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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군함도' 같은 강제징용 할머니 4명 또 손해배상 인정 판결

중앙일보

입력

근로정신대 피해자들. [중앙포토]

근로정신대 피해자들. [중앙포토]

8·15 광복절을 앞두고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법원의 손배해상 인정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광주지법 "미쓰비시중공업 각 1억~1억5000만원씩 배상" #지난 8일에도 같은 취지 판결 내리는 등 관련 소송 15건 #대법원은 4년째 재상고심에 대한 결론 안내려

광주지법 민사11부(부장 김상연)는 11일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재림(87ㆍ여)씨 등 3명과 숨진 피해자의 동생 등 4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또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미쓰비시중공업이 양씨 등 피해자 2명에게는 1억원, 다른 피해자 1명에게는 1억2000만원, 사망자의 동생에게는 1억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김씨 등 피해자 4명(사망자 포함)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인 1944년 5월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도 공짜로 할 수 있다” “6개월에 한 번은 고향에 돌아올 수 있다” 등 말에 속에 일본에 갔다.

군함도 혹은 지옥도라고 불리는 일본의 섬 하시마. [중앙포토]

군함도 혹은 지옥도라고 불리는 일본의 섬 하시마. [중앙포토]

일본 아이치(愛知)현 미쓰미시중공업 나고야(名古屋) 항공기제작소에 도착한 김씨 등은 엄격한 감시 아래 노역을 했다. 비행기를 닦거나 부품을 만들었다.

일제가 약속했던 학교 교육은 이뤄지지 않았다. 숙소도 열악했고 음식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다. 이번에 소송을 낸 피해자 중 한 명은 12월 도난카이(東南海) 지진 때 현지에서 숨졌다.

재판부는 “일본의 핵심 군수산업체였던 미쓰비시중공업은 회유나 협박으로 근로정신대 지원을 받고 원고들을 데려가 일을 시켰다”며 “당시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에 적극 동참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라고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특히 “여성이나 아동을 강제 노동은 물론 위험한 업무에 종사시키지 말아야 할 의무, 안전배려 의무 내지 보호 의무까지도 방기한 불법행위를 했다”고 지적했다.

군함도의 조선인 숙소(양편)와 하시마 신사로 통하는 계단. 최근 출간된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에 실렸다. 익숙하지 않은 사진들이다. [사진 선인출판사]

군함도의 조선인 숙소(양편)와 하시마 신사로 통하는 계단. 최근 출간된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에 실렸다. 익숙하지 않은 사진들이다. [사진 선인출판사]

특히 미쓰비시중공업 측이 ‘한국과 일본 사이의 일괄 처리 협정인 청구권 협정에 따라 청구권이 이미 소멸했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는 “개인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청구권 소멸 시효 완성’ 주장에도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쓰비시중공업은 44년 봄 광주ㆍ전남 등 곳곳에서 10대 소녀 약 300명을 나고야 항공기제작소에 동원했다.

영화 '군함도'로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이 다시 조명받고 있는 가운데 광주지법에서는 지난 8일에도 민사1단독 김현정 부장판사가 김영옥(85ㆍ여)씨와 고(故) 최정례(여ㆍ사망 당시 17세)씨의 조카며느리 이경자(74)씨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광주 지역 시민사회단체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 관련 손해배상 소송 15건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4년 넘게 재상고심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고령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대법원이 재판을 미루지 말고 책임감 있게 사법적 판단을 신속히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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