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근시안적 탈원전 정책의 네 가지 오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김명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김명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편애(偏愛)의 반대말은 편증(偏憎)일 수도 박애(博愛)일 수도 있다. 한국은 세계가 알아주는 원자력 강국이면서, 핵 개발을 하지 않는 모범 국가다. 경제 개발에 기여했고 원전 수출국 반열에 올랐다. 에너지 정책은 좌우를 살피고 차선책과 대안을 모색한 후 천천히 결정해도 늦지 않는데, 정부는 금연운동 하듯이 밀어붙인다. 에너지 기술에 대한 편애와 편증은 편향된 시각과 지나친 자기 확신에서 온다. 먼 앞날을 보지 않고 현재만을 쳐다보니 급진적 정책이 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원자력을 오해하는 관점은 이런 것들이다.

원전, 서울시에 건설해도 안전 #기술혁신으로 싸지는 건 동일 #고준위 폐기물 대안 마련 가능 #가스 의존은 에너지주권 상실

첫째, 안전성에 대한 관점이다. 정부는 원전이 싸고 좋다고 하지만, 방사능 누출 사고 가능성이 있으니 이제는 비싸더라도 안전을 택해야 한다고 한다. 방사성 원소의 누출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원전 사고는 기계적 고장과 다를 바가 없다.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수백 개의 원자로가 운영됐지만, 유념할 방사능 누출 사고는 두 번 있었다. 체르노빌 사고는 처음부터 설계 및 시설이 미비했고 심각한 규정 위반이 있었던 것이라 논란의 가치도 없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딱 하나 13m의 쓰나미를 대비하지 못해서였다. 당시 지진과 쓰나미의 공격을 받은 원전 단지는 여섯 군데였다. 사고 원전은 9m까지만 대비한 게 문제였다. 이제 전 세계 원전은 쓰나미와 지진에 대비가 됐다.

원자력공학은 ‘만약에’를 위한 학문이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고를 미리 가정하고 대비한다. 신고리 5, 6호기에는 모든 ‘만약에’를 동원했다. 일본과 같은 지진과 쓰나미가 오더라도, 9·11 같은 테러로 비행기가 원자로 건물을 내리쳐도, 북한 미사일이 공격해도, 운전원이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방사선 누출로 이어지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 입지 여건이 적합하지 않아서 그렇지, 서울시에 원전을 건설해도 안전상의 문제는 없다.

둘째, 경제성에 대한 관점이다. 지금은 재생에너지가 비싸지만 기술 투자가 지속되면 더 싸진다고 낙관한다. 그런데 원자력도 기술 투자를 더 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싸지고 더 안전해질 거라는 걸 왜 믿지 못하는가? 현재와 미래를 같이 보며 합리적 선택을 해야 한다. 태양광과 풍력은 자연환경에 종속적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태양빛이나 바람이 더 세게, 더 오래 지속되도록 조종할 능력을 키울 수는 없다. 반면 원자력은 100% 기술혁신에 의존한다. 결국 우리의 미래를 우리 기술로 만들어 갈지, 자연환경에 의존할지의 선택이다.

셋째, 환경 안전의 관점이다. 원전에서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나 방사성 폐기물은 해결할 수 없는 골칫덩어리니, 아예 발생이 안 되도록 원전을 중지시켜야 한다고 한다. 어떤 종류의 에너지원도 환경 안전 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태양광이 청정해 보여도 패널을 만드는 산업 자체가 유해물질 배출 산업이고, 20년 수명을 다한 태양광 패널은 썩지 않는 폐기물로 고스란히 후손에게 물려주게 된다. 방사성 폐기물에서 방사선이 방출되지만, 우리는 이미 자연환경에서 꽤 높은 방사선을 맞으면서 살고 있다. 폐기물 처리로 인해 받는 방사선량이 이미 받고 있는 양보다 아주 적도록 관리하면 된다. 물론 고준위 폐기물의 경우 양이 많지는 않지만 반감기가 매우 길어 오랜 기간 지하 처분장의 안전성을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현재 흔하지 않은 이런 시설의 안전성을 입증하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원자력 선진국은 미국을 제외하고는 이 고준위 폐기물을 쓰레기로 보지 않는다. 재처리해 활용해야 할 자산으로 본다. 2년 전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해 우리도 재처리 연구를 비로소 시작하게 됐다. 이 가치 있는 연구조차 하지 말라며 어깃장을 놓고 있다.

넷째, 국가 에너지 안보의 관점이다. 석탄·석유·가스·원자력·신재생에너지 중 국산화가 된 것은 원자력뿐이다. 나머지는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원자력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늘리면 가스를 주력 전력원으로 쓰거나, 또는 바람이 안 불거나 빛이 부족할 때를 대비하는 대기 전력원으로 가스를 사용하게 된다. 가스는 수송·저장이 문제다. 값싼 셰일가스를 미국에서 도입하는 안을 고려 중이다. 또 북한 땅을 경유해 러시아 가스를 파이프라인으로 가져오는 방안도 오랫동안 회자된다. 하지만 우리의 산업 경쟁력을 미국과 러시아·북한이 좌지우지하게 할 수는 없다. 탈원전은 결국 에너지 주권의 상실을 뜻한다.

현 정권은 교육 기회 평등화, 경제 민주화 등의 공평한 정책을 지향한다. 박애정신을 보이는 정부가 유독 전력에너지에서만큼은 편애와 편증이 심하다. 색안경을 벗고 공정한 시각으로 바라보길 기대한다.

김명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