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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멀쩡한 생사람을 미친 여자 취급 … 남자들은 알 수 없는 기가 막힌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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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문학이 있는 주말 

어려운 여자들
록산 게이 지음
김선형 옮김
사이행성

페미니즘 논의를 남성들은 가급적 피하고 싶다. 잘해야 본전, 웬만해선 손해여서다. 그런데도 이 페미니즘 소설에는 도전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불편하겠지만 남는 게 있을 수 있어서다.

저자 록산 게이(43)는 인간 본성에 충실한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 국제적 주목을 받은 2014년 저서 『나쁜 페미니스트』에서 자신이 단점과 모순으로 똘똘 뭉친 존재라고 했다. 핑크색을 사랑하고 섹스를 좋아하며 여성 비하 노래라도 흥이 나면 그에 맞춰 엉덩이를 흔든다고 고백했다. 여성의 대상화에 격렬하게 반응하고 섹스를 싫어한다고 (잘못)알려진 근본주의 페미니즘에 견주면 자신이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얘기였다. 그런 저자이다 보니 남성 독자는 어느 정도 경계심을 풀어도 되겠다. 책을 완독하면 양성 평등에 관심 있는 섬세한 남자로 인정받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책에 실린 21개의 단편이 마냥 온건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하나 같이 기가 막힌 이야기들이다.

맨 처음 실린 ‘언니가 가면 나도 갈래’부터 숨이 턱 막힌다. 연년생 자매인 캐롤리나와 ‘나’는 쌍둥이처럼 붙어 다닌다. 캐롤리나 언니가 남편과 재결합해 살기 위해 네바다 사막행을 선택하자 나는 대학 강의까지 때려치우고 따라 나선다. 자매는 지독한 소아 성폭행 피해자였다. 열 살, 열한 살 때 6주간에 걸쳐. 둘은 지옥에서 함께 살아돌아온 사이였던 거다. 이런 이야기를 저자는 직접적인 성폭행 묘사 장면 하나 없이 그야말로 처절하게 그려낸다. 눈 비비고 저자를 다시 보게 된다.

소설 속에서 남성들은 여성을 수시로 ‘오독’한다. 그러니 여자들이 어려울 수밖에. ‘어려운 여자’는 남자들 입장에서 ‘다루기 어려운 여자들’을 뜻한다. 그런 메시지는 표제작에서 한 정점에 이른다. 소설 제목의 어려운 여자는 다시 다섯 부류로 나뉘는데 헤픈 여자, 불감증의 여자, 미친 여자, 어머니, 죽은 처녀다. 문답식으로 각각의 부류에 대한 정의가 내려진다. 그런데 앞의 세 분류 항목은 남성이 여성을 비하할 때 흔히 갖다 붙이는 부당한 낙인 아닌가. 가령 고분고분하기는커녕 오히려 사나운 부하 여직원은 미친 여자로 매도될 수 있다. 이런식으로 소설이 드러내는 건 남성 안에 내면화된 왜곡된 여성상이다. 이런 진단에서 남성들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소설은 그에 대한 질문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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