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니 "내 인생 최악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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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 체니(사진) 미국 부통령이 11일 텍사스주에서 그 지역 출신 변호사 해리 위팅턴(78)과 사냥을 즐기다 오발로 그에게 중상을 입힌 사고와 관련, 15일 공개 사과했다.

체니 부통령은 이날 폭스뉴스에 나와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내 인생 최악의 날이었다. 친구에게 부상을 입힌 장면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사과했다. 위팅턴의 몸에는 아직도 지름 5㎜ 정도의 산탄 150여 개가 박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체니는 사고 발생을 하루 남짓 숨기고 12일 오후 처음 알린 데 대해선 "12일 오전까지 위팅턴의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발표를 미룬 것"이라며 사과할 일이 아니라고 밝혔다.

체니는 오발사고를 낸 뒤 나흘간 아무 해명을 하지 않고, 언론 접촉도 거부함으로써 비난을 받아왔다. 이로 인해 그는 미국 사회의 조롱거리로 등장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 소프트(MS) 회장은 14일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한 회의에 참석, 연설하기에 앞서 "오늘 다른 자리에도 초대받았는데, 그건 체니와 함께 메추리 사냥을 가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CBS 방송의 데이비드 레터맨은 13일 밤 토크쇼에서 "좋은 소식입니다. 드디어 대량살상무기를 찾았습니다. 바로 딕 체니입니다"라고 꼬집었다. 레터맨은 체니 관련 조크를 21개나 쏟아냈다.

NBC 방송의 제이 레노도 이틀에 걸쳐 체니 농담을 20개나 만들어냈다. 레노는 "워싱턴에 폭설이 내렸는데, 체니가 뚱뚱한 남자(위팅턴을 지칭)를 북극곰인 줄 알고 총으로 쐈습니다. 그러곤 '국내 도청이 불법이라고 말할 사람 또 있어'라고 소리쳤습니다"라고 했다. 이번 사건을 테러를 예방한다며 영장 없이 국제전화를 도청한 것과 연결한 조크였다.

또 다른 방송 진행자 존 스튜어트는 '데일리 쇼'에서 "체니는 위팅턴을 쏜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가 얻은 '정확한 정보'에 의하면 덤불 속에는 메추리가 숨어 있었으니까요"라고 비꼬았다. 뉴욕의 데일리 뉴스는 "엎드려. 체니가 온다"를 톱 기사 제목으로 달았다. 한 정치 관련 블로그에는 체니의 오발 사건을 풍자한 글이 3000건 가까이 올라왔다.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14일 브리핑을 하면서 자신이 눈에 잘 띄는 오렌지색 넥타이를 맨 것은 체니의 사냥총에 맞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조크를 하기도 했다. 이날 체니의 공개 사과는 백악관이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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