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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범' 박혁권,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심정 쫄깃하던데"

중앙일보

입력

[매거진M] 보이진 않는다. 들릴 뿐이다. 당신을 가장 애달프게 하는 목소리가. ‘장산범’(8월 17일 개봉, 허정 감독)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사람을 홀린다는 괴담의 주인공, 장산범을 소재로 한 서스펜스 스릴러다. 하지만 영화는 그 괴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 신묘한 능력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밝히는 데 힘을 쏟지 않는다. 그보다는, 잃어버린 아이를 그리워하고, 다시는 그를 놓치지 않으려는 어미의 마음, 그 애절한 드라마를 그리는 데 힘을 쏟는다.

5년 전, 어린 아들 준서를 잃어버린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희연(염정아). 치매 환자인 시어머니 순자(허진)의 요양을 위해 시골로 이사한 희연의 가족은 의문의 여자아이(신린아)와 만나면서 기이한 일을 겪는다. 희연이 여자아이에게 빠질수록, 남편 민호(박혁권)는 그 아이가 의심스럽기만 하다.

박혁권 / 사진=전소윤(STUDIO 706)

박혁권 / 사진=전소윤(STUDIO 706)

캐릭터를 멋지게 포장하는 것보다, 허울을 벗기는 데 도통한 배우. 어떤 배역도 ‘배우 박혁권’을 거치고 나면 그럴듯한 인간미가 생긴다. 박혁권(46) 그에게 ‘장산범’ 민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오늘 유난히 불편해 보인다.
“커버 모델로서 촬영하는 건 처음인데, 어색해 미치겠다. 예전에 월간지 화보 촬영을 한번 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정말 죽고 싶었다(일동 웃음). 처음이자 마지막 커버라는 생각으로 찍었다.”

―사진 찍히는 게 뭐 어때서?
“화보는 연기할 대상이 없으니, 팔 하나를 움직여도 불편하게 느껴진다. 영화 찍을 때처럼 캐릭터가 명확하면 좀 쉬우려나.”

―미스터리 공포영화는 ‘장산범’이 처음이다.
“아, 그런가. 몰랐다. 특별히 장르를 가리는 편은 아닌데, 기회가 없었다.”

―‘배우 박혁권’하면 역시 자연스러운 생활연기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이번 영화는 장르 특성상 과장된 연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
“블루 스크린 앞에서도 얼마든지 연기할 수 있다. 대신 상황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고, 스스로 이해가 필요하겠지. ‘장산범’도 그래서 허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

'장산범' 스틸컷

'장산범' 스틸컷

―평소 미스터리나 공포 장르를 즐겨 보나?
“그냥 놀라게 하는 데만 목적이 있고, 무작정 피칠갑하는 영화는 솔직히 재미없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싸인’(2002) 같은 영화는 좋아한다. 미스터리의 실체를 완전히 감추고, 사운드를 최소화하면서 불안감을 만들어내는 연출이 탁월하더라. 시각적인 자극이 아니라, 분위기로 공포를 조성하는 영화가 나랑 잘 맞는다.”

―‘장산범’에서도 그런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던가.
"확신은 없었지만, 감독님의 시나리오가 굉장히 꼼꼼했기 때문에 믿음이 갔다. 이 글에 영상과 음향 효과를 입히면 대체 어떤 분위기가 나올지 너무 궁금하더라.”

―‘장산범’에서 연기한 민호는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했나.
"겉으론 정상으로 보이는데 딱한 사람이다. 아들은 5년 전 실종됐고, 어머니의 치매는 날로 심각해지는 상황인데, 정상일 수 있겠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지만, 기본적으로 바닥에 슬픔이 깔려 있는 인물이다.”

박혁권 / 사진=전소윤(STUDIO 706)

박혁권 / 사진=전소윤(STUDIO 706)

―감정과 표현의 수위를 조율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장산범이라는 공포의 대상과 직접 맞닥뜨리는 희연은 그나마 온도가 분명한 편이다. 반면 민호는 혼란에 빠진 희연을 말리는 제3자의 입장이다.
"영화 들어갈 때부터 연기하기 까다롭겠다 싶긴 했다. 희연과 달리 민호는 영화 중반까지도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사건에 휘말리지 않으려 애쓰는 인물이니까. 그래서 감정의 줄타기를 훨씬 더 예민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뜨거운 물에 직접 몸을 담그는 인물이면, 얼마나 뜨거운지를 연기하면 되는데, 민호는 뭐랄까. 뜨거운 물에 손이 닿을 듯 말 듯한 불안의 정서를 계속 품고 있어야 했다.”

―가장 몰입했던 장면은.
"희연에게 ‘우리 이제 아들 찾는 거 포기하자’고 말하는 대목이다. 분노와 낙심, 답답함 이 모든 게 복합적으로 묻어 나와야 했다.”

―민호는 어찌 보면 ‘택시운전사’(8월 2일 개봉, 장훈 감독)에서 연기한 최기자와 닮은 구석이 많다.
"그러네. 최기자도 무력감과 답답함이 주된 감정이었으니까. 한쪽은 붕괴된 가정을 어떻게든 봉합하려는 가장이고, 다른 한쪽은 거대한 사건 앞에서 어떻게든 제 소임을 다하려는 기자다.”

―기자 회견 때 염정아와의 연기 호흡에 대해 ‘꿈 같았다’고 했는데, ‘초인가족 2017’(2017, SBS) 때 상대 배우 박선영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했더라. 말버릇인가(웃음).
"데뷔 전 TV로만 보던 미스코리아와 부부로 출연한 거니까. 근데 ‘초인가족’ 때도 보통 꿈이 아니었던 게, 선영씨도 KBS 슈퍼탤런트 대상 출신이다(웃음). ‘밀회’(2014, JTBC) 때 김희애 선배와 연기할 때도 정말 꿈같았다. 진짜다.”

(왼쪽부터)염정아, 박혁권 / 사진=전소윤(STUDIO 706)

(왼쪽부터)염정아, 박혁권 / 사진=전소윤(STUDIO 706)

―곁에서 본 염정아는 어떤 배우였나?
“워낙 세련된 이미지가 강해서 몰랐는데, 생각보다 훨씬 여유로운 사람이더라. 처음엔 격식을 차려 대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먼저 스스럼없이 대해 줘서 고마웠다. 덕분에 편하게 연기했다.”

―허정 감독은 어떻던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지. 평소엔 그냥 대학생 같다. 외모도 그렇고, 말투도 조근조근 하고, 때 묻지 않은 느낌이 있다. 그런 사람이 신기한 게 현장에서는 엄청 집요하게 파고들어 무시무시한 화면을 만든다. 변태 기질이 확실히 있는 사람 같다(웃음).”

―어떤 배역을 맡든, 그 인물의 독특한 캐릭터나 직업적 특수성을 드러내기보다는 인간미 있게 그리는 쪽을 더 즐기는 인상이다.
“연기는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의사를 연기하든, 범인을 연기하든 캐릭터의 틀에 갇혀 있기보다는, 사람 같은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왼쪽부터) 박혁권, 염정아 / 사진=전소윤(STUDIO 706)

(왼쪽부터) 박혁권, 염정아 / 사진=전소윤(STUDIO 706)

―좋아하는 배우도 그런 취향인가.
“예를 들어 알 파치노가 풍기는 분위기로 연기하는 느낌이라면, 로버트 드니로는 더 깊이 인물에 빠져들어 연기하는 느낌이다. 드니로쪽이 좀 더 사람 같아 보인다고 해야 하나. 아무리 악랄한 갱을 연기해도,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내가 그래서 드니로를 좋아한다. ‘감히 니가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니로의 연기를 논해?’ 이런 악플 달리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웃음).”

―영화든 TV드라마든 1년에 서너 편씩은 한다. 일 욕심이 많은 건가.
“내가 주연 배우는 아니지 않나. 그래서 서너 작품씩 해도 크게 무리는 없다. 웬만하면 겹치기 출연은 피하려는 편이고.”

―그래도 배우로서 욕심은 있지 않나.
"매 작품 평균 이상의 연기를 했으면 하는 마음은 있다. 내 작품이 관객에게 좋은 영화, 볼만한 작품이었으면 좋겠다. 식당이라고 치면 매출 좋은 대박집보다, 한 자리를 오래 지켜온 식당을 운영하는 게 더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김밥 한 줄을 팔아도 꾸준한 맛을 내는 그런 식당.”

백종현 기자 jam1979@joongang.co.kr 사진=전소윤(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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