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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블랙리스트 선고…"정책 기조" VS"역사 역행 편가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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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연합뉴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연합뉴스]

“한정된 국가 보조금을 어떤 기준에 따라 나눠줄지는 정책 기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며 법으로 처벌할 대상이 아니다.(김기춘 전 비서실장 변호인)”
“네 편 내 편으로 나눠 나라를 분열시키려 했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려놓았다.(박영수 특별검사팀)”

27일 김기춘·조윤선 등 '블랙리스트' 선고 #특검팀 "나라 분열...역사 수레바퀴 되돌려" #"범행 부인" 김기춘 7년·조윤선 6년 구형 #'직권남용죄' 입증 어렵고 무죄 선고 높아

정책인가, 차별인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법원의 첫 판단이 27일 나온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0부(부장 황병헌)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에 대한 선고공판을 연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측은 지난 2월 첫 공판준비기일을 시작으로 5개월 가까이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여왔다. 36차례에 걸친 공판에서 주로 문화·예술인들을 차별할 블랙리스트 만들어 관리한 것이 사실인지를 두고 다퉜다. 검찰의 수사기록은 2만여쪽에 달하고 법정에 나온 증인만 50명이 넘는다. 두 사람은 마지막 변론까지 블랙리스트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특검팀은 “명백한 증거에도 범행을 부인한다”며 김 전 실장에게 징역 7년, 조 전 장관에게 징역 6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김 전 실장 측은 한쪽으로 치우친 것을 바로잡으려 했을 뿐, 누군가를 배제할 명단을 만들게 하거나 관리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지난 3일 최후변론에서 김 전 실장의 변호인은 “보조금 TF는 부족한 세수 확보 차원에서 전반적 실태조사를 하기 위한 것이었지 정치적 반대 세력이나 특정 문화예술인을 배제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또 "문체부에 대한 지적사항이 많아 교문수석실 주도로 문체부 지원사업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진 것이지, 대통령이나 비서실장이 기획해 차별적인 지원배제를 지시한 것이 아니다”면서 혐의를 부인했다.
블랙리스트 업무에 소극적인 문체부 1급 공무원들에게 사표를 쓰도록 강요한 혐의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원한이나 업무에 대한 불만도 없어 사직을 강요할 동기가 없다”며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조 전 장관 측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으로부터 블랙리스트 관련 보고를 받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후변론에서 변호인은 “정 전 차관은 특검 수사과정에서 ‘한 번 정도는 이런 명단 검토업무가 있다는 것을 정무수석께 보고드리고 이야기했어야했는데 그러지 못한것에 대해 후회된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이어 “공모라는 것은 단순히 눈치챘다는 것이나 간접적으로 들었다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적어도 수석과 비서관 사이 업무 지휘감독 관계에서 지시하거나 보고받는 최소한의 행위가 있었어야 하는데 그런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좌파 생태계’등의 문구가 적힌 강일원 전 행정관의 수첩에 대해서는 “수첩을 작성한 본인도 내용에 대해 자신 없이 설명하고 있고, 누가 어떤 자리에서 말했는지 출처 등이 명확하지 않은 증거”라며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문화·예술인을 차별하기 위해 블랙리스트 만들어 관리한 것이 사실로 인정된다 하더라도 이를 ‘직권남용죄’로 볼 수 있는지는 또 다른 쟁점이다. 직권남용은 정상적 직무집행과 경계가 모호해 입증이 어려운 범죄다. 이번 사건처럼 명백한 증거는 없고 신빙성을 다투는 간접증거와 진술들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권남용죄는 무죄 선고율이 높은 대표적 범죄기도 하다. 직권남용의 상대방에게 ‘의무 없는 일’을 지시했더라도 그럴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거나, 직권을 남용할 만한 동기가 있어 보여도 실제로 남용했다는 것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지 않으면 무죄가 선고돼 왔다. “정책 기조에 따라 비정상의 정상화를 도모한 문화 정책이다”는 김 전 실장의 주장을 ‘정당한 이유’로 받아들일 것인지, 그리고 “정무수석에게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진술이 있다”는 조 전 장관의 주장을 ‘합리적 의심’으로 인정할 것인지에 따라 선고 결과는 달라지게 된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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