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트랜스젠더다, 나는 미국 여성 대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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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습적인 '트랜스젠더 군 복무 금지' 발표에 항의하기 위해 모인 시위대가 성소수자 인권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흔들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습적인 '트랜스젠더 군 복무 금지' 발표에 항의하기 위해 모인 시위대가 성소수자 인권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흔들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6일(현지시간) 트위터로 발표한 ‘트랜스젠더(성 전환자) 군복무 불허’ 방침이 거센 후폭풍을 부르고 있다. 군내 성소수자 인권단체가 소송 방침을 밝힌 데 이어 정치인과 기업인들도 비판하는 성명을 잇따라 내고 있다. 조지프 던포드 미 합참의장을 비롯한 군 수뇌부가 관련 발표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정황도 미 언론을 통해 속속 확인되는 중이다.

트럼프의 '성전환자 군복무 금지' 발표에 #성전환 여성 제니퍼 심스 대위, NYT 기고 #"성전환 2년이 8년 군생활 중 가장 생산적 # 개인 정체성 허용하는 게 팀워크에도 도움" # 트럼프 기습발표, 합참의장도 몰랐던 듯 # 인권단체 반발…각종 소송전 휘말릴 수도 #

이런 가운데 자신이 6년간 현역으로 복무해온 트랜스젠더 여성이라고 밝힌 군인이 27일 뉴욕타임스(NYT)에 기고를 했다. 제니퍼 심스라는 이름의 이 트랜스젠더 대위는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적인 발표가 성소수자들의 일상과 커리어에 미친 충격을 담담히 써내려갔다.

심스 대위는 우선 지난해 6월 30일을 되돌아 봤다. 당시 버락 오바마 정부의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이 군내 트랜스젠더 복무 금지를 철회하겠다고 밝힌 날이다.

“주체할 수 없는 행복의 눈물이 흘렀다. 평생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었다. 20년 간 내가 누구인지를 두고 싸웠고 7년 간 정체성을 숨겨야 했다. 하지만 그날 비로소 자유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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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스 대위는 개인 이야기임을 전제하면서도 다른 트랜스젠더 군인들과 공감할 수 있길 바란다면서 자신의 성 전환과 군 복무 과정을 풀어갔다.

그는 성장기에 자신이 사내아이란 걸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인터넷 같은 것이 발달되지 않은 시절이라 ‘트랜스젠더’라는 말도 못 들어봤다고 했다. 여느 남자애들처럼 스포츠를 즐기고 더 빠르고 강하게 되려고 노력했다. 군인 집안 출신이라 자신도 군인이 되고 싶다 생각했고 애틀란타대학에서 학사장교(ROTC)를 선택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하게 된 것은 ROTC 입대 1년 후인 2010년 무렵이다. 미군 내 트랜스젠더 복무가 공식 허용되기 전이었다.

“선택은 단순하면서 복잡했다. 나라를 위할 것이냐 나를 위할 것이냐. 더 이상 남성적인 체하고 싶지 않았지만 전쟁에 휘말린 조국의 부름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심스는 2011년 소위로 임관해서 아프가니스탄에 파병 갔다. 이후 4년 간 인도네시아·독일 등을 옮겨다녔지만 마음의 병은 심해져갔다. “거짓말을 하고 산다는 것, 더구나 아무에게도 내 감정을 말할 수 없다는 게 나를 피폐하게 했다.”

2015년 7월 변화가 시작됐다. 미 국방부가 트랜스젠더 복무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심스는 먼저 가족에게 커밍아웃(성 정체성을 알림)했다. 순조롭지 않았지만 더 이상 혼자만의 비밀은 아니었다. 군내에선 계속 숨기기로 했다. 관련 방침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대배치·승진 등에 불이익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마침내 2016년 카터 국방장관의 발표로 모든 게 확실해지자 그는 의료상담부터 받았다. 성전환 치료가 시작됐다. 지난 4월 그는 달라진 정체성으로 부대에 복귀했다. “어떤 이들은 (나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내무생활이나 훈련 등 조직 내에선 아무 문제가 없었다.”

심스 대위는 “만약 전역하게 되면 민간인으로 살아갈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내 경험상 트랜스젠더 복무 허용은 군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고 일갈했다. “성전환 후 지난 2년이 (ROTC 포함) 8년의 군생활에서 가장 생산적이었다. 군은 각 개인에게 정체성을 허용함으로써 팀워크와 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강화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6일(현지시간) '트랜스젠더 군 복무 금지'를 트위터로 발표하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샌프란시스코 광장에 모여 있다. [샌프란시스코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6일(현지시간) '트랜스젠더 군 복무 금지'를 트위터로 발표하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샌프란시스코 광장에 모여 있다. [샌프란시스코 AP=연합뉴스]

심스는 글 말미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기습 발표 후 던포드 의장이 내려보낸 지침에 일말의 희망을 내비쳤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에 따르면 던포드는 내부 메시지에서 “국방부가 접수한 대통령의 명령이 하달될 때까지, 즉 국방장관이 이행 지침을 발령하기 전까지는 현행 정책의 수정이 없을 것”이라고 명확히 했다. 제임스 매티스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고위 참모들 역시 이번 발표를 사전에 알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일각에선 이번 안이 본격 추진되기 전에 폐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 행정명령이 연방 법원에서 제동이 걸린 것처럼 이 같은 방침의 합법성 여부를 따지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AP통신에 따르면 전체 미군 130만 명 가운데 트랜스젠더 현역은 2500∼7000명 정도로 추정된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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