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미사일 지침 개정 협상 시작”…북한 지하벙커 파괴 가능해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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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지도부의 은신처를 파괴할 수 있도록 탄도미사일의 탄두 중량을 현재의 두 배인 1t으로 늘리는 한ㆍ미 미사일 지침(Missile Guideline)의 개정 협상이 시작된다. 2012년 개정 이후 5년 만이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9일 “한국과 미국은 한ㆍ미 미사일 지침 개정 협상을 개시키로 했다”며 “한ㆍ미 양국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협상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2시 청와대에서 긴급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가 끝난 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논의했던 한ㆍ미 미사일 지침 개정 협상을 즉각 개시할 수 있도록 미국 측과 협의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정 실장은 오전 3시 미국의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안보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어 개정 협상 시작을 공식 제안했고, 맥매스터 보좌관은 내부 협의를 거친 뒤 오전 10시 30분께 “미사일 지침 개정 협상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전해왔다고 윤 수석은 전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한ㆍ미 정상회담 때 미사일 지침 개정과 관련한 우리 입장을 설명했고, 당시 미국 측은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한ㆍ미 양국이 그 이후로) 미사일 지침을 개정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의 문제까지는 논의가 없었다”며 “하지만 문 대통령이 다시 물꼬를 터서 구체적으로 (협상) 테이블 위로 올라가게 됐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2012년 협상에서 개정된 미사일 지침은 한국의 탄도미사일 최대 사거리를 800㎞, 탄두 중량을 500㎏으로 제한하고 있다. 문제는 탄두 중량이 500㎏으로 제한되면 유사시 북한 수뇌부가 은신할 수 있는 지하 벙커를 뚫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 지도부는 유사시 전쟁을 지휘하기 위해 백두산 인근의 삼지연을 비롯해 지하에 은신처를 건설해 놓고 있다”며 “최근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는 핵과 미사일 시설 역시 지하에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어 이들 시설물을 파괴하기 위한 무기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만큼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사거리보다는 탄두 중량에 협상의 방점을 두겠다는 방침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사거리보다 탄두 쪽에 무게가 있다고 보면 된다”며 “(탄두 중량 제한이) 1t이다, 아니다는 아직 구체적 협의가 있었던 게 없다. 500kg에서 어느 정도 늘릴 건지는 이제 논의가 시작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탄두 중량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좋지 않느냐”며 “미국에서도 탄두 중량을 늘려야 한다는 데 공감하는 만큼 한국이 그런 능력을 갖는 데 대해서 부정적으로 나올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 도발에 대한 우리의 독자적 제재에) 포함된다고 볼 수도 있다”며 “우리의 독자적인 안보 태세, 미사일 대응 방안의 하나로써 우리가 확보해야 할 전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도 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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