕으로 아베 정권의 사죄를 이끌어내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일본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한국인들이 일제강제동원과 위안부 문제의 참상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무겁고 어려운 주제여서 한국인들의 관심을 끌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최근 영화 ‘군함도’와 ‘택시운전사’ 가 잇따라 개봉하면서 역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김 관장은 “영화 군함도는 픽션이 너무 가미돼 진정성이 부족하지만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강제동원노동자의 참상을 알리는 데에 한 몫 했다”며 “군함도 사진전을 열고, 만화로 강제동원 이야기를 전달하고, 체험 프로그램을 늘리는 등 접근방식을 다양화해 아픈 역사를 알려나갈 것”이라고 했다.

일본 병사·서민전쟁자료관의 다케도미 지카이 부관장이 부산 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기증한 일제시대때 조선에 주둔한 일본인병사들 사진.송봉근 기자

일본 병사·서민전쟁자료관의 다케도미 지카이 부관장이 부산 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기증한 일제시대때 조선에 주둔한 일본인병사들 사진.송봉근 기자

일제강제동원역사관 6층 기획전시실는 지난 14일부터 오는 11월 30일까지 군함도 사진전을 개최한다. 역사적 아픔을 사진으로 기록해 온 이재갑 작가가 2008년 낚시꾼으로 위장해 배를 타고 군함도에 들어가 몰래 찍은 섬 안팎의 사진 40여점을 선보인다.
김 관장은 “당시 노동자들의 아픔과 작품의 무게감이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 피부로 전해질 것이라며 “진실을 담은 사진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힘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병사·서민전쟁자료관의 다케도미 지카이 부관장이 부산 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기증한 일제시대 한국 학생들이 일본병사들에게 쓴 위문편지들.송봉근 기자

일본 병사·서민전쟁자료관의 다케도미 지카이 부관장이 부산 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기증한 일제시대 한국 학생들이 일본병사들에게 쓴 위문편지들.송봉근 기자

국내 민간단체를 주축으로 일제강제동원된 이들을 기리는 노동자상이 세워지고 있다. 지난 12일 8·15 광복절을 앞두고 서울 용산역 광장과 인천 부평공원에 노동자상이 세워졌다. 부산에서도 일본총영사관 앞에 강제동원노동자상을 건립하는 방안이 추진 중이다.
김 관장은 “국민의 여망을 담아 민간에서 강제동원노동자를 기리는 일들이 진행되는 것을 환영한다”며 “민간단체와 별개로 역사관 차원에서 잊지 말아야 하는 역사를 알려내는 작업들을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관장은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같은 대학 박물관 학예사로 시작해 17년간 학예사로 경험을 쌓았다. 이어 서울역사박물관장 5년, 울산박물관장 5년간 역임한 뒤 지난해 6월 일제강제동원역사관장으로 취임했다.

14일 부산 남구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군함도-미쓰비시 군칸지마' 이재갑 초대전을 6층 기획전시실에서 개막했다.초청인사와 시민들이 이작가의 설명을 들으며 40점의 사진을 관람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14일 부산 남구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군함도-미쓰비시 군칸지마' 이재갑 초대전을 6층 기획전시실에서 개막했다.초청인사와 시민들이 이작가의 설명을 들으며 40점의 사진을 관람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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