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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대세 상승, 천천히 오래 갈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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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3호 19면

증시고수에게 듣는다

일러스트=강일구 ilgook@hanmail.net

일러스트=강일구 ilgook@hanmail.net

1975년에 종합주가지수가 만들어진 이후 세 번의 대세 상승이 있었다. 이번이 네 번째다. 현재까지 주가 움직임은 과거 세 번의 대세 상승과 조금 다른 것 같다.

과거에는 거시경제 따라 급등락 #이젠 기업 이익규모에 맞춰 조정 #상장사 영업이익 200조 시대 맞아 #선진국처럼 주식 안정성 높아져

우선 상승 요인이 차이가 난다. 과거에는 주로 거시 경제 변화가 주가를 움직이는 원인이었다. 77년의 경우 경공업 중심의 경제에 중동특수로 인한 건설업이 더해지면서 주가가 올랐다. 85년은 과잉 투자에 시달리던 중화학 공업이 세계적인 호황에 힘입어 처음 수익을 냈고, 2004년은 중국 특수가 작동했다. 우리나라의 제 1교역국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뀌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

이번에는 경제 변수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으로 바뀌었기 때문인데, 아직은 ‘성장 둔화=주가 하락’이란 생각이 다수여서 당분간 경제 변수가 역할을 하기 힘들 것 같다. 대신 기업이 주목받고 있다. 기업 이익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보다 커졌는데, 이익 수준이 달라진 데 따른 반응으로 생각된다. 2000년에 34조원이던 상장사 영업이익이 올해는 200조원에 육박할 걸로 예상되고 있다. 17년 만에 6배 가까이 증가한 건데, 같은 기간 미국 S&P500의 이익 증가율에 비해 10배 정도 빠른 속도다. 이렇게 이익의 규모가 커지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제 변수를 제치고 이익이 주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올라섰다.

몇 배 오르는 이머징 마켓 특성 벗어나

상승 요인이 바뀐 만큼 앞으로 주가 흐름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 선진국과 이머징 마켓은 주가 움직임이 다르다. 선진국은 상승 속도가 느린 반면 기간이 긴 특징을 가지고 있다. 미국이 대표적인 예인데, 84년부터 94년까지 11년 동안 주가가 크게 오르거나 떨어지는 일 없이 꾸준한 상승을 유지해 왔다. 당시 미국 경제는 15년 넘게 계속돼 온 구조조정이 막 끝난 상태였는데, 조정이 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만큼 이익의 영향력이 컸다. 특히 82년에 주가가 20년 가까이 머물렀던 박스권을 뚫고 나옴으로써 둘 사이의 관계가 더 밀접해졌다.

반면 이머징 마켓은 주가 상승 폭이 크고 속도가 빠르지만, 상승이 끝나면 다시 크게 하락하고 조정 기간도 긴 특징을 가지고 있다. 경기의 변동 폭이 커 주가 등락도 심하기 때문인데, 상황이 괜찮을 때는 주가가 선진국보다 훨씬 빨리 오르지만 상황이 조금만 악화되면 정반대의 모양이 나타난다. 그동안 우리 시장은 이머징 마켓형 움직임에 머물러 있었다. 두 번째 대세 상승이 시작된 85년의 경우 3년 반 동안 주가가 일곱 배 넘게 올랐지만 상승이 끝난 후 16년에 걸친 하락조정이 있었다. 2004년에도 세 배 가까이 상승한 후 9년 동안 쉬었다.

앞으로 우리 시장은 선진국형으로 바뀔 것이다. 이미 어느 정도 변화된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데, 대세 상승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2월 이후 현재까지 주가가 22% 오르는 데 그쳤다. 이는 과거 세 번의 대세 상승은 물론, 대세 상승으로 발전하지 못했던 경우보다도 낮은 상승률이다. 반면 상승기간은 8개월로 비교적 길다. 우리 주식시장이 과거의 짧고 강한 상승 대신, 길고 느린 상승으로 형태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 주는 예다.

주가의 형태가 변하면 투자법도 바뀌어야 한다. 우선 모멘텀 투자에 대한 집착을 줄일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경기 변동에 따른 이익 변화가 컸기 때문에 경기가 바닥일 때 사서 회복이 어느 정도 진행된 후에 파는 게 최상의 투자법이었다. 이런 흐름은 경기 민감주에서 특히 두드러졌는데 화학·철강·조선 같은 경우 주가가 바닥 대비 10배 넘게 오르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앞으로는 이런 주가 상승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익의 변동이 줄어든 데다 시장이 불안정한 이익에 대해 높은 가치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연 평균 10% 넘는 수익률 기대하기 어려워

장기 이익 추세에 맞춘 투자가 필요하다. 삼성전자를 보면 시장이 이익 추세와 얼마나 밀접하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다. 98년에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처음 분기당 1조원을 넘었다. 2002년에서 2008년까지는 2조원대로 높아졌고, 2012년에 5조원대가 됐다. 분기 영업이익이 1조원이던 시절에 주가는 20만원대에 머물렀지만, 이익이 2조원대가 되면서 60만원대로 올라왔다. 5조원대 이익을 기반으로 100만원을 돌파했고, 10조원을 넘으면서 200만원을 넘었다. 이익과 주가가 동시에 높아진 것인데, 이익이 장기에 걸쳐 늘어난 만큼 금융위기 같은 변동에도 주가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주식의 기대 수익률을 낮춰야 한다. 그동안 발생한 이익의 상당 부분이 이미 주가에 반영됐다. 주가가 두 번째로 2000에 도달했던 2010년에 분기별 영업이익은 30조원이 되지 않았었다. 지금은 50조원에 육박하고 있는데 지난 몇 달간 주가가 빠르게 상승함으로써 이익과 주가 사이에 존재하던 괴리가 메워졌다.

이익 규모가 커진 만큼 앞으로 증가율은 높지 않을 것이다. 연평균 10%를 넘기도 힘들 걸로 전망되는데, 이익 증가률이 낮아진 만큼 주가 상승도 더딜 수밖에 없다. 투자 수익률이 높지 않은 대신 수익의 안정성은 올라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미국에서 주식이 투자자산으로 자리를 잡은 건 84년 이후다. 11년간 연평균 10%를 넘지 않는 상승률이 꾸준히 발생한 결과인데, 예측 가능성이 높아진 게 투자자들의 심리적 안정에 도움을 준 것 같다. 우리 주식시장도 비슷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제 비로소 주식이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대상이 된 것 같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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