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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렌즈 들고 편견과 싸우는 ‘고독한 늑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사진작가 권철의 전시 소식이 들려왔다.

23일까지 여수 화인갤러리에서 전시가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권 작가로부터 전시보도자료를 받지 못한 터였다.

그래서 그에게 전화했다.

그 전화번호는 그의 것이 아니었다.

어찌 된 영문인가 하여 SNS를 통해 연유를 물었다.

오래지 않아 그에게서 답이 왔다.

“많은 아픔과 경험으로 저는 더 튼튼해졌습니다. 올 3월에 일본으로 다시 왔습니다. 역시 이곳이 행복합니다.”

“역시 이곳이 행복하다”는 그의 말,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사진작가 권철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그의 첫 번째 사진집은 2005년 발행된 『강제철거에 맞선 조선인 마을 우토로』이다.

위기에 놓인 조선인 마을 ‘우토로 살리기’를 이슈화시켰고, 당시 방송·신문 등에서 앞다투어 보도하게 된 기폭제가 되었다.

2013년 사진집 『가부키초』는 일본 출판 명가 고단샤(講談社)의

‘2013 출판문화상’ 사진 부문에 선정됐다.

일본 최고 권위의 출판문화상을 한국인 권철이 수상한 게다.

사실 환락가 사진을 찍는 일,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이다.

그런데도 그는 자그마치 18년간 그렇게 사진을 찍었다.

2013년 발행된 사진집 『텟짱! 한센병에 감사한 시인』은 2014년 도쿄 북 페어에서

‘지금 꼭 읽어야 할 책 30권’에 포함되었다.

자신을 희생해 한센병을 세상에 바로 알리려 했던 시인 텟짱은 눈멀고 뭉개진

얼굴을 당당히 보여줬고, 권철은 꾸밈없이 그 얼굴을 찍었다.

이는 한센병 회복자와 세상 사이에 존재했던 벽을 허무는 일이었다.

권철은 한때 JVJA(일본 비주얼저널리스트협회) 회원이기도 했다.

일본에서 13명 남짓인 JVJA 회원이 된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 탈퇴를 했다.

조직과 배경보다는 ‘도코다이(獨對)’로 세상과 마주해야 한다는

자신의 사진철학 때문에 그리 했다고 했다.

2014년 인터뷰에서 그는 스스로 “한 마리 고독한 늑대”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그에게 늑대의 표정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가 보여준 모습, 늑대 그 자체였다.

일순간의 요구에 지을 수 있는 표정이 아니라

살아온 삶이 축적되어 나타난 늑대의 표정이었다.

이날의 사진 촬영 후, 오래지 않아 그가 말했다.

가족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와야겠다고 ….

나는 반대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수입 1, 2위였던 그가 우리나라로 돌아온다면

당장 밥벌이를 걱정해야 할 게 뻔했다. 그래도 그는 돌아와 제주에 정착했다.

국화빵 장사를 하면서도 제주 해녀의 일상을 기록하고 ‘이호테우’ 사진전도 열었다.

그러다 2015년 8월엔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제주시 관덕정에서 일본 군국주의의 실상을 알리는 사진전을 열 계획이었다.

하지만 전시 직전에 허가가 취소되었다.

광복절에 일장기 사진이 나오는 전시를 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는 사진이 품고 있는 참뜻을 헤아리지 못한 데서 비롯된 일이었다.

급기야 그는 사진을 불태우기까지 하며 야스쿠니의 실상을 알리고자 했다.

오해와 편견에 맞서는 그만의 방식이었다.

그런 그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 게다. 그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조직과 배경보다는 독대(獨對)로 세상과 마주해야 하는 게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숙명입니다.”

그는 다시 스스로 늑대가 되는 길을 택한 게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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