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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 상대 강제징용자 소송에 … 외교부, 작년 ‘신중한 접근’ 의견 제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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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외교부가 “청구권이 없다”는 부정적인 견해에 무게를 둔 의견서를 재판부에 낸 것으로 확인됐다. 의견서를 낸 시점은 박근혜 정부 때인 지난해 11월이다.

대법원에 낸 18쪽 서류 보니 #“일본 기업 한국 내 재산 압류 땐 #한·일 파국 우려” 학계 주장 언급 #법원 “청구권 있다” 취지 판결과 차이 #외교부 “중립적 입장이었을 뿐”

외교부 의견서는 2012년 대법원이 1965년의 한·일 협정과 상관없이 강제징용 피해자의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고 판결한 것과 배치되는 취지여서 논란이 예상된다.

관련 재판은 강제징용 피해자인 박창환(2001년 사망)씨 유족 등 27명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철주금(옛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재상고심이다. 이 재판은 2012년 징용 피해자들에게 청구권이 있다는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을 한 이듬해에 재상고돼 4년째 대법원에 맡겨져 있다. 징용 피해자들은 미쓰비시의 군수공장 등에서 노동 착취를 당했다. 미쓰비시는 최근 개봉한 영화 ‘군함도’에 등장하는 해저 탄광을 운영하기도 했다.

외교부는 지난해 11월 18쪽짜리 의견서를 대법원에 냈다. 의견서에는 2005년에 구성된 ‘민관공동위원회’가 내놓은 공식 입장 중 ‘(일본 정부가 지급한) 무상 3억불은 강제동원 피해 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이라는 부분이 들어 있다. 이 위원회는 2004년의 한·일 협정 관련 문서 공개 판결에 따른 후속 조치를 모색하기 위해 국무총리실 산하 기구로 만들어졌다. 이 위원회가 밝힌 입장 중 ‘반인도적 불법행위의 배상청구권은 협정과 관계없다’는 부분은 외교부 의견서에 담기지 않았다.

공동위 입장 발표에 이어 2012년에 대법원이 “강제동원은 타국민에 대한 감금 등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해 징용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을 인정할 법적 논리가 갖춰졌다. 외교부는 이 부분도 의견서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결론 부분에서는 오히려 대법원 판결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 강조됐다. 외교부는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재산을 압류할 경우 양국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 “일본 기업의 한국 투자에 장애가 될 것” 등의 언론 보도와 학계의 주장을 소개했다. 또 “한·일 협정과 같이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요구되는 국가 간 협정이나 외교 문제에 대해서는 (법원이) 신중한 접근을 해야 한다는 ‘사법자제의 원리’를 언급하는 견해도 있다”고 의견을 냈다.

의견서를 검토한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부정적 사례와 주장을 주로 내세워 2012년 대법원 판결에 문제가 있다는 논리를 전개하는 것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징용 피해자 소송대리인인 최봉태 변호사는 “대법원이 일본 주장을 반박할 명쾌한 논리를 만들어 줬는데도 우리 정부가 이를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12년에 정부가 만든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박인환(64) 건국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2012년 판결은 우리 국민을 50여 년간 옥죄고 있던 65년 협정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계기를 마련한 것”이라며 “한·일 협정의 적용 범위를 명확히 한 대법원 판결을 이제라도 외교부가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법원의 판단에 도움이 되도록 중립적 입장에서 여러 주장을 실은 것일 뿐 일방을 두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2012년 판결을 인용하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재상고심의 결론을 4년째 내리지 못하고 있다. 2012년 대법원 파기환송 결정 이후 부산고법과 서울고법은 2013년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철주금이 징용 피해자에게 8000만~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음해에 두 기업이 다시 상고해 사건이 대법원으로 넘어왔고, 판결은 아직 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여러 관련 사건을 통일적이고 모순 없이 처리하기 위해 쟁점에 관해 재판부에서 논의 중이다”고 설명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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