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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달의 예술 - 건축

당신의 사무실은 어디입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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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조재원 건축가·공일스튜디오 대표

조재원 건축가·공일스튜디오 대표

일의 개념도, 일하는 풍경도 변화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공유오피스’가 크게 늘었다. 공유오피스는 개인 프리랜서나 소기업에 공통으로 필요한 회의실·사무기기 등을 제공하고 입주 구성원 안팎의 협업과 네트워킹을 지원하는 임대 업무공간이다.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형성되는 공동체와 그 문화를 동시에 의미한다.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

서울 성수동에 최근 완공된 헤이그라운드는 지하 1층, 지상 8층, 500명 수용 규모의 공유오피스다. 역시 성수동에 자리한 카우앤독과 더불어 공유오피스로 신축된 드문 사례다. 체인지메이커(사회적 기업가)를 육성·지원하는 비영리단체인 루트임팩트가 기획·운영하고 설계는 dmp가 맡았다.

지난달 이곳에서 체인지메이커 콘퍼런스가 열렸다. 필자는 ‘도시에서의 삶의 조건’을 주제로 한 패널 토론에 참여했다. 건물의 오프닝을 겸한 이날,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관심사가 비슷한 다양한 사람들이 새로운 장소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행사의 주무대가 된 지하층, 맥주와 음식을 파는 1층, 그리고 옥상정원이 있는 최상층은 이 건물이 이웃 지역, 나아가 더 넓은 도시의 네트워크와 연결되는 접점이 됐다.

지난달 중순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헤이그라운드 전경. 교육·예술 등 여러 분야의 사회적 기업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 루트임팩트]

지난달 중순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헤이그라운드 전경. 교육·예술 등 여러 분야의 사회적 기업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 루트임팩트]

2~7층은 입주사들의 업무 영역이다. 건물 동쪽이 재미있다. 각각 두 개 층씩 터서 만든 공유 라운지는 옛 마을의 정자나무 그늘 같다. 개별 사무실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사람들은 우연히, 자주 마주친다. 이런 마주침이 공동체 문화로 자라날 수 있도록 가구 하나도 세심하게 배치했다. 루트임팩트는 건축 과정에서 단계별로 예비 입주자 모임을 구성했다. 계획의 전 과정을 공유하고 그들의 의견을 설계에 반영했다. 성수동 일대는 서울에서도 비교적 낙후됐던 공장 지역. 헤이그라운드를 비롯한 일련의 공유 공간들이 새로 그리고 있는 도시 지형이 주목된다.

산업화 시대 사무실 공간은 회사 단위로, 일터와 분리된 주거공간은 가족 단위로 계획·공급됐다. 그게 당시 도시에서의 일과 삶이었다.

하지만 정보화시대 도시의 조건은 한층 복잡해졌다. 기존 공간에서 답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새로운 환경을 찾아 나서고 있다. ‘따로 또 같이’ 일하는 공유오피스, ‘따로 또 같이’ 생활하는 공유주거가 좋은 본보기다. 다양한 개인과 그룹들이 특정 목표·가치를 중심으로 유연하게 이합집산하는, 예전에 보지 못했던 곳이다. ‘어디에서 일하느냐’가 ‘무슨 일을 하느냐’만큼 당신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주는 날이 멀지 않았다.

조재원 건축가·공일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