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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SF·판타지보다 ‘고난의 행군’ 같은 논픽션 많이 쓰고 싶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신문 기자 출신 소설가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지음, 민음사

3년간 5개 문학상 챙겼는데 #제대로 된 좋은 학교서 훈련 받은 덕 #‘장편소설 르네상스’ 운도 많이 작용 #한국 ‘공채 시스템’ 파헤친다는데 #신분제 사회 조장하는 특이한 제도 #이래선 잡스 같은 천재 발굴 못해 #기자와 소설가는 어떻게 다른가 #요즘엔 하루 8시간씩 부엌서 집필 #문장 고민 안하니 스트레스도 없어

우리의 소원은 전쟁
장강명 지음, 예담

예외적인 성공 스토리에는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상식과 합리라는 ‘째째한’ 눈으로 볼 때 그렇다는 얘기다. 소설가 장강명(42)은 말하자면 그런 반성을 하게 만드는 존재다. 그만큼 기자에서 작가로, 무명에서 유명으로, 순식간에 이뤄진 그의 변신에는 허를 찌르는 데가 있다.

2011년 일간지 기자 신분이던 그가 ‘88만원 세대’의 초라한 자화상 격인 장편 『표백』으로 상금 5000만원짜리 한겨레문학상을 거머쥐었을 때만 해도 잠깐 부는 바람인 줄 알았다. 2013년 기자를 그만두더니 남들은 2, 3년 걸려도 한 편 쓰기 힘들다는 장편소설을 1년에 두세 권씩 쏟아냈다. 빨리 많이 쓰면 다냐, 는 의심 어린 일부 시선에는 화려한 연속 수상으로 맞받아쳤다. 수상 시기가 섬처럼 떨어져 있는 한겨레문학상을 빼면 2014~2016년 3년간 무려 5개 문학상을 챙겼다. 문학동네작가상, 오늘의 작가상 …. 하나같이 간단한 상들이 아니다. 이번 인터뷰에서 “6개 상의 누적 상금액이 2억2500만원”이라고 밝혔다.

짧은 시간에 엄청 유명해지다 보니 그에게는 더 이상 비밀이 없을 정도다. 아내를 상전처럼 떠받드는 그는 자택 부엌에서 노트북으로 작업한다. 스마트폰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가며 하루 8시간씩 노동(집필)하고, 그 결과를 엑셀에 기록한다. 술과 인간관계를 철저히 멀리한다.

그래서 덜 알려진 ‘팩트’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다음 궁금증들을 풀기 위해서다. 장강명은 재주꾼인가, 진지한 작가인가. 후자라면 새로운 작가 유형인가.

최근 몇 년간 놀라운 생산력과 문학상 수상 실적으로 문단에 새 바람을 몰고온 소설가 장강명. 그는 “지금은 수련기간이다. 언젠가는 독자들로부터 오래 사랑받는 명작을 쓰고 싶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최근 몇 년간 놀라운 생산력과 문학상 수상 실적으로 문단에 새 바람을 몰고온 소설가 장강명. 그는 “지금은 수련기간이다. 언젠가는 독자들로부터 오래 사랑받는 명작을 쓰고 싶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기자 하다 작가 되니까 주변에서 놀랐겠다.
“놀랍게도 기자 선후배들이 많이 찾아온다. 나처럼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한다. 같은 신문사(동아일보)에 있던 선배에게 ‘기자 네 명 중 한 명 정도가 소설가 되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했더니 ‘그거밖에 안 될 것 같냐’고 하더라.”
찾아온 사람들에게 뭐라고 조언하나.
“굳이 소설 아니더라도 책 쓰라고 얘기해준다. 내가 거의 마지막 세대라고 생각하는데, 옛날식 기자훈련 받은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되게 유용한 자원이다. 어떤 종류의 객관성과 어떤 종류의 전문성을 모두 갖추고 있어서다. 신문에서 하지 못하는 르포 저널리즘이나 논픽션 저서가 한국에는 크게 부족하다. 토마스 프리드먼이나 말콤 글래드웰, 빌 브라이슨 같은 이들이 모두 그런 책을 쓰는 사람들이다. 내가 해보니, 같은 주제로 책 세 권 정도 쓰면 해당 분야에서 발언권이 생기고 강연, 기고 시장이 열린다.”
당신 소설은 어떤 면에서 논픽션이다. 박범신 작가 평대로 현실의 이슈를 잡아채 속필(速筆)로 쓴다. 소설적 논픽션 같다.
“내 아이덴티티가 바로 그거라고 생각한다. 기자 시절 현장에 있어 봤고, 제대로 된 좋은 학교(신문사)에서 훈련받은 대로 책을 쓰는 건데 드라마를 강조하고 싶으면 소설적 논픽션, 내 주장을 더 내세우고 싶다면 논픽션을 쓰는 거다.”
아직 논픽션을 쓴 적은 없지 않나.
“내년 초에 나온다.”
무슨 내용인가.
“한 권은 한국의 공채 시스템, 남은 한 권은 1990년대 북한의 고난의 행군에 관한 책이다.”
공채는 뭐가 문제인가. 외국에는 없나.
“대한상의보고서에 한국과 일본의 특이한 문화라고 써 있다. 모든 지원자가 똑같은 시험을 쳐서 몇 점 이상이면 합격시키는 공채는 사회가 빨리 발전하는 데 필요한 제너럴리스트를 양산할 때는 유용하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인생 한 방인 시험들이 생기고, 결국 신분제 사회를 조장한다. 불합격자의 삶이 건강한 것도 아니다. 영원한 반기득권 의식에 사로잡혀 살지만 체제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으니 결국 체제의 구성요소 신세다. 이런 제도로는 스티브 잡스 같은 창발적 천재를 발굴할 수 없다.”
그렇다고 공채를 없애야 하나.
“공채도 좋은 제도다. 공정하다. 공채도 있고, 다른 인재 채용 루트도 있어야 한다.”
집중적으로 상받은 비결이 있다면.
“전략 잘 세웠다거나 그런 게 아니고 운이 좋았다. 도박운 같은 운이 아니라 좋은 장편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장편소설 대망론에 따라 문학상이 많이 만들어질 때 내가 등장한 거다.”
1년에 책을 100권 정도 읽는다고 들었다.
“다른 취미가 별로 없다. 잘 하는 운동도 없다. 몸 쓰는 거 귀찮아 한다. 영화나 TV도 안 보고 게임도 안 한다. 아내 출근하면 집안 청소하고 책 읽고 소설 쓴다.”
마라톤을 다섯 번이나 완주하지 않았나.
“해보니 재미는 없다. 오기로 한 거다. 세 번 완주했다고 하면 적어 보일까봐 다섯 번 뛰었다. 뛰다 보면 4시간 풍선, 4시간 15분 풍선이 돌아다닌다. 페이스메이커다. 그 풍선 따라 뛰다 걷다 하다 보면 완주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승부욕이 강한 편인가.
“그렇다. 또 허무한 걸 못 견딘다. 오늘도 즐겁고 내일도 즐거우면 한 평생 잘 보내겠지, 그런 스타일 아니다. 뭐라도 해야 한다.”
소설 쓰는 스트레스는 없나.
“기자 때와 비교하면 이렇게 편해도 되나 하는 느낌이다. 문장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어선지 쓰는 스트레스도 별로 없다.”
예술성 추구하는 문학은 안 하나.
“알프레드 히치콕 같은 예술가가 되고 싶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뭐가 예술성, 문학성인가.
“잘 모르겠는데 내가 그걸 추구하기는 한다. 돈 벌거나 영화 판권 팔 작정으로 글 쓰지 않으니 말이다. 한국사회에 질문을 던지거나, 개인적으로 감동 받았던 인간의 특질 같은 거,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단 내리고 싸우는 모습, 그런 것들에 매혹을 느끼고 그에 대해 쓰고 싶다.”
문학 순교자주의랄까. 목숨 걸고 작품 쓰는 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그렇게 쓴다. SF·판타지를 많이 읽어 그런 걸 쓰자면 취재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 논픽션처럼 품 많이 드는 글을 쓴다.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정의감이나 보상욕구 때문에 쓰는 게 아니다. 쓰고 싶었던 얘기를 정확히 쓴 결과물이 만족스러울 때 오는 정신적 보상이 가장 크다. 독자가 알아봐주면 더욱 좋겠지. 어떨 때는 내가 사람들 사이가 아니라 글자들 사이에 사는 것 같다.”

“창작근본주의자네.” 이렇게 평하자 장강명은 싫지 않은 눈치였다. 인터뷰가 끝나자 그는 스마트폰 녹음기를 들이밀었다. 공채 논픽션에서 문학상 제도의 문제점도 다룰 예정인데 기자의 의견을 듣고 싶어 했다. 선뜻 응했으나 곤란한 멘트가 실명과 함께 공개되지 않을까. 불안하다.

[S BOX] 전업 소설가의 도발적 문제 제기 “언어는 가짜에 의미를 부여하는 수단”

소설적 논픽션 같다고 표현했지만 장강명 소설이 단순하다는 소리는 아니다. 지금은 종간된 문예지 ‘세계의 문학’ 2015년 가을호 장강명 특집에 그의 문학세계가 인상적으로 설명돼 있다. 장강명 본인의 글에서다. 그는 소설을 자연적인 요소를 없앤 인공 세계로 본다. 자연 세계 혹은 인간의 삶은 사건의 입자들이 불규칙적으로 떠다니는 혼돈의 공간이다. 소설 쓰기는 아무런 연관 없는 정보들을 선택해 이어 붙여 맥락을 만드는 엔지니어링 같은 과정이다. 장강명은 전업작가가 된 후 청소 도우미 비용을 줄이기 위해 농경적 근면성으로 집안 청소에 매진해 아내를 감동시키는 수준에 이르는데 청소 달인이 되는데 동원한 방법론이 소설 쓰기에도 적용됐을 게 빤하다. 장강명은 자신의 소설이 너무 깔끔하다거나 인물에서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다고 한다. 세상과 인생의 의미를 깊게 파고드는 ‘예술 소설’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인간의 언어가 세상에 가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만든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국 현실 비판에서(『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SF(『아스타틴』), 북한을 배경으로 한 누아르 소설(『우리의 소원은 전쟁』)까지, 장강명 소설의 다양한 스펙트럼은 그런 정교한 논리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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