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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핀셋증세·명예증세 … 초점 흐리는 네이밍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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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형구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형구 정치부 기자

김형구 정치부 기자

증세 논의에 불을 댕긴 여권이 이제는 ‘네이밍전(戰)’에 나서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24일 직접 나서 증세 앞에 이런저런 이름을 붙였다. 증세론의 총대를 멘 추미애 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저는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 스스로 명예와 사회적 책임을 지키는 ‘명예과세’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여기에 김태년 정책위의장이 한마디 보탰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초우량 대기업들이 세금을 좀 더 냄으로써 국민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면 ‘사랑 과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자들이 국민에게 존경받는 ‘존경 과세’라고도 했다.

전날인 23일 제윤경 원내대변인은 ‘불평등 심화를 개선하는 수퍼리치 증세’라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증세 대상이 서민·중산층·중소기업이 아니라 전체 기업의 0.019%(과세표준 2000억원 이상 초대기업), 전체 국민의 0.08%(과세표준 5억원 이상 초고소득자)에 불과하다는 점을 수퍼리치라는 말로 부각했다. 같은 맥락에서 민주당은 ‘핀셋증세론’을 제기했다.

김경수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증세, 이름을 지어주세요’라는 카피로 공모에 나섰다. 그의 페이스북에는 ‘금수저세’ ‘VIP세’ ‘부자 나눔세’ ‘국민 모두 행복하세’ 등의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

민주당은 이미 야당 시절 ‘부자 증세’라는 말로 여론의 우위를 선점하려 했다. 여당이 된 지금 여론전은 물론 야당과의 프레임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노무현 정부 때 종합부동산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야당이 제기한 ‘세금폭탄’ 프레임에 걸려 고생한 트라우마도 작용했다고 한다.

거꾸로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에 제동을 건 카피 문구(좋은 대통령은 역사를 만들고 나쁜 대통령은 역사책을 만든다)처럼 잘 지은 말 덕을 본 추억도 있다.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는 “우리 사회가 과연 어느 수준의 복지를 지향하고, 납세자가 어느 정도의 세금을 감당할 수 있는지 국민에게 정직하게 묻고 설득하는 과정 없이 부자 증세부터 불쑥 꺼내면 ‘돈 많이 번 게 죄’라는 얘기밖에 더 되느냐”고 지적했다.

여당은 이번에 정부조직법안과 추가경정예산안 통과 시 협치에 적잖은 공을 들였다. 증세 논의에도 마땅히 그러한 협치가 필요하다. ‘말의 성찬’으로 포장하기엔 세금이란 이슈는 너무 중하다.

김형구 정치부 기자