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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 한여름에 ‘산타’로 피서객 모은 봉화 산골마을의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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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여름에 오는 나라의 산타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만 하던 산타의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기차역이 국내에 있다. 열차에서 내리면 반바지를 입고 어깨에 물놀이용 튜브를 멘 산타가 관광객들을 반긴다. 꽃무늬 셔츠에 선글라스도 꼈다. 경북 봉화군 분천역에 위치한 한여름 산타마을의 모습이다.

반바지 입은 산타를 볼 수 있는 봉화군 한여름산타마을 #하루 10명 오가던 분천역, 산타마을 생긴 뒤 일평균 1500명 방문 #국내 최초 창문열고 달리는 협곡열차, 절경 감상할 수 있어 #낙동정맥트레킹길도 인기…주말이면 민박 방 꽉차

분천역 한여름 산타마을에서 반바지를 입은 산타 모형이 레일바이크 앞에 있다. 백경서 기자

분천역 한여름 산타마을에서 반바지를 입은 산타 모형이 레일바이크 앞에 있다. 백경서 기자

지난달 22일에 개장해 오는 20일까지 운영되는 산타마을은 올여름 이색적인 풍경을 보기 위한 관광객들로 붐볐다. 3일 분천역 앞 잔디밭에는 루돌프의 마차에 타서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이 줄지어 섰다. 레일바이크를 타거나 루돌프 대신 당나귀를 타는 사람들도 있었다. 분천역 앞 계단에는 관광객들이 소망을 써놓은 쪽지가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여름휴가를 맞아 부모님을 모시고 왔다는 김지은(36)씨는 "지난겨울 눈이 가득 쌓인 산타마을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며 "여름에도 산타마을이 열린다고 하길래 근처 계곡에서 피서도 즐길 겸 가족이 함께 왔다"고 말했다.

봉천역 산타마을 입구에 위치한 소망우체통 계단. 관광객들이 써놓은 소망쪽지가 가득하다. 백경서 기자

봉천역 산타마을 입구에 위치한 소망우체통 계단. 관광객들이 써놓은 소망쪽지가 가득하다. 백경서 기자

분천리에 위치한 분천역은 봉화군청에서 차를 타고 40분간 산길을 내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오지 중에서 오지다. 마을 앞에는 낙동강이 흐르고 뒤에는 백두대간이 자리 잡고 있다. 강과 산 사이에 위치한 면적 32만㎡의 작은 산골 마을이다. 봉화군청에 따르면 2014년 산타마을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분천역을 통해 마을을 왔다 갔다 하는 인원이 하루 평균 10명에 불과했다. 분천역은 하루 두 번 무궁화호만 정차하던 간이역이었다.

김태정(65) 분천2리 마을 이장은 "산타마을이 생기기 전에는 대부분의 주민이 밭농사를 지으면서 근근이 살던 마을이었다"며 "2013년 분천역에서 강원도를 왕복하는 협곡열차가 생기고, 1년 뒤 산타마을까지 조성되자 관광객들이 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봉화군 산타마을 전경. 백경서 기자

봉화군 산타마을 전경. 백경서 기자

한적했던 산골마을이 북적이기 시작한 건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생기면서다. V자 협곡을 가로질러간다고 해서 V-트레인으로도 불리는 이 열차는 대한민국 최초로 달리는 도중에 창문을 열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관광열차다. 속도가 시속 30㎞로 느릿느릿 움직인다. 고속열차 속도의 10분의 1정도다.

경북 분천역과 강원 철암역까지 총 27.7㎞ 백두대간 코스를 왕복하는데 3시간이 소요된다. 기차 운행시간 왕복 2시간, 철암역에 한번 정차해 둘러보는 시간이 1시간이다. 열차를 타고 좁은 협곡 사이를 지나면서 열린 창문 사이로 아래로는 절벽, 위로는 바위산을 감상할 수 있다. 철암역에 정차하면 철암 탄광촌의 역사를 마을해설사의 안내로 들을 수 있다.

2016년 겨울 백두대간 협곡열차를 탄 관광객들이 절경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 봉화군]

2016년 겨울 백두대간 협곡열차를 탄 관광객들이 절경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 봉화군]

최원 봉화군청 문화관광과 개발담당원은 "협곡열차가 생긴 이후 관광객이 늘면서 마을 자체를 꾸며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며 "코레일·봉화군·산림청·경북도청이 아이디어를 모아 산타마을이 생겼다”고 말했다.

분천역의 산타마을 아이디어는 핀란드 로바니에미에 있는 산타마을에서 따왔다. 로바니에미는 산타클로스의 실제 고향이란 이야기가 퍼져 세계적 관광지가 된 곳이다. 2014년 12월 국내에도 핀란드 못지않은 이국적인 풍경을 가진 분천역 산타마을이 탄생했다.

그해 겨울 58일 개장기간 동안 10만6000명이 방문했다. 이후 매년 여름·겨울마다 1~2개월간만 운영해 지금까지만 33만여 명의 관광객이 다녀간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지난해에는 ‘2016년 한국 관광의 별’에 선정돼 우리나라의 대표적 관광지로 소개되기도 했다.

봉화군 산타마을에 있는 분천역. 백경서 기자

봉화군 산타마을에 있는 분천역. 백경서 기자

밭농사를 하던 주민들은 이제 대부분 관광업에 종사한다. 서울 인사동에서 캐리커쳐(인물의 특성을 부각시킨 초상화)를 그리다가 고향에 내려와 카페를 운영 중인 전미란씨는 "여름·겨울에만 산타마을이 개장하니 장사가 되는 시즌이 정해져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안정적인 소득이 생겼다"며 "고향에 돌아와서 친구들도 만나고, 장사도 하면서 사니까 좋다"라고 말했다. 전씨는 주말이면 분천역 앞에서 산타마을에 놀러온 관광객들을 위해 무료로 캐리커쳐를 그려주곤 한다.

봉화군 산타마을 전경. 백경서 기자

봉화군 산타마을 전경. 백경서 기자

60년간 마을에 살다가 3년 전부터 협곡민박을 지어 운영하는 이종태(68)씨도 "국민학교(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여기에 살았는데, 고향 마을이 번창하니까 좋다"며 "산타마을 구경뿐만 아니라 마을 앞에 강이 있고 분천역이 낙동정맥트레일 구간이라서 주말이면 민박집 방이 꽉찬다"라고 말했다.

첩첩산중에 놓인 봉화군 분천역 낙동정맥트레일 일대. [중앙포토]

첩첩산중에 놓인 봉화군 분천역 낙동정맥트레일 일대. [중앙포토]

분천역은 낙동정맥트레일 2~3구간의 중간 지점에 있다. 강원도 태백의 구봉산에서 부산 다대포의 몰운대에 이르는 산줄기인 '낙동정맥'(洛東正脈)과 '트레일(Trail)'이 더해져 만들어진 이름이다. 트레일은 트레킹 길 중 산줄기나 산자락을 따라 길게 조성해 시작점과 종점이 연결되지 않는 길을 의미한다.

김 이장은 "최근 트레킹·산타마을·협곡열차를 코스로 즐기려는 외국인들도 많이 온다"며 "관광객들이 많이 오가면서 봉화군의 자연이 훼손되지 않도록 마을주민·관광객 모두가 힘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봉화=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낙동정맥트레킹 지도 및 협곡열차 안내도. [사진 봉화군]

낙동정맥트레킹 지도 및 협곡열차 안내도. [사진 봉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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