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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중심으로 ‘원자력→신재생’…독일 25년, 스위스 33년 들여 ‘신중 또 신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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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2012년부터 2030년까지 세계 전력 생산 중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이 21.9%에서 28.1%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우리는 탈원전을 선언했지만 원자력 발전도 아직 건재하다. EIA는 같은 기간 원자력의 비중도 10.9%에서 12.8%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에너지 정책의 흐름은 ‘원전의 종말’이라기보다 ‘에너지 믹스(Mix)’의 조정, 즉 에너지원의 다양화라고 할 수 있다.

'원전의 종말'아닌 '에너지 다변화' #에너지 정책 '선악논리' 경계 #산업구조 변화, 수급대책 필수

 실제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세계원자력협회(WNA) 등에 따르면 전 세계에 가동 중인 원전은 총 446기로 1997년 이후 큰 변동이 없다. 새로 짓고 있는 원전도 60여 기나 되지만 중국 20개, 러시아 7기, 인도 6기, 아랍에미리트가 4기 등으로 에너지 소비가 빠르게 증가하는 개발도상국이 주도하고 있다.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선진국들은 신규 원전 건설을 줄이고 노후 원전을 폐쇄하는 중이다. 대신 신재생 에너지 쪽으로 정책의 무게를 옮기고 있다. 각국이 2030년까지 정한 신재생 에너지 목표 비중은 미국 25%(뉴욕ㆍ캘리포니아주 등은 50%), 영국 40%, 프랑스 40%, 일본 23% 등이다.

 이런 선진국들의 ‘에너지 이동’은 오랜 시간을 두고 진행됐다. 갑자기 전 국토의 원전을 닫고 신재생 에너지로 전환한 사례는 없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에너지 전환은 필연적으로 수십년 이상의 시간과 고통이 수반되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탈원전’ 우등생으로 꼽히는 독일조차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계기로 원전 폐지 논의가 시작된 지 25년 만인 2011년에야 탈원전 시행을 묻는 절차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독일 정부는 발전사들이 원전 가동 중단으로 입은 수십조원의 손실을 물어주게 됐다. 전기 요금도 크게 올랐다. 환경을 위해 원전을 폐쇄했지만 에너지가 부족해 석탄발전 비중이 40%가 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겪고 있다.

 프랑스는 2025년까지 원자력 비중을 현재 75%에서 50%로 낮추는 법을 통과시켰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원전 중단을) 계속 논의하겠다”고 신중한 입장이다. 이유는 경제다. 탈원전은 20만 명에 이르는 원전 종사자와 연간 약 4조원에 이르는 전력 수출에 엄청난 타격을 입힌다. 무엇보다 신재생에너지 공급량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원전을 중단할 경우 화력발전이 늘어나 파리기후협정을 스스로 어기는 모순에 빠질 수 있다.

 스위스는 지난 5월 국민투표로 탈원전을 결정했다. 그러나 국민 58.2%의 동의를 얻어내기까지 1984년부터 33년 동안 4번의 국민투표를 거쳤다. 이번에 통과된 ‘에너지전략 2050’도 가동 중인 원전의 폐쇄가 아니라 원전이 수명을 다하면 새로 짓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여전히 스위스의 보수성향 정당과 국민들은 ‘정부가 너무 급진적’이라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자력 발전을 줄이고 신재생 에너지를 늘려가는 방향에 대체로 동의한다. 그러나 준비 없는 속도전이나 ‘원자력 대 신재생’같은 양자택일식 결정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한전기학회장을 지낸 구자윤 한양대 전자시스템공학과 명예교수는 “에너지는 우리 생체와 같아서 끊기거나 균형이 무너지면 안 된다”며 “백업 전원이나 신재생에너지 단가 인하 등 탈원전을 위한 기초체력부터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대만은 ‘2025년까지 모든 원전을 완전 중단시킨다’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폭염으로 전력예비율이 떨어져 결국 지난 6월 멈춰세운 원전 2기를 재가동하기에 이르렀다. 준비 없는 탈원전이 부른 후폭풍이다.

 특히 한국은 철강ㆍ화학ㆍ건자재 등 고(高)에너지 산업이 뿌리를 이루는데다 정전에 치명적인 반도체와 전자소재ㆍ부품 업종의 경제 의존도가 높아 치밀한 준비 작업이 필수다.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에너지는 선악의 개념이 아니다”라며 “에너지 수입이 많은 한국은 에너지 안보를 지키고 새로운 먹거리를 만든다는 차원에서 원전 외에 연료의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도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양적인 목표 뿐만 아니라 건전한 사업자 관리, 보조금 등 예산 낭비 방지, 효과적인 포트폴리오 설계 등 질적인 목표를 세워 관리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손해용·이소아·김유경·문희철·윤정민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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