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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예슬의 만만한 리뷰] (2) 그들도 누군가의 가족이었다, 영화 '택시운전사'

중앙일보

입력

영화 '택시운전사' 포스터 사진. 해당 사진은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포토그래퍼가 영화 촬영 현장에서 잠시 쉬고 있던 송강호를 찍었는데, 사진 속 분위기가 너무 좋아 포스터에 사용하게 됐다는 후문. [사진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 이미지]

영화 '택시운전사' 포스터 사진. 해당 사진은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포토그래퍼가 영화 촬영 현장에서 잠시 쉬고 있던 송강호를 찍었는데, 사진 속 분위기가 너무 좋아 포스터에 사용하게 됐다는 후문. [사진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 이미지]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1980년 광주'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겁니다. 그동안 많은 영화와 드라마, 책에서 다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 영화는 좀 다릅니다. 서울 사는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 분)과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 즉 외부인이 보는 시선으로 '1980년 광주'를 그렸기 때문이지요.

택시운전사 만섭은 딸과 둘이 사는 홀아비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큰 돈을 벌었지만 아픈 아내의 병원비로 다 써버리고 결국 남은 건 아내가 우겨서 산 택시 한 대. 이 집의 유일한 수입원이죠. 월세가 밀려 집주인에게 한 소리 들은 어느 날, 큰 건수 하나를 물게 됩니다.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이하 피터)는 일본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중 한국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사건이 있는 곳에 기자가 있다’는 말처럼 그는 직접 한국의 사건 속으로 뛰어듭니다.

택시기사 만섭(송강호 분)과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가 광주로 들어가기 위해 검문소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중앙포토]

택시기사 만섭(송강호 분)과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가 광주로 들어가기 위해 검문소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중앙포토]

만섭은 밀린 집세를 내기 위해 독일인 기자 피터를 태우고 광주로 향합니다. 피터는 광주의 참상을 만국에 알리기 위해 광주로 향하죠.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고 광주, 그 어지럽던 곳으로 향합니다. 들어가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길목마다 군인들이 검문하기 때문이죠. 이때까지만 해도 만섭은 그저 서울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은 대학생들의 가벼운 데모 쯤이라 여겼을 겁니다.

하지만 막상 목격한 광주는 서늘하기 그지없습니다. 거리엔 돌아다니는 사람 하나 없고 벽에는 ‘계엄령을 해제하라’는 글씨가 을씨년스럽게 쓰여있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만섭은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상식이 무너진 사회를 목격하게 된 것이죠. 국가와 국민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군인의 의무는 어느 한쪽에게만 기울어진듯 보였습니다. 누군가의 딸이자 아들이었고, 한 집안의 가장이자 자식 걱정 뿐인 누군가의 어머니에게 총을 들이대는 이상한 광경.

택시기사 만섭(송강호 분)과 그의 딸 은정(유은미 분). [사진 쇼박스]

택시기사 만섭(송강호 분)과 그의 딸 은정(유은미 분). [사진 쇼박스]

만섭은 집에 홀로 있을 딸이 생각납니다. 소풍가자던 말을 철썩같이 믿고있을 딸, 엄마 없이도 씩씩한 내 딸…. 돈이고 뭐고 집에 돌아가기로 합니다. 큰맘 먹고 딸이 좋아할 만한 예쁜 구두도 하나 샀죠. 아… 그런데 마음 한구석이 불편합니다.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광주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는 현실. 양 갈래길에서 고민하던 그는 마침내 용기있는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딸에게 전화를 하죠.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

이 영화의 결말은 ‘역사’가 스포일러입니다. 피터가 찍은 필름은 독일방송 저녁 뉴스 프로그램에 즉시 보도돼 광주의 참상을 국내외로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가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면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그저 폭도들에 의해 발생된 사건으로 묻혀버렸을지도 모르죠.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가 광주에서 대학생 시위대(류준열 외)를 취재하고 있다. [중앙포토]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가 광주에서 대학생 시위대(류준열 외)를 취재하고 있다. [중앙포토]

영화를 보며 지난 5월,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생각났습니다. 1980년 5월 18일에 태어난 그녀는 자신의 탄생을 보기 위해 병원으로 오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편지를 드렸죠. 자신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된 건 아닌지, 자신의 탄생을 자책하더군요. 커가면서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꼈을, 그러면서 자책했을 그분을 보면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도 누군가의 가족이었을 뿐이었다는걸 그때 그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요?

영화는 80년대의 광주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그중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만섭의 택시 안에서 흘러나오는 조용필의 ‘단발머리’는 관객들을 그때 그 시절의 80년대로 소환하게 만듭니다. 이 외에 1977년 제 1회 대학가요제 대상곡인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와 혜은이의 ‘제3한강교’까지. 영화를 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광주로 향하는 택시. [중앙포토]

광주로 향하는 택시. [중앙포토]

여러분들도 만섭의 택시를 타고 슬프지만 찬란했던 80년대의 광주로 가보시겠습니까?

현예슬 멀티미디어 기자 hyeon.yeseul@joongang.co.kr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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