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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명만 구사 1440도 회전 거뜬 평창 넘보는 ‘스웨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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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4호 25면

스노보드 빅 에어 국가대표 이민식

스노보드 국가대표 이민식은 ’평창에서 과감하게 금메달에 도전 하겠다“고 말했다. 작은 사진은 그의 경기 모습. 김경록 기자

스노보드 국가대표 이민식은 ’평창에서 과감하게 금메달에 도전 하겠다“고 말했다. 작은 사진은 그의 경기 모습. 김경록 기자

스웨그(swag).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 밤의 꿈’에 처음 등장한 단어다. 원래 ‘건들거리다’라는 뜻이었는데, 요즘엔 힙합(hip hop) 용어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넓게 쓰인다. ‘재능을 뽐내는 것’ 또는 ‘허세가 다소 섞인 자신감 또는 여유’를 일컫는다.

최고난도 4회전, 월드클래스 반열 #동영상 편집 기술도 전문가 수준 #훈련 동영상 올리며 팬들과 소통 #동생 이준식과 스노보드 신동 형제 #“최고수 맥모리스와 금메달 경쟁”

평창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첫 선을 보이는 ‘스노보드 빅 에어(big air)’의 국가대표 이민식(17·청명고)에게 스웨그는 ‘자존심’과 동의어다. 연습이건 실전이건 ‘그냥’이나 ‘대충’은 안 된다. 단 한 번을 뛰더라도 멋있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담아서 경기하려 애쓴다. 올해 17살인 고교 2학년생 이민식이 내년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내로라하는 스타들과 금메달을 다툴 정도로 급성장한 건 스노보드 팬들에게 ‘스웨그 넘치는’ 경기를 보여 주고 싶어 구슬땀을 흘린 결과물이다.

스노보드 빅에어 국가대표 이민식. 김경록 기자

스노보드 빅에어 국가대표 이민식. 김경록 기자

가장 어려운 ‘프런트사이드 더블콕’ 구사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버튼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만난 이민식은 다재다능한 청소년이었다. ‘스노보드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은 이민식을 드러내는 수식어 중 일부에 불과하다. 미술을 전공한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아 어려서부터 그림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다. 영어와 일본어에 두루 능통하고 학업 성적도 상위권이다. 국제대회에서 만난 외국 선수들에게서 조금씩 배운 동영상 편집 실력은 어느덧 전문가 수준이 됐다.

이민식은 “내 경기와 훈련 동영상을 편집해 블로그와 홈페이지에 올리는 게 유일한 취미다. 내가 정기적으로 올리는 영상을 통해 나와 소통하는 팬들이 꽤 된다”고 했다. 이어 “국내·외 영상을 검색하다 눈에 띄는 편집 기술을 발견하면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활용 방법을 찾아낸다”며 “평소 훈련할 때 내 기술을 어떻게 촬영하고 편집할지 머릿속으로 구상한다. 이 모든 과정이 즐겁다”고 했다. 몇 가지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이민식은 조만간 작곡 공부도 정식으로 시작할 생각이다. “내 경기 영상에 어울리는 음악을 직접 만들어 붙이면 근사할 것 같다”는 설명이 따라왔다.

스노보드 빅 에어 국가대표 이민식. 김경록 기자

스노보드 빅 에어 국가대표 이민식. 김경록 기자

자신감이 실력을 키우고, 실력이 다시 자신감을 끌어올리는 선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민식은 지난해 11월 평창 알펜시아에서 열린 빅에어 테스트 이벤트에 출전할 당시엔 공중에서 세 바퀴를 도는 ‘백사이드 더블콕 1080도’로 승부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최고난도 기술 ‘프런트사이드 더블콕 1440도’를 완성해 일약 월드클래스 반열에 올랐다. 왼발을 앞으로 해서 도약한 뒤 플립(공중제비) 한 바퀴, 옆으로 두 바퀴를 돌고 다시 플립 한 바퀴로 마무리하는 기술이다. 빅 에어에서 1440도(네 바퀴 회전) 계열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 선수는 전 세계적으로 스무 명이 넘는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프런트사이드 더블콕’을 제대로 구현하는 선수는 이민식을 포함해 세 명뿐이다. 그중 10대는 이민식이 유일하다. 그가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평창에서 과감하게 금메달에 도전하겠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이민식은 다음달 3일 뉴질랜드 카드로나에서 개막하는 국제스키연맹(FIS) 스노보드 월드컵에서 이 기술을 처음 선보일 예정이다. 이 대회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뒤 평창올림픽까지 차근차근 기술 완성도를 높이는 게 목표다.

11월 한강서 열리는 국제대회 참가키로

[스노보드 빅 에어] 평창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첫 선을 보이는 신규 종목. 스노보드를 타고 경사로를 내려와 도약대(키커·kicker)에서 점프한 뒤 체공 거리와 높이, 기술 난이도 및 완성도, 착지의 안정성, 동작의 다양성과 참신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선수 한 명당 6명의 심판이 각각 100점 만점으로 채점한 뒤 최고점과 최저점을 지운 나머지 4명의 평균 점수를 소수점 두 자리까지 구해 순위를 가린다.

[스노보드 빅 에어] 평창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첫 선을 보이는 신규 종목. 스노보드를 타고 경사로를 내려와 도약대(키커·kicker)에서 점프한 뒤 체공 거리와 높이, 기술 난이도 및 완성도, 착지의 안정성, 동작의 다양성과 참신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선수 한 명당 6명의 심판이 각각 100점 만점으로 채점한 뒤 최고점과 최저점을 지운 나머지 4명의 평균 점수를 소수점 두 자리까지 구해 순위를 가린다.

이민식은 2012년 스노보드 선수로 새출발한 직후 기계체조 훈련 방법을 차용해 체조선수 수준의 기술과 유연성을 갖췄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기계체조 동메달리스트 출신 유옥렬 코치에게서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공중 회전 방법을 배웠다. 기량을 인정받아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이후엔 이창호 대표팀 코치의 도움을 받아 다양한 고급 기술을 익히며 급격한 기량 성장을 이뤘다. 이민식은 “1080도 회전을 완성하기까지 2년의 시간이 필요했는데, 1440도는 최근 두 달 간 미국 오레건주(州) 마운틴후드로 건너가 집중 훈련을 실시하고 마스터했다. 자신감이 붙으니 난이도 높은 기술에 마음껏 도전해도 두렵지 않다”고 했다. 동생 이준식(15·단월중)과 함께 ‘스노보드 신동 형제’로 불리는 그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평창올림픽 장학생’으로 선정돼 훈련비도 지원 받고 있다.

스노보드 빅 에어 국가대표 이민식. 김경록 기자

스노보드 빅 에어 국가대표 이민식. 김경록 기자

이민식은 “겁이 많고 부끄럼을 타는 성격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응원을 받으면 나도 모르는 힘과 용기가 생긴다”며 “내 우상이자 빅 에어의 최고수 마크 맥모리스(24·캐나다)와 평창에서 신나게 경쟁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어 “오는 11월 서울 한강변에서 열리는 빅 에어 국제대회에 참가해 국내 팬들에게 인사를 드릴 예정”이라면서 “그때쯤이면 ‘이민식의 스웨그’를 제대로 보여 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스노보드 빅에어 국가대표 이민식. [사진 제공 이민식]

스노보드 빅에어 국가대표 이민식. [사진 제공 이민식]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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