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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부처명 두고 '갑부 의원' 신경전?

중앙일보

입력

중소벤처기업부로 변경되기 전 정부대전청사 건물에 입주했던 중소기업청 명패. [연합뉴스]

중소벤처기업부로 변경되기 전 정부대전청사 건물에 입주했던 중소기업청 명패.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정부 조직을 개편하며 신설한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가 26일 공식 출범했다. 전날(25일) 행정자치부가 국무회의에서 관련 법령안을 심의ㆍ확정함에 따라 중소벤처기업부는 1973년 공업진흥청이란 이름을 달고 탄생한 지 44년 만에 장관과 차관, 4실, 13관, 41과 체제를 갖춘 장관급 부처로 거듭났다.

중소벤처기업부라는 명칭의 원안은 중소기업청을 장관급 부처로 승격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에 있었다. 그러나 작명의 막전막후(幕前幕後)에는 여야 의원의 치열한 '밀당'이 있었다. 20일 국회 본회의 상정 직전까지도 엎치락뒤치락했다.

논란의 핵심은 ‘벤처’라는 단어에 있었다. 지난달 5일 정부는 중소기업청의 승격 내용이 담긴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자 같은 달 9일 70여개의 한글 관련 시민단체가 모여 만든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은 “벤처라는 외래어 대신 중소기업부나 중소기업진흥부 등의 우리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달 7일에는 바른정당이 “중소기업청을 창업중소기업부로 격상할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김세연 바른정당 정책위의장은 “부처명에 ‘벤처’라는 외국어가 들어가는 게 적합한지 의문이었다"며 “벤처라는 단어가 영어권 국가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간다’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서 벤처 대신 창업을 넣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전했다.

이를 여당이 순순히 수용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김세연 의원의 말을 듣고)바로 ‘오케이’ 했다”며 “벤처를 한글로 직역한 ‘모험’을 넣어 '중소모험기업부'라는 말을 농반진반으로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결국 여야 4당 정책위의장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간사들은 18일 부처 명칭을 중소창업기업부로 정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스타트 업' 등 창업가 정신을 독려한다는 의미도 담았다.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ㆍ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ㆍ김세연 바른정당 정책위의장(왼쪽부터).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ㆍ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ㆍ김세연 바른정당 정책위의장(왼쪽부터).

이번엔 여당 내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게임업체 '웹젠'을 창업했던 벤처기업인 출신 김병관 민주당 의원이 잠정 합의 당일 김태년 정책위의장을 찾아가 “적당한 우리말이 없다고 '벤처'를 빼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며 "사라진 기업의 도전정신을 회복시킨다는 차원에서도 '벤처'란 명칭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벤처기업협회와 코스닥협회 등 6개 벤처 관련 협회도 같은날 성명서를 내고 ”국가경제의 신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한 ‘벤처’는 외래어가 아니다”라며 “신설부처의 명칭에는 벤처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병관 의원은 정부조직법이 통과된 20일까지 안행위 소속 의원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공교롭게도 '벤처' 이름을 갖고 여야 신경전을 벌인 김세연 의원과 김병관 의원은 이른바 ‘갑부 의원’이다. 국회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2017년도 정기 재산변동사항 공개내역에 따르면 김병관 의원은 1678억8563만원을, 김세연 의원은 1558억8532만원을 각각 총 재산으로 신고했다. 국회의원 재산규모 1, 2위다. 최종 명칭이 '중소벤처기업부'로 확정되자 일각에선 “갑부 의원 둘이 김태년 의원을 사이에 두고 명칭 힘겨루기하다 결국 1등이 이겼다"고들 했다.

한편 미래창조과학부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란 이름으로 26일 출범했다. 부처명에 '정보통신'이 삽입되기는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사라진 정보통신부 이후 9년 만이다. 작명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의 상징인 ‘창조’라는 말을 지우려다 보니 ‘과학기술정보부’가 거론되기도 했다. 김태년 의원은 ”‘정보부’라는 부처명이 과거 중앙정보부를 떠올리게 할 수도 있다는 지적에 '통신'이란 말을 추가했다“고 전했다.

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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