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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우리 안의 ‘군함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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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최근 일본에서 카톡을 받았다. 중국 다롄(大連)외국어대 김월배 교수가 보내왔다. 일본 기타큐슈(北九州)대 초청 안중근 의사 특강을 마친 그는 지난달 28일 군함도(원명 하시마)를 찾아갔다. 초등 6학년 아들과 함께다. 일제의 한국인 징용 현장을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방문 전날 인터넷 예약을 했다. 한국 주소도 적었다. 마침 한국에서 영화 ‘군함도’가 개봉한 직후였다.

탐방 당일, 김 교수는 파란색 이름표를 지급받았다. 일본인은 초록색이었다. 그날 오전 9시 군함도행 크루즈에 승선한 사람은 40여 명, 그중 넷이 한국인이었다. 군함도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굳이 이름표 색깔로 국적을 나눠야 할까. 그는 “예상 밖이었다. 관리를 받는 듯한 느낌”이라 했다.

김 교수가 동봉한 사진 50여 장도 훑어보았다. 일본 메이지 시대 산업혁명 현장을 볼 수 있었다. 군함도 인근 도고 시마 탄광자료관에 있는 한글 연표 마지막 구절은 ‘1974년 1월 15일 하시마광 폐광. 같은 해 4월 20일 무인도가 되어 지금에 이름’. 한국인 징용 사실은 어디에도 없었다. 2년 전 세계유산 등재 당시 관련 사실을 알리라는 유네스코 권고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일본이다. 김 교수는 “현장 가이드도 일본의 근대화만 말하고, 해저 1000m 속 조선인의 슬픔은 단 한 줄도 소개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2일 전국 관객 500만 명을 넘어선 영화 ‘군함도’의 흥행에는 일본의 후안무치에 대한 반감이 작용했을 것 같다. 영화 마케팅도 이 대목을 내세운다. 그럼에도 뒷맛이 헛헛했다. ‘액션의 대가’ 류승완 감독이 낚아챈 비극의 현장은 지극히 표면적이다. 스크린 독과점, 반일·친일 영화 논란은 둘째 치고 전반적인 설득력이 떨어졌다. 무엇보다 캐릭터의 상투성 때문이다.

스타군단이 출동한 ‘군함도’의 순 제작비는 220억원. 들인 만큼 뽑아야 하는 상업영화의 흥행 코드를 이해한다. 하지만 이른바 지옥섬을 탈출하려는 이들의 말과 몸짓이 억지스러워서야…. 역사에 대한 과잉 피해의식으로 비쳤다. 우리 안에 또 다른 ‘군함도’를 만든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일본에 본때를 보이려면 좀 더 세심했어야 했다. 좀 더 고민해야 했다.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